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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Apr 08. 2020

그날의 운세가 아니라 그날의 기운

필립 로스는 "영감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라고 했다. 이 문장을 벽에 붙여놓았다.
매일 쓰던 글이나 그림이 마음에 안들 때가 있다. 썼다 지우기를 여러 번 하다가 그럼 내가 아마추어이지 뭐, 싶어서 밖으로 나가 영감을 찾아 걷는다.


작은아이가 어릴 때 아토피가 심했다. 좋다고 소문난 데는 다 찾아다녀도 잘 낫지 않았다. 어느 한의원에 정착을 하게 되었는데, 약을 함부로 쓸 수 없는 아이에게 기치료를 해주는 분이셨다. 손으로 아이가 아픈 곳에 기운을 넣어주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엄마가 우주의 기운을 읽을 줄 알면 아이에게 크게 도움이 될 거라고, 그날의 운세처럼 그날의 기운을 보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셨다. 아기의 사주에 따라 그날의 기운이 몸의 장기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고 한다. 이유 없이 어딘가 불편해하면 영락없이 그 탓일 거라고 하셨다. 말 못 하는 아기들은 어디가 아프다고 못하기 때문에 특히 유용했다. 달력에 잘 적어두고, 오늘은 소화가 안 될 수 있으니 특별히 소화가 잘 될만한 음식을 먹여야지, 오늘은 감기에 걸릴 수 있으니 밖에 나가지 말아야지, 이런 식으로 활용하라고 말씀해주셨다. 종이에 열심히 적어와서 날짜 따지며 아이를 살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내용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그 뒤로 특별한 일 없이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뭔가 하기 싫을 때 우주를 탓하는 버릇이 생겼다. 우주가 내게만 그런 기운을 보내는 것은 아닐 텐데 왜 나만 그리 변덕이 심한 건지 모르겠다. 우주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 사람이 있나 보다 하면서 그것도 우주 탓을 한다. 모든 것을 호르몬 탓으로 보는 친구가 있었다. 성장 호르몬이 많이 나와서 얼굴에 뾰루지가 났다거나 갑상선 호르몬 탓에 기운이 처진다거나, 매번 다른 호르몬 탓을 했다.


글도 그림도 딱히 아이디어가 생기지 않는 날, 우주의 기운이든 호르몬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 내 탓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은 거다. 재미가 없어도 내 탓은 말라. 잘 되는 날은? 당근 내 덕이어야 하지.(에잇, 내 폰은 왜 당근 이모티콘도 없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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