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둥 May 06. 2020

쪼금만 기다려주세요~

나도 곧 작가가 될 거다!


나도 작가다 공모전이라니!

나를 콕 찍어, 네 이야기야, 글 써,라고 등 떠미는 주제 아닌가.  

  

50년간 작가를 거부하며 살다가, 갑자기 작가가 되어보겠다고 두 팔 걷어붙인 지 어언 3년.  글짓기 대회를 하면 항상 학교 대표로 나갔다는 이유로 친구들은 내가 작가가 될 줄 알았단다. 함께 시를 읽고 쓰던 초등 친구는 시인이 되기를 꿈꾸었는데, 꿈속에서 항상 나와 함께였다고 한다. 더구나 러시아 문학을 읽겠다고 러시아어과에 갔으니 빼박 작가의 길을 걷게 될 거라고 믿었단다. 하지만 정작 나는 한 번도 시인을 꿈꾸어본 적도, 작가가 되기를 바란 적도 없다. 글 쓰는 걸 좋아하기는 하지만 글 쓰는 사람으로 살기보다 남의 글을 읽고 그 속에 파묻혀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고 싶었다. 내 글솜씨가 그 정도는 아니라는 것도 알았던 것 같다.     


그런 내가 갑자기 작가가 되겠다고 나섰다. 우주의 기운이 바뀌어서인지 호르몬의 변화인지 나이 들어 명예욕이 생긴 건지 나도 모르겠다. 어쨌든 작가가 되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심지어 그림책 작가가 되겠다고, 초등학교 때 4B 연필 잡아본 이후 한 번도 그려보지 않은 그림을 시작했다. 혹시나 마음 바뀔까 동네방네 인스타에, 트위터에, 페이스북에 소문을 내고 다녔다.     

내 계획은 이러했다. 5년쯤 매일 그림 그리기를 한다. 그 정도면 내가 표현하려는 것을 스케치해서 그림 작가에게 전할 수 있겠지. 다시 5년쯤 그림을 정식으로 배워서 일러스트레이터가 된다. 직접 내 그림책을 그리고 쓰는 작가가 된다. 하하! 어떠냐. 이 정도 계획이면 10년 후 그림책 작가가 될 수 있겠지.

     

하지만 시작부터 틀렸다. 내가 그림에 매진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은 글이 될 줄 알았던 거다. 그동안 살면서 글 쓰는 걸로 어려웠던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내가 마음만 먹으면 쓸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한 것이다.

조엔 롤링 같은 상상력과 창의력을 가지기는커녕 해리포터를 이해도 못하는 굳은 머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깜빡 잊었다. 아이다운 동심은커녕 내 새끼에게나 적용되는 얄팍한 자애심뿐인데 그림책 글작가라니, 어쩌나. (어쩌긴, 망했지.)


그런 줄도 모르고, 3년 동안 매일 그림 그리기를 하고 있다. 앞에 놓인 페트병을 그렸다. 구도도 맞지 않게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다. 그림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4B연필뿐이어서, 연습장에 4B연필로 그림을 그리다가, 그림 그리는 연필로는 B도 있고 H도 있고 F도 있다는 것, 심지어 수채연필도 있다는 걸 알았다. 누구나 연필로 시작하는 줄 알았는데 어떤 이는 붓으로 시작하는 게 더 편할 수도 있다는 걸, 그 어떤 이가 바로 나라는 사실도 알았다. 도화지도 실력이 없을수록 비싸고 좋은  써야 그림의 퀄리티가 높아진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배신감도 느껴봤는데, 그 맛이 아주 달콤했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두려웠다. 어제의 내 그림이 내가 한 것이 아니고 우연의 산물인 것만 같아, 3년 내내 붓을 들 때마다 매일 황소 같은 용기를 짜내야 했다. 요즈음에야 조금, 아주 조금 두려움보다 막막함이 앞선다. 엄청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그림을 익히는 동안 내내 글이 까였다. 믿을 수 없었다. 내 글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줄 알았다. 다른 사람을 찾아보자, 다른 공모에 내보자, 그렇게 수없이 떨어지고서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글을 못 쓰는 게 당연한 나를, 쓴 적이 없으니 잘 쓸 수 없는 나를.  


그렇다면 다시, 글쓰기 5년을 추가하면 되지 않겠나. 어차피 10년 동안 그림을 그리기로 했으니, 그동안 열심히 그림책을 찾아 읽고 다시 5년간 글 쓰는 공부를 더 하면 되지 않나.     

자, 이제 준비는 끝났다. 작가가 되기만 하면 된다. 나도 작가다! 15년 후 나도 작가가 될 것이다!



17년 10월 첫번째 그린 그림(좌), 3년째 매일그림 그리기를 한 지금의 그림(우).


이렇게 쓰고 발행을 하려는데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출판사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브런치에 쓴 내 글을 다 읽었고 인스타 계정까지 가서 봤다고 한다.

브런치 북으로 쓴 교양수업으로 본 덕질 고찰을 책으로 내고 싶다고.

심지어, 글을 읽은 오늘 하루 작가님이 덕주였습니다~~ 라는,  마음을 사로잡는 한마디를 얹어서.  크으~~~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브런치를 만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작가가 되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되니까 출판작가만 작가냐 나는 브런치 작가다 라고 외치려고 브런치를 시작했다. 그것도 삼수만에 입성할 수 있었다.


이제 출판사의 제의를 받은 것에 불과하지만 곧 진짜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기대에 잠이 오지 않는다. 아직은 올챙이처럼 꼬물꼬물거리지만 곧 뒷다리가 쑥 앞다리가 쑥하고 자랄거다. 팔딱팔딱 뛸거다.

하지만 알고 있다. 이렇게 부풀어 있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걸. 조금 있으면 토 나오기 직전까지 퇴고를 해야 하고 책이 나오면 부끄럽고 하찮게만 여겨져 한없이 숨고 싶을 것이고 그다음에는 또다시 창작에 대한 고뇌로 이어질 것이라는 걸. 그러니까 지금 행복하자. 나도 곧 작가다!라고 외치는 지금 이 순간을 맘껏 려야지~ 




작가의 이전글 위기에서 우리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