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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Aug 18. 2020

이건 비밀인데

아이들이랑 치킨을 먹다가 비밀을 털어놨다. 남편이 없었기에 하는 말이었다.

"얘들아, 엄마는 사실 닭다리 별로 안 좋아해. 닭날개나 닭가슴살 쪽이 더 좋아."

"어? 근데 아빠가 맨날 치킨 먹으면 닭다리 하나는 꼭 엄마 줬잖아."

그랬다. 남편은 어느 날부터 치킨박스를 열면 닭다리를 어 이건 엄마 꺼, 하면서 나부터 챙겨주었다. 아이들은 하나 남은 닭다리를 누가 먹을 것인가로 눈치작전을 벌였고, 닭을 두 마리 시키게 된 배경에는 아이들이 크면서 양이 늘었다는 이유 말고도 닭다리를 하나씩 차지해보자는 심산이 더 컸다. 아이가 둘이기에 망정이지...


남편은 어릴 때 두산에서 일하셨던 아버님 덕에 꽤 KFC 치킨을 꽤 자주 을 기회가 있었다. 직원들에게 나오는 쿠폰 덕분이었다. 연애할 때 종종 그 쿠폰을 들고 와서 같이 먹었는데, 항상 닭다리 두 개와 닭가슴살이 바구니에 담겨있었다. 치킨이라고는 시장 끝쪽에 처갓집 양념통닭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한번 먹어본 게 전부였던 나는 무엇이 어느 부위인지 알 턱이 없었다. 남편은 당연히 자기가 맛있는 부위를 아니까 날름날름 집어다가 먹었고 그게 닭다리였다. 덕분에 나는 항상 닭가슴살만 먹었는데, kfc의 닭가슴살은 지금의 치킨보다 유난히 퍽퍽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치킨의 맛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어느새 남편이 된 그에게 어느 날 불평을 터트렸다. 나도 닭다리 좋아해!

아마 신혼초 누가 더 많이 배려하는가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던 무렵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니면 저 자기 입밖에 모르는 인간, 하면서 먹는 입도 미웠을 중년의 어느 무렵이었을지도.

아무튼 그때 남편은 깜짝 놀랐던 것이다. 항상 닭가슴살만 먹는 나를 보면서 좋아서 먹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의 당혹감, 자신을 배려하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등등이 스쳐 지나갔겠지.


"근데 아빠한테는 비밀이야. 아빠가 엄마 챙겨주는 거 계속하게 하고 싶어."

흐흐흐흫 웃는 나를 보며 아이들은 기막힌다는 듯이 웃더니,  

"나는 닭가슴살 좋아하는 여자 만나야지." 한다.

나는 가슴살을 쪽쪽 찢으면서 골똘히 생각했다.

젊었을 때의 나라면 분명 상대가 닭다리를 좋아한다고 하면 나는 닭가슴살을 좋아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게 더 사랑하는 거라고 믿었으니까. 아니, 나만이 아니라 우리 때는 그랬다. 그래서 서로 다르게 말하고 다르게 이해하고 다르게 행동하고 결국 꼬이는 짓을 하고야 말았다.

"그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란다. 상대가 좋아하는 답변을 하고 싶은 게 사랑하는 마음이니까."

"엄마. 우리 세대는 절대 안 그래. 걱정 마."

아이들은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래그래. 너희는 그러지 말아라. 그게 절대 도움이 안돼. 우리는 그걸 몰랐던 거 같아."


정말 요새 애들은 다 안 그럴까? 아닐 것 같다. 그건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지나치게 눈치 보는 사람의 습관이기도 하니까. 그때는 딸 아들 차별이라는, 딸은 유난히 양보를 해야만 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많은 여자들이 그게 몸에 배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차별과 눈에 보이지 않는 위계는 있다. 특히 가정에는.

치킨 먹다 말고 너무 멀리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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