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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Sep 29. 2020

안주

술 마시고 돌아온 날은 남편의 주머니가 항상 빵빵했다.

담배를 피우던 시절에는 라이터를 그렇게 가져왔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모든 라이터를 다 챙겨가지고 오나보다.

집에는 라이터가 쌓여가고 남편 지인들의 구박이 늘어갔다.

담배를 끊은 뒤로 라이터를 가져오는 일이 줄어들더니 어느날 보니 집에 라이터가 하나도 없게 되었다.

가끔 올이 풀린 끄트머리를 그슬린다든지 초를 켤 일이 있을 때 라이터가 없어서 온 집안을 뒤지게 되었다. 넘쳐나던 라이터는 다 어디로 갔을까. 아쉬웠다.


어느 날부터 남편 주머니에 마른안주가 들어있다. 어느 때는 땅콩과 오징어 다리가 들어있고 어느 때는 황태 껍질이 들어있다.

식탁 위에 주섬주섬 꺼내 놓는걸 구박하면 그걸로 시원하게 해장국을 끓이면 좋지 않냐고 한다.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뭔가를 잃어버리고 오는 게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로 국을 끓이라니, 정말 어이가 없다.


어제는 출근 준비하던 남편이 휴지에 뭔가를 곱게 싸고 있다.

뭘 하냐고 물었더니 슬쩍 뒤로 감춘다. 뭔가 수상해서 뺏어보니 문어다리다.

어젯밤 술 마시고 집어온 것이다.

"아니, 냄새나게 그걸 왜 들고 왔어?"

어제 입었던 옷을 들어 킁킁 냄새를 맡았다. 아효~~ 냄새.  

옷은 그렇다 치고 먹다 남은 문어다리를 들고 왔다가 어디로 또 들고 가려는가?

"그걸 왜 챙겨가는데?"

"비상식량으로 가지고 있을라고."

배고픈 걸 참지 못하는 남편은 운전하다 말고 배가 고프면 눈이 감기고 졸려서 위험해진다. 그럴 때는 뭐라도 입에 집어넣어야 한다. 그럴 때 쓰려고 챙겨 나가는 것이다.


이정도면 취중이 아니고 계획적인 것이다. 내일을 대비해 안주를 시켰을 것이 틀림없다. 전생에 자린고비의 그 영감탱이였을 것이다.

이러다 내가 라이터처럼 문어다리도 아쉬워할까 봐 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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