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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Sep 04. 2020

남편의 애인

“애인 왔어!”

퇴근하고 들어오는 남편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이제 한동안 남편은 정신을 못차리고 서울로 들락거릴 것이다. 주말이고 뭐고 집에 있을 날이 없겠다. 저녁이면 애인이랑 전화로 시시덕거리겠지.


남편의 애인은 6개월은 배를 타고 6개월은 육지에 있는 마도로스다. 초등때부터 500원에 두개짜리 길다란 막대 순대 사서 나눠 먹던 절친이다. 육지에 없는 6개월 동안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고, 육지에 있는 6개월 동안 얼마나 열심히 만나는지 절친을 넘어 ‘애인’이라고 빈정댔더니 아예 애인 자리로 들어앉았다. 나는 빈정대며 한 말인데 남편은 정당화하는 단어로 쓰며, 이제는 다른 친구들까지 두사람을 애인사이라고 부른다고 하니 내가 정말 할말이 없다.  

아무리 오랜 친구이고 서로의 특성을 잘 안다고 해도 애인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남편은 평소 어른들께 안부를 묻는 전화와 업무를 위한 전화 말고는 먼저 전화를 거는 법이 없다. 용무도 없이 누군가에게 전화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 애인 외에는.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서 해봤어, 라는 남편의 말소리가 정말 낯설다. 그저께 만나고 돌아와놓고 어떻게 지내는지 뭐가 그리 궁금한 건지.


게다가 어찌나 세심하게 보살피는지 아기고양이 키우는 집사 수준이다. 술을 좋아하는 남편과 달리 그 애인은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고, 수영을 좋아하는 그 애인과 달리 남편은 수영을 거의 못한다. 딱히 둘이 할 수 있는 게 없다. 기껏해야 당구를 조금 치는 정도다. 그래서 애인이 육지에 있는 6개월간 프로선수마냥 당구장에 다닌다. 집에서도 당구 채널을 챙겨본다. 나눌 이야기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나도 남편과 함께 할 꺼리가 없는 건 마찬가지인데, 나는 같이 할 게 없으니 그냥 집에 있으라고 하고 혼자 술마시며 돌아다니면서 말이다. 내가 남편의 애인이었던 시절로 돌아가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해봤잔 내 얼굴에 침뱉기다. 그런 사람이랑 왜 결혼했냐는 소리나 들을 게 뻔하니까. 어쨌는 남편은 지나치게 나의 자립을 요구하는 스타일이었다. 꼬박 한 시간 거리에 살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데려다준다거나 하는 자상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게 남편의 천성인 줄 알았는데 그 친구, 아니 애인에게 대하는 걸 보면 내가 잘못 길들인 게다.      

들어온다는 소식이 왔다고 해도 자가격리를 해야 하니 14일간 애를 태우겠거니 했는데, 6개월간 배안에서 변동이 없어서 자가격리도 하지 않는단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입항수속이 늦어져서 배가 항구에 선 채로 일주일을 기다렸다. 남편은, 육지가 보이냐, 무슨 항이냐, 물어대며 마치 해안가에서 손이라도 흔들어줄 듯이 매일 밤 물어댔다.

드디어 들어오는 날, 남편은 까탈스러운 애인의 입맛에 맞는 식당을 미리 예약한다. 같이 여행갈 장소를 물색한다. 함께 할 친구들을 모은다. 행여 애인이 낯을 가릴만한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에 대해 미리 이런저런 장점을 크게 부풀려 말해주고 재미있을거라고 다독인다. 그렇게 주의를 했건만 여행중에 애인의 차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단다. 행여 삐질까봐 친구들을 단속한다. 지극정성이다.      

집에 와서도 그 애인과의 이야기를 시시콜콜히 내게 말한다. 안물안궁이지만 끝도 없이 이야기한다. 그런거 있지 않나. 사랑을 하면 그 사람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은거. 딱 그런 표정이다.

기가 차서 한마디하면

“원래 오랜 친구가 더 조심스러운 거야.”

라고 말한다.

너무 맞는 말이라 할말이 없다. 그래도 뭔가 억울하다.

그나마 내가 덕질을 시작하면서 이 억울함이 어느 정도 상쇄가 되었다. 피장파장이니까, 뭐 이런 생각으로.

그동안은 그래도 내가 위너였다. 난 1년 12달 덕질하는 거고 남편은 6개월밖에 못보니까.  그런데 이놈의 코로나 때문에 반년이 지나도록 덕주를 못보는데 남편은 애인이랑 잘도 놀러다닌다. 우아앙앙 억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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