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둥 Jan 11. 2021

식사, 또는 집에 대한 생각

독립적인 삶 또는 함께 하는 삶을 위하여


비 윌슨의 <식사에 대한 생각>을 보면,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것이 점점 어려운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고 한다. 같이 식사를 하더라도 같은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각자 다른 종류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다. 에이 설마, 하다가 우리 집을 떠올려보니 실제 그렇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남편은 아침에 커피를 마시고 나는 밥을, 아이는 제 입맛에 맞는 간편식을 먹는다.

어릴 때 자연식을 열심히 챙겨 먹인 보람도 없이, 아이는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면서 엄마가 만들어준 입맛을 냅다 버리고 자신의 입맛을 새롭게 찾아냈다. 코로나로 가족이 모두 모여 생활하게 되었을 때 아이는 제 입맛에 맞게 원하는 재료를 사들고 왔다. 아이가 요리를 하니 부모도 한 끼 얻어먹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1인분짜리 레시피밖에 모르는 아이는 부모의 한입만, 조차 싫어한다. 요리하는 동안에도 그렇고 먹으면서도 계속 너무 짜네, 재료가 어떻네 잔소리를 하기 때문이라니 할 말이 없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많이 한 잔소리 중의 하나가 밥 먹으면서 물 먹지 말라는 것이었는데, 아이들은 이미 음료와 함께 먹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고, 먹는 것이 쌓여 자신을 만들어가니 몸에 좋은 것을 먹으라고 했지만 맛있는 것이 좋은 것이고 모든 게 마음먹기 달렸다며 능글능글하게 대응한다.  

20년을 쫓아다니면서 이불 개라고 했던 엄마보다 애인의 말 한마디에 이불에 각을 잡는 게 자식이라고, 변하는 순간이 따로 있으니 너무 속 끓지 말라던 자녀교육 강사의 말을 떠올리며 다시 허벅지를 찌른다. 이놈의 허벅지는 언제까지 찔러야 할지.  


그러니, 성인이 된 아이들은 같이 살더라도 덜 볼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면 좋겠다. 각자 독립을 하면 제일 좋겠지만 여건상 그렇지 못한 가구도 많이 있으니 앞으로는 집(또는 아파트) 설계를 할 때 가족 수 말고도 인생 주기를 고려하는 것이다. 우리처럼 장년층에게는 거실을 조금 작게 하더라도 현관을 중심으로 각자의 공간을 더 마련하는 것이다. 마치 연수원 숙소나 기숙사처럼. 1인 숙소를 보면, 현관과 욕실이 가운데 있고 양쪽으로 방에 간단히 조리를 할 수 있는 싱크대, 작은 세면대와 화장실이 따로 있다. 주어진 평수에 따라 쾌적함이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덜 쾌적해도 상관없다. 가족들과의 적절한 분리만으로 충분히 쾌적하니까.   

부부도 마찬가지로 각자의 공간이 있는 게 좋다. 내 주변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부부가 안방과 거실을 각자 차지하고 잠도 따로 자는 경우가 많다. 각방을 쓰면 사이가 나쁠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며 섣부른 판단이다. 오히려 사이가 좋아질 수 있다. 적당한 거리가 주는 평온이 있으므로. 사실 이건 인류의 평화를 위해 시급하다.



동시에 공용 주방이 있으면 좋겠다. 가족끼리 먹기 위함이 아니라 비슷한 입맛을 가진 이들과의 교류를 위해서이다. 일 벌이는 것(특히 음식 하는 것)을 싫어하고 손맛이라고는 없으며 먹는 것에 목숨 거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내젓던 내가 시골살이를 하면서 이웃들과 음식을 해서 나눠먹는 재미가 얼마나 오진지 알아버렸다. 봄이면 두릅이나 옻순을 잔뜩 사다가 데쳐먹고 튀겨먹고 고기랑 구워 먹고, 비 오는 날이면 장마 걱정일랑 접어두고 쪽파전, 미나리전을 해 먹고, 밤바람이 쌀쌀해질 무렵이면 단호박 수프를 잔뜩 해다가 먹고 먹고 또 먹고 냉동실에 쟁여놓고, 눈 오는 겨울이면 삭힌 고추와 돼지고기 잔뜩 넣어 꼬숩고 매운 만두를 만들어 먹는 재미. 한 다라를 했지만 먹다 보니 보관할 게 없도록 배 터지게 먹는 재미가 있다.


아파트로 이사 와서 우리 부부 둘이서 만들어봤지만 당최 맛이 안 난다. 더구나 코로나로 지인들도 만날 수 없으니 하릴없이 sns에 올리게 되는데 자랑 아닌 자랑만 되었다. 우리는 자랑 같은 거 필요 없고 같이 먹고 싶은 건데. 아이들도 이제는 먹어주는 것조차 동참해주지 않는다.

하던 대로 모여 먹는 재미도 누리고 싶어서 공용 주방 타령을 하지만, 사실 아이들에게도 이런 문화를 누리게 해주고 싶다. 파티룸이니 뭐니 해서 모여 놀지만 대체로 시켜먹지 해 먹는 재미는 모를 것이다. 큰 아이 얘기 들어보니 그나마 요리하는 부모 옆에서 보고 자란 자신이나 요리를 할 줄 알지 다른 친구들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한다.

아마 공용 주방이 생기면 달라질 것이다. 아파트 동마다, 또는 단지마다, 아니면 마을마다, 그도 아니면 관공서에서라도 만들어주면 좋겠다. 아이들이 모여 자신들이 좋아하는 요리로 셰프 놀이도 하고 대접하는 기쁨도 경험하게 말이다. 예전에 중학교 아이들과 평화의 식탁이라는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다. 평화와 신뢰구축을 위한 대화모임이 주목적이었지만 아이들은 음식 만드는 것에 더 진심이었다. 환대를 가르쳤더니 더욱 자신의 요리를 대접하는 데 열광했다. 음식은 입을 열고 마음을 연다. 요리는 맛이라는 조화로움으로 관계에 파동을 일으킨다.  

 

다시 <식사에 대한 생각>으로 돌아가 보면, 시대가 변하면서 한 사회의 식생활이 정치 경제 교육 업무 패턴 등에 의해 달라져버렸다고 한다. 더구나 음식의 세계화로 전통적으로 이어온 식단이 깨지고 음식문화도 변화하고 있다. 학원 시간 등으로 식사시간이 다른 아이들은 가족과 단란한 식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제 가족끼리의 식사는 따로 약속을 잡아야 한다(미국에 사는 언니네는 매주 금요일 저녁은 가족끼리 바비큐 먹는 날로 정했다). 무엇보다 '가족을 위해 요리하는 삶의 미천한 지위'를 이제는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다. 게다가 서구에서 식단 관련 질환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젊은이들도 좋은 재료(취향이나 가치가 담긴)로 직접 해 먹는 요리의 중요성을 모르지 않는다. '아무에게도 강요하지 않으면서' 좋은 식단을 유지하고, 게다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는 즐거움을 어떻게 물려줄 수 있을까. 공용 주방이 하나의 대안이 아닐까. 그리고 이건 인류의 건강을 위해 시급하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성격유형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