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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Sep 25. 2020

오늘은, 남편이 요리사

남편이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심심해진 것이다. 남편은 심심한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한다. 벌써 3주째 주말마다 주방을 책임지고 있다. 나는 앗싸, 다. 해주는 거 먹고 맛있다고 추임새만 넣어주면 된다. 예전에는 요리가 끝나면 뒷처리는 나몰라라 했는데 이제 뒷처리까지 한다. 어절씨구~


지지난주에는 초밥을 해주었다. 생선 없이 야채로 만든 초밥이다. 나는 쪽파와 오이초밥을 가장 좋아한다. 쪽파의 알싸한 매움과 오이의 아작아작한 식감이 아주 잘 어울린다. 남들은 밋밋하다고 할만하지만 나는 야채만으로 내는 신선한 맛이 좋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기에 맛살을 마요네즈와 비벼 넣어 약간은 느끼할 수 있는 초밥을 해주었는데 아주 마음에 들었다. 고소한 풍미가 입맛을 살려주었다. 오랫만에 아주 맛있어, 를 연발하며 먹었다.  

남편이 요리를 하면 곤란한 점이 하나 있는데,  본인이 만족할때까지 연습을 한다는 것이다. 그 얘기는 초밥을 계속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두번으로 끝났다. 한동안 초밥을 먹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지난주에는 닭봉과 닭날개구이를 했다. 닭을 씻어 우유에 재어놓고 마트에 가서 과자를 잔뜩 사왔다. 남편의 필살기다. 어느 요리사의 영상에서 생선에 잘게 부순 과자를 묻힌 후 오븐에 굽는 것을 보고 응용한 것이다. 과자가 부족하면 라면도 좋고, 플레이크도 좋다. 온갖 과자를 부수어 튀김가루 대신 묻혔다. 중요한 것은 닭에 밑간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닭의 적당한 고소함과 과자의 단짠이 어우러진다.


남편이 요리해주는 걸 먹는 재미가 붙었다. 어제 조금 이른 퇴근을 했길래 아이들을 부추겼다. 아이들은 짜장면을 해달라고 했고 남편은 흔쾌히 짜장면을 만들기 시작했다. 고기를 많이 넣고 감자와 호박을 넣어 옛날 짜장을 만들고 칼국수면을 끓였다.

남편의 요리를 먹으면 불편한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먹으면서 계속 그 요리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리에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몹시 버거운 일이다. 옛날짜장과 유니짜장, 간짜장의 차이를 들었다. 다음에는 먹어야 한다.


남편은 원래 요리하기를 좋아했다. 배우기도 했다. 양식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그때도 학원에 다녀오면 집에서 연습을 했다. 첫번째 할 때는 맛있게 먹지만 두번째부터는 평가를 해주었다. 그랬더니 삐친다. 시험에 도움이 되라고 엄중히 평가를 해준 것인데 삐치다니. 요리사 시험에 맛은 안들어간단다. 칫. 요리가 맛이 젤로 중요하지.
게다가 양은 적으면서 필요한 재료는 많고 그걸 활용한 다른 요리를 할줄 모른다는 무지막지한 문제점이 생겼다. 온갖 소스를 냉장고가 터져라 사놓고 그대로 방치했다. 살림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대로 봐줄 수가 없다. 경제적으로도 타격이 크다.

게다가 남편의 요리는 매일 먹는 식사로서는 간이 쎘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어쩌다 한번 먹어야 맛있는 '요리'다. 그렇게 남편이 주방에 오는 것을 눈에 띄게 거부했고 남편은 주방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잘 구슬러 얻어먹을테다. 간이 쎄면 옆에서 적당히 잔소리도 하고 재료가 남으면 인터넷을 뒤져 그 재료로 해먹을 수 있는 요리명을 대며 남편의 요리 욕구를 자극할테다.

이것은 순전히 남편을 위한 것이다. 심심한 남편에게 즐거운 놀이를 만들어주는 것이요, 놀이를 생활화하도록 돕는 길이요, 앞으로 우리 부부 관계를 더 풍성히 하기 위함이다.
점차 간을 못보고 점차 입맛을 잃고 점차 요리의 창의성을 잃고 있는 내게도 조금은 도움이 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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