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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May 11. 2020

음악 속에서


눈만 뜨면 음악을 켜거나 흥얼거리는 이들과 달리 키보드 소리, 물소리, 새소리 등을 더 좋아해서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억의 왜곡이다.


덕후가 되어 공연만 기다리는 요 몇 년을 제외하고는 공연이라고는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전에도 몇 번이나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다. 20대 때 안치환 공연을 봤다. 회사 동료와 둘이 봤는데 아직도 그의 흰 셔츠가 땀에 젖어 조명에 훤히 비치던 장면이 기억난다. 아직 덜 친해진 회사 동료와 봤는데 공연이 끝나고 감정이 주체할 수 없어 끌어안고 부둥부둥해대며 주책을 떨었다. 인순이 공연도 보았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였는데, 남편에게 아이들을 떠맡기고 나 혼자 앞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어찌나 소리를 시원하게 내는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마구마구 흥분해서 칭찬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조수미. 친구가 공짜표가 생겼다고 같이 가자고 할 때만 해도 교양 있는 자리에 한 번쯤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 라는 마음으로 갔다. 조수미가 노래할 때만 해도 우와 잘한다, 하면서 물개 박수를 치는 정도였다. 초대가수가 나왔는데 그녀가 얼마나 잘하는 건지 바로 비교가 되어버렸다. 그에 비해 조수미는 정말 한치의 오차도 없는 소리를 냈다는 것을 알겠더라. 그도 뮤지컬계에서 내로라하는 이였다. 하지만 조수미 옆에 서는 순간 너무 극명하게 차이가 나버렸다. 그 뒤로 내 기준은 조수미가 되어서 한동안 다른 노래를 들어줄 수가 없었다.



음악을 챙겨 듣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내 덕주를 만나게 되었던 나는 가수다, 복면가왕 등을 챙겨본 것만 봐도 그렇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쇼미 더 머니도 거의 빼먹지 않고 봤다. 가족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라는 면도 있었지만 꽤 진지하게 들었다. 점수를 매기는 그 순간에는 나도 한 명의 심사위원이 되어 내 나름의 점수를 매기곤 했었으니까. 어쨌든 음악프로그램을 즐겨보았던 셈이다.

며칠 전, 드라마 끝에 나오는 김윤아의 노래를 들으며 소름이 돋았다. 드라마가 끝나는 지점이었는데, 노래 첫마디를 듣는 순간, 소름이 쫙~~. 어쩜 저래, 소리가 절로 나왔다. 드라마의 상황과 맞아떨어져서 더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노랫말 가사나 음악적 요소를 차치하고 그녀의 목소리 자체가 주는 어떤 전율이 있다. 김윤아를 특별히 생각하게 된 것은, 얼마 전 버스킹 하는 프로그램에서 기타리스트 이선규가 김윤아와 어떤 노래를 준비하는 장면을 보면서부터 이다. 김윤아가 몰입해서 노래를 부르고, 이선규가 반주를 해준다. 노래가 끝나고 이선규는 음악에 폭 젖은 눈으로 김윤아가 세상에서 노래 제일 잘해,라고 말한다. 김윤아는 쑥스러운 듯 호호홍 웃으며 어깨를 살짝 으쓱한다. 아, 정말 그 장면, 너무 좋았다. 내가 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저런 사람들끼리 동료라니. 얼마나 행복할까. 좋아하는 사람들과 일해야 한다는 당연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사실을 꼭 실현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김윤아여서 좋기도 하지만 드라마 끝부분에 들은 그 노래는 김윤아라고 의식하기 이전에 이미 소름이 돋아버리는 그런 것이었다. 날카로운 칼로 심장을 긋는 듯한 소리. 그렇게 죽으면 그어진 줄도 모르고 넋이 빠져 죽으리라.

요즘 푹 빠진 게 또 있다. 팬텀 싱어 3. 세상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거기 다 있는 것 같았다. 얼마나 몰입해서 봤는지 중간에 탈진을 해서 더 이상 노래가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취향과 상관없이, 다양하게, 높으면 높은대로, 낮으면 낮은대로, 가늘면 가는 대로, 굵으면 굵은 대로, 다, 정말 다 너무 좋아서, 저런 걸 누가 심사를 하나, 그냥 서로 짝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좋았던 것은 그들은 떨어지고 붙는 경쟁의식보다 좋은 무대를 하는 것을 더 중요시 여겼다는 점이다. 쇼미 더 머니에서는 약은 수를 쓰는 이들이 간혹 있었다. 뻔히 잘하는 이가 뻔히 못하는 이를 상대로, 그저 올라가는 것에만 목적을 두는 이들을 보면 아무리 그가 잘해도 응원해주기가 싫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오로지 좋은 무대, 함께 좋은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상대를 찾는 그 순수함에 더 감동하게 만들었다.


아. 또 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잘한다기보다(잘하지만) 생활 속에서(?) 즐기는 모습이 너무 좋고 악기와 악기 소리를 보여주는(!) 카메라 워크가 마음에 쏙 든다. 

 이제야 내 음악적 취향이 뭔지 찾아냈다. 음악적 기술보다 감정 표현력이더라. 오로지 그거. 노래하는 사람이 지나치게 자기감정에 겨운 것은 싫은데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해주는 것. 그러려면 소리가 딴딴해야 한다. 시작 전에 몰입되었다가 마지막 숨까지 노래 안으로 넣어 부르는 것. 그 마지막 숨에서 빠져나와 원래로 돌아와서는 눈빛도 바뀌고 숨소리도 바뀌는 것. 그런 지점에서 나는 막막 숨이 멎는다. 마음을 다 주느라 기진맥진되곤 한다. 아름다운 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기분이다. 질 좋은 유기농 음식을 먹을 때처럼 세포 하나하나가 깨끗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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