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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Sep 11. 2020

풍선초


너, 정말 이럴거야?

엄마, 미워!

(문, 꽝!)     




아가, 오늘도 엄마가 네게 미운 얼굴을 보여주고 말았구나.

미안하다. 아가.      

아가. 풍선초를 기억하니?

엊그제 엄마랑 산책갔을 때 봤던 연두색 풍선 꽃 말이야.   

   

아침마다 엄마는 풍선초처럼 부푼 마음으로 너를 만나.

(바람에 한들한들 흔들리듯이) 너와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고

(여린 덩굴손이 줄을 타고 올라가듯) 앙증맞은 네 몸을 꼭 끌어안으며, 커가는 너를 자랑스러워하지.     

 

하지만 풍선초는 혼자서는 자라지 못해.  

옆에 있는 나무에 기대거나,

정원 주인이 매어주는 끈에 의지하지.

엄마도 너를 키우면서 너에게 기대어 배우고 자란단다.      


(풍선초의 예쁜 하트 모양이 바람따라 계절 따라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듯이)

너를 마음껏 안아주고 보듬어야 할지

멀리서 지켜보고 있어야 할지 헷갈릴 때도 있어.

풍선초가 바람을 탓하듯 엄마도 날씨 탓을 한단다.      


갈색으로 변해버린 씨주머니를 보고 네가 웃었잖아.

너를 사랑하는 마음과 상관없이 엄마의 감정이 흉해져 버릴 때도 있단다.

그냥 웃어 넘겨주렴. 너를 따라 나도 웃어넘기게.      


엄마는 조그맣고 하얀 풍선초 꽃이 안타까워. 너무 보잘 것 없이 작아서 눈길을 끌지 못하니까 말이야.

너의 웃음이 너무 환해서 엄마의 사랑이 눈에 띄지 않을 때도 있거든.      


그래도 말이야. 아가, 그거 아니? 풍선초는 풍경덩굴이라고 불리기도 한대.

나는 풍경이라는 말이 좋더라. 그 자체로도 아름답고, 무언가를 빛나게 해주며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기도 하니까.

엄마는 네게 풍경이 되어주고 싶어.       


빵빵하게 바람이 들어간 풍선이 있는가 하면 조금 바람 빠진 풍선도 있었잖아.

연둣빛 풍선 안에 품은 바람은 씨앗을 품고 씨앗을 지키고 씨앗을 자라게 해.

씨앗은 시간과 갈망이 포개지고 삭으면서 단단하게 여물겠지.   

그러니 아직 연두색의 풍선을 터트리면 안돼. 아직은 기다려주렴.      


가을이 깊어지면 풍선초는 온몸이 누렇게 쪼그라들어.

스산한 바람에 잎을 떨구고 스러지지.

바로 그때야. 두 손으로 빵하고 터트려보렴.

숨길 수 없는 완벽한 사랑이 숨어있단다.      


언뜻 보면 그저 평범한 검정색과 흰색이지만,

둥글려 보면 뚜렷하게 보이지. 진하고 완전한 모양으로.  

한치의 이지러짐도 없이 완벽한 형상 위에 아로새긴 하트 문양을 확인하렴.

확실하게 마음을 전하고 싶은 온전한 마음이 담겨있어.     

 

아가. 엄마가 깊어질 때까지, 단단한 씨앗으로 영글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주렴.

엄마의 사랑을 전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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