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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Oct 25. 2020

재능보다 용기가 필요한 때

한 권의 책


하나의 마디를 넘는 것, 그것이 필요했다. 매일 그림을 그리다 보면 한 장의 그림을 너무 쉽게 그리고 너무 쉽게 다음으로 넘어가버린다. 물론 쉽게 그리는 건 아니지만 오래 묵혀서 나오는 그림과는 분명 다르다. 

실전에 도전하기로 했다.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 싶은 그때가 적기다. 하지만 올라야 할 계단을 눈앞에 두고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도리질하고 싶어진다. 언제까지 계단을 쳐다만 보고 있을 것인가. 언제까지 그림만 그리고 그림책을 미룰 것인가. 

"아티스트를 중심무대에 올려놓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용기인 경우가 많다." <아티스트 웨이>에 나오는 말을 첫 드로잉북에 적어놓았었다. 

그래서 시작했다. 한 권의 책에 도전!          


혼자서 하는 것은 뭐든지 잘하는 내가 잘못하는 한 가지는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분명히 밑그림만 잔뜩 그리다 끝날 것 같아서 8주 안에 내 그림책 만들기 코스에 등록을 했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 그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이 있었다. 몇 개의 샘플을 가져갔고 예상대로 하나의 샘플을 쉽게 결정해주었다. 나도 남의 것은 쉽게 결정한다. 내 것을 그리 못하는 건 미련 탓이다.          

한주에 하나씩 이야기 구성에 따른 그림을 준비해 갔다. 때로는 한 장면을 완성하는데 한 달이 걸리기도 했고, 어떤 것은 도저히 마땅한 구상이 나오지 않아 모든 것을 마치고 난 뒤로 미루기도 했다. 누가 보는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게 익숙지 않아서 그곳에서는 그리지 못했다. 주로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생각과 어떤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구상하는 방법이나 구상한 것을 실현해나가는 방법에 대해 배웠다. 특히 인물의 비율과 각도에 따른 모양을 바로잡아주었다. 말 그대로,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고 생각한 대로 그리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각도의 얼굴을 억지로 만들어냈던 것 같다. 너무 사실적이지 않나 싶을 만큼 보이는 대로 그리게 했는데 그게 훨씬 자연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장면을 만드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공력이 필요했다. 머릿속에 딱 떠오르는 장면이 있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렇지 못하면 글부터 손봐야 한다. 내 머릿속에도 구상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다른 이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리 없다. 구상이 되었다 해도 더 나은 표현은 없는지 자료를 모으고, 내가 할 수 있는 그림인지(이게 가장 중요하다. 아무리 괜찮은 구상이 떠올라도 내가 그것을 구현해내지 못하면 그만이니까) 검토했다. 선생님은 비율이 잘못된 것은 없는지 살펴봐 주었고, 내가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갖도록 격려해주었다. 조언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면 문제가 있는 부분을 수정해서 다시 그렸다. 한 장의 그림을 위해 최소 세 번에 걸쳐 검토하고 완벽(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대한)하다고 여겨질 때까지 그리고 또 그렸다. 의도한 것에서 한 곳만 삐끗해도 다시 그려야 했으므로 어떤 것은 열 번도 넘게 다시 그린 적도 있다. 매일 한 장의 그림을 완성이랍시고 끝내던 것에 비해, 그리고 의도와 달리 그려져도 그 나름대로 그림의 묘미라고 넘어가던 것에 비해 훨씬 세심하고 내밀한 정성이 필요했다.           

처음 그린 그림과 틀리지 않게 다시 그린 그림 중에 어떤 것이 더 나은 그림이라고 말 못 하겠다. 완성도는 더 높겠지만 그림의 맛은 떨어진달까, 다시 그린 그림은 그런 면이 있다. 똑같이 그린다고 해도 느낌까지 살리기는 힘들었다. 그림은 어떤 느낌이 살아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완성을 위해 반복하고 다시 세심하게 살피는 경험이 필요했다. 더 깊어지는 길이라고 믿는다.       

   

글은 전혀 도와줄 수 없는 구조였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내 몫이었고 역시 결정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상의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혼자서도 충분히 만족스러워야 진정한 작가로 거듭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아직 멀었다.     

그림을 마무리하면서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글씨체와 글씨 크기가 남았다. 그림책은 글씨체도 하나의 그림이다. 글씨를 어디에 배치할지는 그림 그리기 전에 미리 고민해 두어서 다행이다. 또 있다. 판형과 종이. 어떤 종이와 판형을 쓸 것인지에 따라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사실 판형도 그림을 그리기 전에 미리 생각해두어야 한다. 그래야 그림의 크기와 방향을 정할 수 있으니까. 판형은 그림의 형식뿐 아니라 내용도 좌지우지한다. 

그렇게 <엄마는 뭐가 되고 싶어?>는 하나의 독립 출판물이 되어 나왔다. 처음으로 내 그림책이 서점에 깔렸다. (다시 정식 출간을 하기로 계약까지 했는데, 아직 정식 출간을 할 깜냥이 못 되는지 진행하던 중에 그만두었다. 독립출판물로 만족하기로 했다.)


다행히 많은 독자들이 나만의 그림체에 대해 좋은 평을 해주었다. 특유의 느낌이 있는 그림체라고 말해주었는데, 내가 생각해도 세상에 없을 그림체다. 좋고 나쁨을 떠나 독자적이라는 점에서 만족스럽다. 아무도 그런 그림을 그리지 않을 테니까.          

브런치를 통해 초록비 책공방 출판사에서 출판 요청을 받아 지난여름에 출간한 철학 에세이 <요즘 덕후의 덕질로 철학하기>에도 내 그림을 싣게 되었다. 그림체가 또 하나 만들어졌다. 내 책이어도 내 그림을 마음대로 실을 수는 없는 건데 내 그림을 아껴주신 출판사 대표님 덕에 가능했다.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지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내 뜻대로 하게 해 주었다. 몇 개의 그림을 보내 놓고 어떤 게 좋을까요? 물었더니, 다 좋으니 내가 그리기 편한 쪽을 택하라고 해주셨다.  

책에 많은 그림이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권의 책에 그림을 실으려면 일관된 그림체를 유지해야 한다. 완성도 있게 내놓기 위한 과정을 거치면서 그것은 작은 마침표가 되어 내게 남았다. 내 그림이 책이라는 물성 안에 담기다니, 감격스러웠다. 어떤 이는 책에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라고 혹평을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림이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쳐버리기도 했지만, 내게는 '그림'으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       


전시회를 하고 도록을 만들고 또는 책을 만드는 과정은 내 작품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함이지만 그 이전에 자신 앞에 놓인 계단을 밟고 올라서기 위함인 것 같다. 없는 계단을 만들어서라도 올라서야 한다. 그것은 내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책을 냈으니 작가가 되었다고 좋아했다. 며칠 후, 한 출판사 대표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작가란, 책을 출판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그 대표님은 앞에 앉아있는 작가라는 이름의 나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 해준 말인데 왜 나는 가시방석인가... 열심히 쓰고 그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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