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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Dec 01. 2020

마스크 너머

마스크를 쓰고 산 지 1년이 되었다.

현관문 앞에 '아차, 마스크!!'라고 써붙여 놓은 쪽지가 나달나달하더니 바람에 날아가버렸다. 굳이 다시 붙여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제 맨얼굴로 나가질 못한다. 어색해서.  


마스크를 쓰던 초창기에 나와 같은 루프스 환자인 친구와 속닥였다. 우리는 마스크 쓰는 거 별로 안 불편해, 어차피 맨날 얼굴 가리고 살았으니까. 맞아. 오히려 편해. 나만 얼굴을 가리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가리고 다니니까 눈에도 덜 띄고 좋아. 누구나 마스크를 써야 하는 세상이 오다니, 그거 참 꼬시다. 큭큭.

한여름에 얼굴을 가리고 나가면 다들 쳐다봤다. 유별난 사람 취급을 받는 게 유쾌할 수는 없었다. 이런 상상도 했다. 우리 모두 안내견을 한 마리씩 데리고 다닌다면. 우리 모두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면. 우리 모두 수어로 대화를 한다면(이건 정말 유용할 것 같다. 왜 세계인들이 모두 영어를 써야 하나. 수어를 하면 굳이 다른 나라 말을 배우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될 텐데).


서로 마스크를 쓰고 이야기를 하면 상대방이 내 말에 어떤 반응을 하는지 잘 모를 것 같았지만, 마스크 너머로 다 느껴졌다. 눈만 보이는데도 말이다. 표정을 보지는 못하지만 표정이 읽혔다. 그런데 내 표정은 들키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다. 아니, 들켜도 상관없다는 느낌이 더 크다. 말 그대로 자유롭다. 소심한 나는 상대방에 따라 뭐든 내색을 잘하지 않는다. 마스크는 그런 마음을 내려놓게 해준다. 하고자 하는 말과 표정을 마음껏 지을 수 있다. 마스크 속에서 새로운 페르소나를 끄집어내기도 한다.

게다가 얼굴을 못 보기 때문에 얼굴에 대한 편견이 줄었다. 아무래도 잘 생긴 사람, 예쁜 사람에 대해 호감을 갖는데, 마스크는 그런 선입견을 줄여준다. 눈에 띄게 예쁜 눈을 가진 사람은 다르겠지만, 대체로 그렇다.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도 그런 의미에서 시작된 거 아닐까. 마스크로 얼굴도 가리고, 그 사람이 가진 이름과 배경까지 모두 가린 후 오로지 목소리와 노래로 자신을 표현한다. 우리들도 모두 복면가왕 프로그램의 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겠다.


한 가지 불편한 점은 있다. 사람의 얼굴을 눈만 보고 식별해야 한다. 의외로 마스크를 썼을 때와 안 썼을 때 다른 사람들이 너무 많다. 미용실에서 어떤 분이 내 옆에 앉았는데 정말 어려 보였다. 당연히 학생인 줄 알았다. 머리를 자르느라고 마스크를 벗는 순간 미용사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미안할 만큼.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달랐다. 굉장히 노안이었다...또 한 번은 마스크를 쓴 채로 처음 만난 사람이 있었다. 눈이 서글서글하니 착해 보였다. 며칠 후에 함께 커피를 마셨는데 마스크를 벗는 순간 굉장히 날카롭고 예민한 인상으로 변했다. 만일 마스크를 벗고 만났더라면 전혀 못 알아볼 만큼. 첫인상이 주는 선입견을 안 가져서 좋지만 누군지를 모른다면 첫인상이라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커피맛이 썼다.


사실은 마스크 속 얼굴이 너무 그립다. 너무 오래 사람 얼굴을 보지 않고 살다 보니 시답잖은 소리만 는다. 그래도 아주 말이 안 되는 소리는 아니지 않나. 이렇게라도 마스크의 장점을 꼽아보려는 가련한 시도를 해본다.    


덧. 이제 위에 말한 루프스 친구랑 이렇게 말한다.

우리같은 사람도 이렇게 힘든데 평소 훈련되지 사람들은 오죽하겠어. 참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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