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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Oct 26. 2020

몸에 길이 나야 끝이다

그림과 사유

시인 조용미 님은 '몸에 길이 나야 끝이다'라고 했다. 2년간은 정말 매일 그렸다. 매일 그리기니까 매일 그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매일은 매일이어서 너무 버겁다. 인물화 책을 보고 따라 그리기를 100일 정도 했다. 스트레스받지 않고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따라 그렸다. 하지만 100일을 끝내고부터는 무엇을 그릴지 생각하고 어떻게 그릴지 고민하느라 하루해가 어떻게 저물었는지 모른다. 오로지 하나에 마음을 모으다 보니 하루가 훌쩍 지나가버리는 게 신기했다. 전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일들을 처리하고 살았는데 단 한 가지만 하고도 살아지다니, 진작 이렇게 살았어야 했다.

하지만 매일은 생각보다 빨리 오고 빨리 지나가버렸다. 여유롭게 살기 위해 하나를 그린다고 했는데 그 하나를 하느라 허덕였다. 이건 반칙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특히 명절이나 휴가, 가끔 가는 지방 강의에서도 그림을 그려 올리려면 몹시 부담스럽다. 대충 그려서 하루를 때우면 다음날도 대충의 유혹이 따라온다. 하나의 그림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린다는 것이 중요하니 좀 더 여유를 가지자. 명절에는 쉬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다 아예 주말도 쉬기로 정했다. 더 오래 그리기 위한 방책이었다. 결론적으로 잘한 것 같다. 똑같은 날들이 이어지는데 왜 주말이라는 것을 만들어 주기적으로 쉬게 했는지 몸으로, 아니 그림으로 느꼈다. ‘잠시 쉬기, 잠시 딴짓하기, 잠시 잊기’의 과정이 필요하다.   

   

언젠가부터 그림을 그리면서 생각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그림에 덧붙이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 속에는 갖가지 사유가 떠다닌다. 깊은 사유는 통찰을 일으킨다.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가 통찰을 일으키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그림에 덧붙인 이야기에 사람들이 반응했다. 나중에는 이야기를 먼저 떠올리고 그에 맞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정식으로 ‘오늘의 글’, ‘매일 글’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1년 정도 진행했는데 매일 쓰지는 못했다. 책을 쓰고 있었으므로 글은 매일 썼지만 sns에 올릴 글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이 말했다. 너는 왜 네 이야기를 안 해? 나는 항상 뭔가 이야기하는데 상대는 내가 이야기를 안 해서 서운하다는 것이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겪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나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보다는 내 안에서의 변화와 질문에 더 흥미를 느끼고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내게 일어나는 ‘사실’보다 내 안의 ‘느낌’과 '사유'를 말하다 보니 상대는 내게 일어난 ‘일’을 모르고 내가 이야기를 안 한다고 여기는 듯하다. 내게 그건 ‘사실’이 아니라 나의 ‘환경’ 일뿐인데도. 또 어쩌면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절로 자기 방어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려면 달라져야 했다.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느낌’조차 객관성이 떨어진다. 그저 일기가 되어버린다. ‘오늘의 글’을 쓰면서 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sns의 좋아요, 라는 장치가 탄탄한 자기 방어의 벽을 조금씩 허물어주었다. 그동안 말하지 않은 것을 다 쏟아낼 듯이 매일 새로운 이야기가 생각났고 수다스럽도록 떠들어댔다. 매일 글 쓰고 그림을 그린 시간은 치유의 과정이 되어주었다.


집을 홀랑 날린 적이 있다. 친구가 제주도에 있는 절에 데리고 갔다. ‘아비라기도’라는 수행이었다. 절을 삼천 배 하는 거라는데 겁도 없이 거길 따라간 거다. 당시 나는 무릎이 안 좋아서 무릎이 드러난 치마만 봐도 내 무릎이 저려올 정도였고 지하철 타러 계단을 내려갈 때도 옆으로 게처럼 걸어내려 갔다(그때는 지금처럼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군소리 없이 절을 했다. 절실한 신자여서가 아니라, 거부할 여력이 없었다. 어쩌면, 내 앞에 놓인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여겼던 것도 같다. 3박 4일인지, 4박 5일인지 잘 모르겠는데 그 기간 동안 밥 먹고 자는 시간 빼고 오로지 절만 했다. 긴 수행을 끝내고 친구가 나를 주지스님께 데려갔다. 스님은 내게 절을 아주 잘하더라, 고 덕담인지 위로인지를 해주었다. 수천 명의 신도들이 절을 했는데 내가 특별히 눈에 들어온 건지, 아무에게나 그렇게 말해주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날부로 무릎이 안 아팠다. 다 나아서 계단을 뛰어다녔다. 이 무슨 사이비 종교 교주 같은 소리냐, 하겠지만 사실이다. 세상에는 간혹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다리만 나은 게 아니고 아마 마음도 나아져서 왔던 것 같다. 집을 날렸는데 아무렇지도 않다고 해서 친구들이 그걸 오히려 걱정했다. 하지만 나는 진짜 괜찮았다. 아니, 최소한 그때는 견딜 힘이 있었다.      


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을 보면, 걷기는 마음을 돌아보는 행위이며, 비생산적인 인문학이다. 비생산적이라는 말 그대로, 몸이 걷는 행위를 하는 동안 생각조차 멈추는 경우가 많다. 잠시 멈춤의 시간, 그림을 잊고 생각도 잊고 오로지 걷기만 하는 휴지기. 걷기처럼 절을 하는 동안 모든 것이 멈추었다. 그 잠깐의 시간이 휘청이던 내 삶을 장악하고 다시 가도록 해주었다. 멈춤은 그런 힘이 있다. 버리고 비우는 것을 잘하고 싶다. 잠잘 때도 스위치를 내려버리듯이 잠들고 싶다. 멈추는 시간을 통해 전환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짧은 기간 동안 나를 치유한 그 삼천배와 3년이라는 기간 동안 매일 그림을 그리는 일은 어쩌면 같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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