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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Apr 09. 2020

당신의 민낯을 보여주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대학 때 개구리라고 불리던 친구는 엄청 먹는 걸 밝혔다. 먹는 게 다 어디로 가나 싶도록 작은 몸집과 살집을 가졌으면서 온갖 회식과 술자리를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새로운 음식이 나올 때마다 괴성을 질러대며 먹어댔다. 어느 날 친구들이 그의 집에 놀러 갔다가, 그녀의 먹성에 대해 우리가 놀리는 걸 보고 그녀 언니가 깜짝 놀랐다. 뭐? 개구리가 먹어? 막 먹어? 난 얘 먹는걸 못밨어. 개구리는 당황해서 우리들 입을 막았다가 언니 입을 막았다가 난리였다. 우리는 개구리를 옆으로 밀치고 그녀 언니와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얘 가요, 우리 안주를 다 먹어치워요. 제발 집에서 좀 먹이세요.ㅠㅠㅠ


5년 전 같이 일했던 ㅎ은 아침마다 자신의 컨디션을 시시콜콜 말했다. 오늘은 잠을 못 자서 머리가 아프네, 어제 컴퓨터를 좀 썼더니 팔이 저리네, 매일 새로 아픈 곳을 발견해서 보고했다. 얘기 중에 다른 사람이 오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상대에게도 일일이 묻고 힘들다면 어쩌냐고 혀를 차고 욕해줄 것은 욕해주면서 공감하는 일을 즐겨했다. 자신의 컨디션에 대해서도 공감해줄 것을 한 명 한 명에게 요구했다. 그런 ㅎ이 남편에게는 절대 아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병원에 갈 일이 생기면 남편 몰래 다니느라 거짓말이 늘었다. 운전을 못하는 ㅎ이 주변 지인들에게 부탁해서 병원에 갈 때마다, 지인들은 ㅎ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남편에게 말을 안 해요? 그냥 남편한테는 씩씩한 여자이고 싶어요. 남편이 아픈 걸 제게 말하는 것도 싫어요. 나는 당신들과 이야기하는 게 훨씬 좋아요.

아오~~~(피로의 하울링이다.)


ㄴ은 누굴 만나도 웃었다. 친절하고 이야기를 재미나게 했다. 어느 날 ㄴ이 누굴 처음 만났는데 어색해서 혼났다고 한다. 그래서 계속 이야기를 했다고, 이야기한 내용을 들려주는데 너무 웃긴 이야기였다. 아마도 그 누군가는 ㄴ이 정말 낯가리지 않는 재밌는 사람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ㄴ은 어색한 게 싫어서 그랬다는데 그런 것조차 우리는 웃겼다. ㄴ이 딸과 통화하는 것을 옆에서 들으면 ㄴ은 간드러지도록 상냥하게, 딸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것도 웃겨서 우리가 웃으면, ㄴ은 더욱 간드러지게 말해서 딸이 경악하도록 만들었다.

ㄴ을 그녀의 남편은 코끼리라고 불렀다. 그녀가 집에 들어와 안방에 누우면 딱 코끼리 같은 무게감을 느낀다고 한다. 서열 1순위인 ㄴ은 코끼리처럼 누워서 3순위인 아들과 4순위인 자신을 시켜먹는다는 것이다. 2순위인 딸은 열외. 간드러진 목소리는 밖에 나와야 들을 수 있고 집에서는 코끼리의 울부짖는 소리만 듣는다고 한다.


우리 집 큰 놈은 인싸다. 핵인싸. 요즘 아이들은 잘 노는 게 제일이라던데, 그놈이 그렇게 잘 논단다. 나는 알 수 없다. 아들 인스타를 보는 것도 아니니까. 아무튼 만나는 사람마다 잘 노는 것에 대해 극찬을 한다.

하지만 집에만 오면 투덜이다. 누가 자기를 힘들게 했고, 요즘 마음이 어떻고, 새로 보는 드라마가 마음에 안 들고...

까칠하다. 자기는 끝도 없이 투덜거리면서 내가 자기 방문을 열면 미간이 좁아지고 손가락을 까딱, 한다. 문을 닫아야 한다. 집에 오는 시간이 되면 가슴이 떨린다. 눈을 내리깔고 말을 안 걸기 위해 애쓴다. 꼭 할 말이 있으면 집에서도 카톡으로 한다. 아들, 밥 먹을래? 응, 싫으면 말고.  

맨날 여기저기가 아프단다. 발목이 아프고 무릎이 아프고 어젯밤 코피를 흘렸고 목이 잠기고....


나랑 인연이 아닌가 봐,라고 푸념했더니 친구가 말했다. 걔는 무슨 복을 타고 난 거니?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에게 투덜댈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속 터지는 소리를 한다.

그래. 아들이 엄마를 편하게 대하는 건 좋은데, 내가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그게 문제야...

엄마도 큰 복을 받은 거지. 아들이 말을 한다는 건 그만큼 편한 엄마라는 거잖아. 요즘 자식들이 집에서 자기 얘기하는 줄 아니? 우리 아들은 입에 누가 재갈을 물렸는지 입이 열리는 법이 없어. 밥은 어찌 먹나 몰라.  

하이고, 두 번만 편했다가는 잡아먹겠네,라고 말했지만 내가 편한 엄마라니, 내 평생 바라던 것이 그것 아니었나, 싶어서 감수하기로 했다. 슬며시 올라간 입꼬리를 감추며.   


내게는 남편이 욕받이다. 내 딴에는 안 한다고 생각했는데, ㅎ을 보면서 알았다. 아픈 것도 힘든 것도 남편에게만 말하는 타입이라는 걸. 밖에서는 항상 괜찮은 척, 아주 건조하게, 웃으며 말한다.  남편에게도 건조하게 웃으며 말해봤다. 속풀이가 안되었다. 아주 곡소리가 나도록 해야 속이 풀린다. 심지어 내가 듣고 싶은 답을 미리 말해주고 그대로 말하라고 한다. 다행히 남편은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며, 시키는 대로 말해준다.

이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분명 남편이 제일 어려웠었는데. 언제 이런 사이가 되었을까. 미운 정도 정이라더니. 세월이란 놈이 그랬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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