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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Jul 02. 2020

맛으로 구분되는 계급

화요일마다 아파트 내 장이 서는데, 점점 실망이다. 이곳에 이사 오고 첫 장 서는 날, 떡볶이를 먹으러 달려갔다. 딱 보면 저게 맛있는 떡볶인지, 맛없는 떡볶이인지 우리는 안다. 떡볶이에 관한 한 그만한 연륜이 되었다. 아니올시다, 였는데, 그래도 혹시나 해서 사 먹었다. 역시나, 아니었다. 튀김도 사고 오뎅도 사 먹었는데, 역시 실망스러웠다. 떡볶이 몇 개를 남겼다.

그다음 시도한 것은 닭강정. 닭이고, 튀긴 것인데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는 진리를 깨버렸다. 식어서 맛없는 줄 알았다. 대충 버무려주기 때문에. 그게 아니었다. 양념 탓인가? 그도 아닌듯하다. 파는 양념 맛이니까.

떡볶이 집에서 순대를 먹지 않은 이유가 있다. 바로 순대전문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종류도 다양해서 김치 순대, 짜장 순대, 카레 순대 등이 있다. 오징어순대가 있었으면 좋았을걸. 어차피 사다가 파는 거라면 오징어순대도 사다 팔면 되지 않나? 하기사 순대와 오징어순대는 순대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을 빼고는 완전 다른 음식이기는 하다. 어쨌든 여기도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했다. 그나마 정말 사 먹을 게 없을 때 사다 먹는다. 항상 남기지만.


실망에 실망을 거듭했는데 최근에 정말 대실망을 했다. 두부가 맛이 없다. 두부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두부 파는 것을 보고도 산 적이 없었다. 콩나물만 조금씩 사다가 먹었는데 먹을만했었다. 남편이 두부를 사 왔는데, 지져서 먹다가 그대로 버렸다. 기름에 지진 것이 맛이 없다니, 말도 안 된다. 다음 장날 남편은 순두부를 사보잔다. 그래 순두부야 양념으로 끓이니 괜찮겠지 생각했다. 아, 정말 너무해. 두부를 냄비에 붓는 순간 알았다. 이건 순두부가 아니라 두부를 그냥 이긴 것이야. 결국 같은 맛이라는 것. 어쩌면 당연한데 왜 이걸 당하고서야 깨닫는가.


내 입맛이 까다롭냐면 그건 아니다. 지극히 싸구려 입맛이고 먹는거 가지고 까탈스럽게 구는 걸 얘기하려고 이 글을 쓰는 건 당연히 아니다.

왜 이렇게 맛이 없냐고, 아파트 장터를 돌아다니려면 좀 더 맛있어야 많이 팔리지 않겠냐고 볼멘소리를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이들은 못 사는 동네를 주로 다니겠구나. 그러니까 못 사는 동네 사람들은 이렇게 맛없는 것을 먹는구나.

먹는 것으로 맛없다 타령하고, 심지어 못살아서 그렇다니 참 재수 없는 소리인 줄 안다. 이 두부집, 꽤 잘 팔린다. 아니, 떡볶이도 그렇다. 아이들과 아줌마들이 바글바글해서 다른 노점이 다 끝나고 간 이후, 밤 10시까지도 영업을 한다. 결정적으로 말도 안 되게 싸다. 5천 원이면, 떡볶이와 튀김, 오뎅을 둘이서 실컷 먹을 수 있다. 두툼한 두부 한 모가 천 원이다. 콩나물이 (마트에서 파는 것을 기준으로) 다섯 봉지 이상이 들어있는데 2천5백 원이다. 나는 그걸 반만 사는데 천 원만 받는다. 일주일 내내 무쳐먹고 국 끓여먹어도 라면 먹을 때 조금 넣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하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40년 된 아파트이다. 친구에게 40년 된 아파트에 산다고 하니 귀신 나올 것 같은 동네를 떠올렸는데 와서 보더니 괜찮네,라고 놀란다. 나무가 울창하다는 것 말고는 딱히 다른 아파트와 구분되지 않는다.

나무도 40년 되었으니 숲을 떠올리면 된다. 이 나무들을 보고 이곳을 선택했다. 대전으로 이사를 결정하고 남편과 집을 보러 왔는데, 남편은 일부러 유성 ic로 들어가지 않고 동구 쪽을 택해서 들어왔다고 한다. 대전시내를 관통해서 시내 구경도 시켜주고 점점 나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단다. 사실 유성구 쪽은 남편이 살던 곳이라 몇 번 가봤다. 도시를 싫어하는 나는 아파트만 바글바글 모여있는 유성구가 싫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오자마자 나는 이곳을 가리키며 저기 가보자, 소리쳤다. 나무가 울창한 아파트라니, 내게는 최고의 선택지였다.

오래된 아파트여서 단단하다. 예전에는 그랬다. 튼튼하게 지었다. 몇십 년이 가도 끄떡없이 제대로 지었다. 그런 기술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지금은 왜 그리도 허술하게 짓는 것인지. 겉으로는 번지르르하겠지만, 속에는 텅 비거나 채워서는 안 될 것들로 채워져 있다. 사람이 사는 아파트를 지었던 예전에 비해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집을 짓고 있다. 40년 만에 우리는 많은 것을 잃은 셈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오래된 것이 좋다. 옷도 그렇다. 오래되어 날긋한 청바지, 클래식한 맛이 나는 트렌치코트 그런 게 좋다. 오래된 것들은 부담 없고 어디에 입어야 할지 정해져 있어서 편안하다. 새것의 화학약품 냄새가 없어서 좋다.


오래된 곳에는 오래도록 한 곳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다른 곳으로 갈 수 없는 사람들. 한눈에 보아도 조금 불편한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먹는 얘기에서 아파트 얘기, 오래된 얘기로 건너뛰었는데, 내 얘기는 이거다. 오래 이곳에서 이것들을 먹고사는 이들과 다른 것을 먹고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광우병으로 수입 소고기를 반대할 때 우려했던(못 사는 사람들은 병든 고기를 먹고 병들어가고, 잘 사는 사람들은 질 좋은 고기를 먹어서 안전한 시대가 오는 게 아닐까 우려했던 것 말이다.) 그런 시대가 어쩌면 맛, 즉 질로 구분되는 계급으로부터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갑작스러운 깨달음은, 맛있는 것을 먹어봤기 때문이다. 맛있는 것만 골라서 사다 먹는 사람들을 알기 때문이다. 남편이 온라인 유통마켓을 한다. 그동안 온라인으로 파는 것을 사는 사람들은 직거래이기 때문에 더 저렴하고 더 신선하기 때문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진짜 맛있는 것은 그리로 유통되고 있었다. 훨씬 비싸지만, 훨씬 맛있다. 마트에서 5천 원이면 살 수 있는 토마토가 2만 원이 넘는다. 하지만 마트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맛이다. 나도 그동안 직거래로 사다 먹은 것들이 있다. 김이나 미역, 어간장 등이 그렇다. 생각해보니 절대 싸지 않았다. 특별히 맛있어서 일부러 사다 먹었다. 한번 맛을 보면 다른 것을 먹고 싶지 않을 맛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맛’을 기준으로 더 좋은 것을 사 먹을만한 여유가 있었던 셈이다.   

   

맛있는 게 더 비싼 건 당연한 거 아니냐고? 새삼스럽다고? 아니, 장터에서 파는 보리밥과 팥죽을 더 맛있게 먹었던 사람으로서 동의할 수 없다. 그리고 먹던 걸 맛 없다고 내뱉어봐라, 당연한가. 모골이 쭈뼛하게 서는 것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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