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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Aug 04. 2020

영화 지중해

가끔 <지중해>라는 영화를 떠올린다.

그 영화가 실재하기는 했는가 확인하기 위해 첫 줄을 쓰다 말고 검색을 해봤다.

있다. 내가 기억하는 장면, 하얀 옷을 입은 포로들이 달리는 장면은 작은 사진으로 한쪽에 있고 포스터에는 웬 여자가 크게 나와있다. 나는 여자가 나오는 장면을 기억하지 못한다.

어쨌든, 영화가 실재하고 있다. 심지어 댓글에 최고의 영화, 인생영화라는 표현도 있는 걸 봐서 나만 그 영화를 좋게 기억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 나를 위로한다. 왜냐면, 내 주변 사람들은 다들 그 영화를 모른다고 해서 답답했다.


그런데 영화를 아주 좋아하는 편도 아니면서 나는 왜 그 영화를 잊지 못하는가. 무려 20여 년 전의 영화인데. 문득문득 그 영화가 떠올라 이렇게 글을 쓰게끔 할 정도로 깊이, 내 영혼 속으로 들어온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내 기억에만 의존해서 줄거리를 떠올려보려 한다. 어느 지역에 전쟁 중 포로들이 잡혀있다. 오랜 시간, 전쟁과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적 특성으로 그들은 포로로 잡힌 신세 같은 걸 잠시 잊고 그 섬에서의 '삶'을 누린다. 그러고 보니 그 여인, 포스터의 여인을 좋아하고 어쩌고 하는 장면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사건이 아니라, 한 개인을 주인공 삼은 것이 아니라 영화는 모든 이들이 사소한 일상에 행복해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한 개인에게 시선이 머물지 않았던 것도 내게는 중요한 지점이었다. 그저 그들 중의 하나, 많은 이들 중에 하나여서 편안하고 어느 누구도 주인공이지 않아서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순간이 될 수 있는 것.


그게 전부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들의 천진난만한 '생활'이 좋았다. 그러고 싶었던 것 같다. 인간은 그럴 수 있다고 믿고 싶었던 것 같다. 모든 게 복잡하고 복잡하게 생각하고 복잡한 감정처리에 미흡하던 시절에 보아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젊은 시절, 그런 단순함을 싫어했을 시절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단순함은 인간의 본성을 길어 올린 것 같고, 유토피아를 떠올리게 했다. 나도 저렇게 천진난만하고 싶다는 욕망, 특히 달리는 장면이 주는 편안함. 지중해의 하얀 집들과 포로들이 입은 흰옷 등이 어우러져서 더욱 밝고 빛났고 순수했다.

코미디나 개그 같은 깨 발랄한 것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그들의 변화와 편안함이 알 수 없는 감동이었다. 내게 평안에 가까운 평화와 지극한 순수에 대한 갈망이 있었구나 싶어, 나에 대한 측은지심이 생겨났다.


지금, 다시 이 영화가 떠오르는 것은, 아니 항상 이 영화는 나와 함께 했고 잊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다시 이 영화에 대해 쓰게 된 것은 지금 다시 그 어떤 불안과 곡절도 싫고 오로지 안온한 안식만이 필요하기 때문인 듯하다. 모든 갈등의 상황이 몸서리나게 싫다. 가만히 있어도 벽지마저 우는 습하고 더운 것도 모자라 밤새 폭우로 집을 잃고 생명을 잃는 날씨도 싫고, 비가 그치자마자 미친 폭염으로 푹푹 찌는 것도 싫고, 이런 날씨 속에 사는 우리들에게 단 한 번도 기쁨을 주지 못하는 뉴스도 싫고, 이 모든 것이 우리 인간들이 자초한 일이라는 자각도 싫다.

저토록 순수하게 살 수 있는데, 그렇게 살아도 순간처럼 스쳐가는 것이 인생인데...

그래서 더욱 웃음이 소중하다.


코로나로 인한 긴 스트레스 상황 때문이겠거니, 코로나에게 모든 핑계를 대고 밀쳐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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