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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Oct 22. 2020

나는 누구인가

나만의 색깔


취미 예술가를 위한 드로잉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지역별로 모임을 하는데 작년 말에 그 모임에서 전시회를 했다. 서너 번밖에 참여하지 못했던 나도 전시회에 끼워주었다.

취미 예술가 모임에 함께 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한 번도 그림을 취미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본업이 아닌 것은 취미가 아니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취미라고 하면 왠지 쉬엄쉬엄 해도 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나는 그림을 쉬엄쉬엄 하지 않는다. 내가 쓰는 에너지의 거의 전부를 그림에 쏟아붓고 있다. 그러니 그림에 대한 진심이 본업으로 하는 사람보다 적을 거라고 속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드라마 <나빌레라>에서 덕출 노인은 말한다. 한 번은 날아오르고 싶어서,라고.

이 장면을 우연히 보고 드라마를 정주행 하기 시작했다. 여기서도 나이 든 사람이 하는 것은 여가활동이며 취미일 거라고 보고, 가족들은 뜯어말리기까지 한다. 나, 취미로 하는 거 아냐. 정색을 하고 말하기까지 그는 얼마나 자신의 마음을 우물처럼 들여다보고 참고 또 참았을까.

그렇다면 나에게 그림은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정식으로 그림쟁이가 되겠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림으로 먹고 살 생각이 없다. 하지만 동시에 그림과 상관없이 살 생각도 없다. 그림은 나를 표현하는 도구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글이 나를 드러내듯이,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들듯이, 내가 걸어간 길이 나의 지향이 되듯이, 그림도 나를 드러내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주는 그 하나이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내가 속할 수 있는 모임은 취미 예술가 모임이다. 거기도 감지덕지이긴 하다. 소속할 수 있는 집단이 없다는 것은 불릴 이름이 없다는 뜻이기도 해서 조금 안쓰럽다. 


그래서 어떤 그림을 전시했느냐면, 다른 사람들이 내지 않을 것 같은 분야의 그림을 골라서 냈다. 가장 잘 그린 그림을 고를 것인가, 가장 마음에 드는 걸 고를 것인가, 가장 나다운 것은 무엇인가 등등 여러모로 고민했지만, 결국 눈에 띄고 싶은 욕심을 이기지 못했다.

취미 예술가들의 그림은 대체로 어반 드로잉이나 그림 저널, 귀여운 캐릭터 일러스트가 많다. 나는 애초에 그런 그림이 거의 없지만, 그래도 비슷한 느낌이 나는 것들을 다 빼고 나니, 크로키나 사포그림 등 독특한 것들만 남았다.

전시회를 하면서 다시 한번 느낀 것이지만 그림은 그린 사람을 똑 닮는다. 수채화를 그리는 사람에게서는 풋풋하고 깊은 화려함을, 어반 드로잉을 그리는 사람에서는 현대적이고 깔끔함을, 그림 저널을 그리는 사람에게서는 진실된 수수함을 느낄 수 있다.

눈에 띄기 위해 다른 사람과 다른 그림을 고르긴 했지만, 결국 그 그림들은 가장 나를 잘 드러내는 그림이 되었다. 내 그림은 나처럼 조금 이상하고 독특하다. 나는 굳이 조금 괴상하고 삐뚤삐뚤한 느낌을 찾아간다. 그렇다고 기괴한 것은 싫다. 죽음을 연상시키는 무덤 같은 느낌이나 해골을 연상시키는 어두운 그림도 많이 있는데 그림에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나는 아직 그런 것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나 스스로도 충분히 어두운 사람이라 그림까지 어둡게 그리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마냥 밝은 건 매력 없다. 맑은 수채화나 형광색의 그라피티 등은 마음이 가지 않는다. 살짝 괴상한 정도가 좋다.   

세밀화나 인물화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진인지 그림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똑같이 그려놓은 그림은 경탄스럽기는 하지만 도전의식이 생기지는 않는다. 자신이 없어서일 것이다. 어떤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세밀한 것은 좋다. 섬세하게 붓질 같은 것을 못하기 때문에 부럽기도 하고 그리는 시간 동안 오롯이 하나의 선에 들숨과 날숨을 쉬고 있었을 걸 떠올리면 마음결이 전해지는 것 같아서 좋다. 인물화도 누군지 알아보게 그리는 것보다 표정이 중요하다. 깊은 이맛살이라든지, 뭉개진 얼굴이라든지, 얼굴이 흐느적거리고 흘러내리면서 짓는 눈빛을 보고 싶다. 

귀엽고 유니크한 것이 대세니 그런 걸 그려보라는 권유를 받은 적이 있다. 나도 해보고 싶지만 아무래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가장 좋은 것은 가볍고도 무거운 것이다. 가볍게 그렸는데 무거운 느낌이 오는 것이 좋다. 분명히 나 같은 사람도 따라 그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생각을 해낼 수는 없었던 것. 무슨 의미를 담았을지 알지 못해도 묵직해서 든든한 것.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    


40살이 넘으면서 머리를 짧게 커트했다. 나이 든 사람의 무난함을 갖추려고 애썼다. 머리를 자름으로써 마치 의식처럼 내가 나이 들었음을 스스로 강요했다. 나이라는 게 그런 건 줄 알았다. 자기 취향도 없이 무색무취한 것. 편하고 단순한 것만 택하게 되는 것. 너무 일찍 나이를 앞세웠음을 이제야 안다.      

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잎새의 방향 하나에도 바람과 햇빛이 나무와 무엇을 주고받았는지 읽을 수 있다. 단순하고 분명하다. 내 그림도 그랬으면 좋겠다. 하나의 주제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끈질기게 하나로 모이게 하고 싶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어릴 때 했던 고민을 지금도 반복하고 있다. 10년 전 다이어리를 보면 알 수 있다. 지금 알아챈 것을 그때도 분명 알아챘었고, 그때 다짐했던 것을 지금도 다짐하고 있다(소녀시절의 일기장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는데, 그것을 꺼내기가 두려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토씨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을까 봐 겁난다. 굳이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는 않다).

처음 가졌던 삶에 대한 의문과 이유를 평생 묻는다. 바로 그것을 찾기 위해 이 별에 왔다고 믿는다. 내가 가진 그 의문과 이유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이 그림에 고스란히 드러나길 바란다. 색으로, 선으로, 질감으로, 짙고 진하고 환하게 드러내고 싶다. 아닌척하고 다른 사람인척 하고 흉내 내지 않으면 되겠지. 절로 드러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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