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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Apr 06. 2020

벚꽃, 너는 뭔데?

왜 벚꽃이나 목련, 개나리는 잎이 나기도 전에 꽃부터 피우는 걸까? 벚꽃의 찬란한 낙화를 보며 찬탄하다가 문득, 너는 뭔데, 응? 하면서 시샘 아닌 시샘을 해본다.      

나뭇잎 하나 없는, 푸른 기 하나 없는 앙상한 가지에 꽃만 매달려 있는 모습이 어찌 보면 기이하지 않나? 절정을 이룬 꽃잎이 흩날리면서 파란 이파리가 돋아나니, 이제야 좀 익숙하네, 시비도 건다.  


광합성을 해서 엽록소를 만들어내는 지난한 작업을 통해 나무는 잎을 만들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가지를 키운다고 배웠다. 뜨거운 여름을 버텨내고 찬바람 부는 가을이 되어서야 꽃을 피우는 국화 같은 꽃은 그래서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기도 한다.

아직 이파리조차 만들어내지 않은 나무가 그토록 환하게 꽃부터 피우다니, 뭔가 괘씸하지 않은가. 이른 영광을 누리는 게 부럽기도 하고 특별한 개화 능력이 얄밉기도 하다. 가끔은 너무 이르게 꽃을 피우다 아직 물러가지 않은 꽃샘추위의 공격을 받는 것을 보고도 그 정도 모험은 감수해야지, 짐짓 눙쳤다.     

내 심보가 우습다가도, 산책은, 꽃에게 말도 안 되는 감정을 이입하기도 하고 혼자만의 서사를 쓰기도 하는 거라서 제멋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집에 돌아와 벚꽃이 왜 꽃을 먼저 피우는지 검색해보았다. 아이코, 섣부른 내 상상력이여. 성질 급한 꽃이며 남들보다 선수 치는 독주인 줄 알았더니, 완전 나만의 착각이었다. 벚꽃이나 개나리, 목련 등은 이미 지난해에 겨울이 오기 전 봉오리를 맺어 봄을 기다린다고 한다.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적당한 온도와 햇빛을 기다려 그제야 꽃을 피우는 것이란다. 인간의 기준으로 봄을 시작점으로 생각하다니, 참 말도 안 되는 좁은 식견이었다. 내 마음대로 감정 이입해서 본다 해도, 혹독한 고난을 이긴 그들은 봄의 전령으로서 그 영광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사실 나무는 그저 자신의 일을 할 뿐인데, 인간이 이러쿵저러쿵 의미를 부여한다. 아름답다고 꽃놀이를 가는 것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고 칭하는 것도 그러하다. 우주의 한 점 같은 인간내가 마치 우주의 중심인양 말이다. 대자연 앞에서 감히 인간을 중심에 두는 이기적인 관점 때문에 지금 전 세계가 무서운 바이러스로 타격을 입었다. 그 와중에 내가 선 곳은 아직 살만하다고, 여전히 정신을 못차리고서..., 감히 까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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