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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Sep 16. 2020

상사화

한참 힘들던 어느 날 한의사 선생님이 봄바람처럼 살라는 말씀을 하셨다. 몸이 나으려면 마음부터 다스려야 한다면서, 음악도 거친 음악 말고 봄바람처럼 편안한 음악을 들으라고 하셨다. 하지만 마음이 봄바람이 아닌데 어떻게 봄바람 같은 음악이 귀에 들어오겠는가.      


그때 본 상사화는 이제 막 이파리가 솟아올라오고 있었다. 이파리와 꽃이 따로따로 피어나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상사화. 차가운 땅을 뚫고 올라오느라 그랬는지 이파리 끝이 뭉툭하니 끝에만 색이 바래 있었다. 물론 바래었다는 것은 내 마음이 반영된 것이겠지. 그저 연한 색을 띠었던 것뿐일지도 모른다.

뭉툭한 이파리 몇 개가 겹치고 겹쳐져서 삐죽 고개를 내밀었는데 방금 흙을 헤치고 나온 이파리라기에는 말갰다. 봄바람을 맞아서 그럴까. 부드러운 봄바람에 뭉툭한 이파리를 흔들어대면서 풀처럼 무성해진다.     


오늘 본 상사화는 씨방을 한껏 뻗어 올리고 있었다.

봄바람은 마음을 달래었을까. 그리워하는 마음 달래어 이토록 선연한 빛깔을 빚어냈을까. 그 무성했던 이파리들이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말라버리고 한줄기 꽃대만 밀어 올렸을 때 봄바람은 알았을까. 아무리 그리워도 만나지 못하는 숙명을 삼키고서야 이토록 도도한 자태를 지니게 되었을까.

누가 봄바람을 편안하다 하는가. 저글링 같은 삶을 되풀이하게 해도 무지막지한 따뜻한 힘에 저항하지 못하는 것이지. 불쑥 반발심이 고개를 들었다가 바로 꼬리를 내렸다.

  

힘. 바로 그 따뜻한 힘일 것이다. 저항의 기운조차 없는 받아안음이었을 것이다. 그리움은 그리움대로 마음 한켠에 둘 것이다. 몸이 좋아진 건지, 내 안에도 봄바람이 불었는지 바로 수긍이 되었다.      

‘순간을 만끽하고 내일을 갈망할 것.’

덕주님 말씀이다.

이파리는 이파리대로, 꽃은 꽃대로 순간을 만끽하며 내일을 갈망한 것이다. 그렇게 상사화는 씨방을 뻗을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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