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둥 Jul 21. 2020

신발

별별 상상

거의 10년 만에 신발을 샀다. 왼발 새끼발가락이 자꾸만 신발 끝에 닿았기 때문이다. 매번 닿는 것도 아니고 가끔 닿지 않을 때도 있다. 발이 붓는 정도에 따라 닿다가 안 닿다가, 많이 닿다가 조금만 닿다가 그러겠지.  


생각해보면 신발만큼 작은 단위로 구별하는 것이 있을까. 5mm 단위라니. 요즘은 10mm 단위가 많기는 하다. 그것도  240,250... 끝 위가 10이었는데 245,255... 이런 식으로 끝 단위가 5인 경우도 많아졌다. 업자들이 참 현명한 것 같다. 하지만 머피의 법칙처럼, 240mm를 신던 내가 어쩌다 보니 245mm를 신게 되었을 때는 끝이 10밖에 없더니 발이 더 커져서 250mm까지 커지고 나니 끝 단위가 5인 신발만 눈에 띈다.
발이 붓기에 따라 5mm 정도는 왔다 갔다 하는데도 살 때는 그 5mm가 얼마나 크게 느껴지는지.


옛날에 짚신을 신던 때에는 어떻게 했을까. 대체로 직접 만들어 신었으니 별 문제없었을까? 짚신 장사가 있다는 걸 보면 사서 신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얘긴데... 끝에 지푸라기를 조금 당기면 딱 들어맞도록 했을까?
정말 신기한 것은 똑같이 생긴 짚신을 각자 어떻게 알고 자기 신발을 찾아 신었을까 하는 것이다. 식구 많은 집은 나이 차이도 별로 없어서 동생이나 형이나 발이 비슷할 수도 있을 텐데.

마을 사랑방에 모여 놀고 집에 갈 때면 신발을 찾느라고 댓돌 앞에서 아우성이 일어났을 상상을 해본다. 둔한 사람들은 대충 신고 가버렸을 수도 있고 예민한 사람들은 자기 것에 아주 작게 표식을 해놨을 수도 있겠다. 댓돌 뒤에 살짝 감춰놨을 수도 있지.
아기 신발 그리면서 별별 생각을 다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곡성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