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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May 02. 2020

위기에서 우리는

"억만금을 줘도 난 못해."

"나도 나도. 정말 으~~"

수술 장면을 보면서 아들과 나는 부르르 떤다.

"왜 못해! 못하는 게 어딨어!"

남편은 마치 우리를 배부르고 등 따셔서 나약한 소리를 하는 것처럼 대하지만, 어려서 소방관이 꿈이었던 남편은 소방관이나 경찰, 의사가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를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다쳐서 오면 약간 의사놀이처럼 치료를 도맡아서 했다. 반면 모든 위기 장면을 두려워하는 나는 현실에서도 그들과 만날 일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심지어 축구경기를 볼 때도 골인 직전에는 고개를 돌린다. ㅠㅠㅠ


코로나로 의료진들의 희생에 주목하게 되면서, 과연 저들은 자신들의 직업적 무게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고 시작했을까 궁금했다. 딸을 구슬려 간호대에 보낸 지영에게 물었다.

"자기는 걱정 안 돼? 나중에 채이도 저렇게 최전선에 나가야 할 텐데, 괜찮겠어?"

지영은 답했다.

"그건 말이야, 앞으로의 세상에서 다른 직업은 다 없어져도 간호사라는 직업은 끝까지 남는다는 것을 뜻해. 꼭 직업이 아니더라도 위기상황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못하는데 저들은 할 것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아. 그랬다. 고맙게도 세상에는 너무나 다양한 부류의 사람이 있고, 나와는 지극히 다른 층위의 사고를 하는 이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굴러가고 인류는 또 공존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고맙다 고마워.

"자기는 전에 건이 다쳤을 때 보니까, 세상 쿨하더구먼. 이마에서 피가 막 솟구치는데 바로 휴지로 딱 막아서 병원으로 뛰어갔잖아. 악 소리 한번 안 내지르고 말이야. 나는 우리 채이 다치면 그렇게 못해."

맞다. 위기가 닥친 순간 나는 그 누구보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기계처럼 몸이 움직인다. 내가 의지할 곳, 병원에 갈 때까지만, 딱 거기까지.  



 이 글을 쓰고 나서야 알았다. 질병관리본부가 어린이날 기념으로 어린이 질문에 대한 브리핑을 했다고 한다. 거기서 한 어린이 기자가 정은경 본부장님과 같은 사람이 되려면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느냐고 질문하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은 세상에 이로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한눈에 알아보고, 또한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키운다. 이 얼마만인가. 한국 사회를 이끄는 사람들 중에 아이들에게 좋은 본보기의 어른이 있다는 것이. 뿌듯하고 흐뭇하다.

콩알만 한 간을 가진 나로서는 아이 앞에서 많이 부끄럽다. 그리고 아이들 덕에 희망을 느낀다.


 코로나는 분명 우리 사회에 많은 어려움을 주었지만, 이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긍정적인 효과를 드러내고 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이다. 선진국이라는 미국이나 유럽을 향해 목을 빼고 바라기 하던 사람들도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도 못지않은 선진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터이다. 두 번째는 이 자부심이 다른 측면에서도 적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방위적으로 애쓰고 있다는 것이다. '개복치 효과'라는 것이 있다. 유리 멘털의 개복치가 한번 이기면 또 이기기 위해 점점 세지는 것을 말하는데, 우리나라가 코로나 극복에 관해 세계에 모범이 되면서, 이를 유지하기 위해 다 같이 노력하고 있다. 더구나 모범적인 결과가 시민의 자발적 노력과 참여로 이루어진 성과라는 점에서 시민들의 의식은 점차 고양되고 있는 것 같다. 


한번 고양되기 시작한 시민의식은 또 다른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발동해서, 이후에 일어나는 큰 사건들, 예를 들면 n번 방이라든지 이천 화재 등에 대해서도, 예전과 달리 미봉책에 그치지 않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요구하고 정부와 정치에 바라는 기준선 자체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런 일련의 모습이 어쩌면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고 내가 침소봉대하여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무섭도록 변하고 있다. 다시 희망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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