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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Sep 09. 2020

아프냐? 나도 아프다

주 2회 한의원에 다닌다. 발목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소화도 잘 안 되고 그런 것들을 치료한다. 어떤 날은 한의원에 다녀오면 개운하지만 어떤 날은 오전이 후딱 지나가 버려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느껴진다. 오전에 미리 할 일을 하고 오후에 가면 좋은데, 오후에 간 날은 저녁 할 때 너무 힘들다. 용을 쓰고 밥해 먹고 나면 나 자신에게도, 식구들에게도 짜증을 내고 있다. 애써 치료하고 도로아미타불이 되어버리는 거다.  

오늘처럼 유난히 많이 기다리고 찜질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날은 딱히 급한 일도 없으면서 부아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이제 안 오고 싶다!! 를 속으로 열 번쯤 하고 나서 정신을 차린다. 이러면 안 되지...(라고 생각은 하지만 여전히 약 오른다.)


매일 글 쓰고 매일 그림 그리겠다는 목표를 정한 것은 나를 돌보기 위함이다. 그런데 왜 내 몸을 돌보는 일에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이것도 나를 돌보는 일인데. 어쩌면 더 적극적인 돌봄의 형태인데.

매일 걷기도 한다. 가능하면 밖에서, 안되면 계단, 그것도 안될 경우(얼마 전 태풍이 많이 불 때는 높은 층으로 올라가는 것도 무섭더라.) 집에서 필라테스를 한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두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쾌감은 크다. 그림이나 글도 그렇다. 꽤 긴 시간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고 나면 스스로 기특해하지 지겨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한의원 가는 시간은 그다지도 아까울까.


어쩌면 그것은 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의료행위를 받아야 하는 일이라서, 같은 비용을 들여 더 오랜 시간 서비스를 받아도 그다지 효용성을 덜 느끼는 것이 아닐까. 쓸데없는 자립심, 불가능한 온전함에 대한 지향인 것을...


또 어쩌면 건강한 상태가 정상이라는 세상의 편견에 사로잡힌 탓은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정상인데 나만 정상화하기 위해 시간을 들이고 있다는 억울함이 나를 할퀴고 있는 것 말이다. 다른 사람들도 어딘가 아프고 어딘가 불편하고 어딘가 비정상인 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것은 엄청난 위안이 되었는데 나만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그러할 것 같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나 이해를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누구나 아프고 병들어가고 또는 애초에 어딘가 부족하고 예민하게 태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중요하고 필요한 인성교육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아프다. 너도 아픈 데가 있을 것이다. 이 말을 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누구나 아프고 누구나 남의 도움을 받으며 누구나 죽어간다. 그 사실이 너무나 다행이지 아니한가.   


덧. MLB 김병현 선수도 신장질환이 있단다. 몸으로 뛰는 사람이라 당연히 건강한줄 알았는데 병 싸우며 몸을 쓰고 있었다. 아프다는 것은 어쩌면  반드시 회복되어야 할 무엇이 아니라 살면서 함께하는 소리나 냄새같은 하나의 감각일 뿐일지도 모른다. 또한 병은 고쳐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특징, 각자  타고난 개성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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