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둥 Sep 22. 2020

떨림과 울림

<떨림과 울림>을 읽으며

물리학자 김상욱 님의 <울림과 떨림>을 읽고 있다. 물리학 이야기라고 해서 약간 겁먹었는데 얼마나 재미있는지 야곰야곰 아껴가며 읽는다.
이과와 문과를 구분하는 것이 의미 없는 일인 것을 이 분을 통해 느낀다. 글을 정말 잘 쓰신다. 모든 문장이 단문이다. 챕터마다 이야기가 물 흐르듯이 이어진다.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콱 꽂힌다.


어제는 이런 문장을 읽었다.
‘모든 물체는 서로 끌어당긴다. 따라서 서로가 서로에게 낙하한다. 지구는 태양에게 낙하하고 있지만 태양에 닿지 않는다.’


이 문장은 관계, 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심오하고도 아름다운 도입이 아닌가. 그동안 내가 왜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토록 서툴렀는지, 왜 자꾸만 누군가에게 낙하하는지, 그럼에도 가닿지 않는지 알게 되었다.  


‘질량이 있으면 주변에 중력장이 존재한다.... 달은 지구를 직접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만든 중력장을 느낀다.’
이 말이 이토록 설렐 일인가.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말을 이렇게 물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니.
떨림과 울림으로 서로의 존재를 느끼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우주의 법칙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가까이 들러붙었고, 왜 끌리는지 모르겠다며 낙하하는 나 자신을 탓했다.


‘존재가 있으면 그 주변은 장으로 충만해진다. 존재가 진동하면 주변에는 장의 파동이 만들어지며, 존재의 떨림을 우주 구석구석까지 빛의 속도로 전달한다. 이렇게 온 우주는 서로 연결되어 속삭임을 주고받는다. 이렇게 힘은 관계가 된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우주 저 끝에서도 다 안다. 또한 우주 저 끝에 있는 무언가의 존재와 나는 연결되어 있다. 내 존재를 알리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아니, 의식하지 않아도 쉬지 않고 온몸으로 내 존재를 알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나, 무엇이나, 먼지조차도 말이다. 세상 모든 것에 연민이 생긴다.

'속삭인다'가 아니라 '속삭임을 주고받는다'니 그것도 위로가 된다. 일방적인 애정이 아니라 쌍방이었고 그것도 끊임없이 쉬지 않고 서로를 향한다.

내 연필, 내 양말, 내 지우개 가루에 가진 애착은 당연한 우주의 법칙이었다. 쓸데없이 힘을 겨루었다. 주저 없이, 닿지 않는 그곳으로 낙하하리라. 아니, 낙하하는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상사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