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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Sep 08. 2021

나도 아팠다


친구가 아팠다는 글을 쓰고(친구가 아팠다 (brunch.co.kr) 얼마 후, 나도 아팠다. 아프다기보다는 컨디션이 메롱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상태가 계속되었다. 너무 피로하고 기운이 없고 온몸이 쑤셨다.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어느 한때 반짝이라도 좋아지는 시간이 없었다. 날씨가 들쭉날쭉하니까 그러려니 하고 며칠을 보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컨디션 문제가 열흘을 넘긴단 말인가.

별의별 의심이 시작되었다. 델타 변이의 증상을 찾아보고 난 후 의심은 더 커졌다.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하나. 하지만 델타 변이라면 열흘이 넘게 비슷한 증상으로 이어지지는 않겠지. 그럼 혹시 간염인가? 코로나로 간이 손상되었다고 하던데, 간염이 온 건 아닐까?  

친구에게는 통증에게 감사하자고 잘도 말해놓고 나는 이렇게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꼴이 우스웠다.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다.

컨디션이 떨어지면 그럴 수 있지요.

아니, 의사 선생님. 그걸 말씀이라고 하세요? 갑자기 왜 컨디션이 떨어지냐고요.

라고 외치고 싶었으나 혼자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왜는 무슨, 언제는 왜 해가 지는지, 왜 바람이 부는지 알고 살았나. 그냥 해가 지나보다, 바람이 부나 보다 하고 살아놓고 컨디션이 왜 떨어지냐니. 해가 지듯이 바람이 불듯이 컨디션이 떨어지기도 하고 좋아지기도 하는 게 자연의 이치지. 혼자 묻고 혼자 답했다.      

또 아플 수 있어요. 내일도 안 좋으시면 또 오시고요.  

아프면 당연히 또 오겠지요. 의사 선생님, 그러지 마시고 또 아프지 않게 해 주시면 안 되나요?  

이번에도 속으로 외쳤다.

하지만 또 아프지 않게 해 줄 수 있다면 해줬겠지, 안 했겠냐. 잘 알면서 자꾸 생떼를 부리고 엄살을 부린다. 아프다는 건 그런 거다. 아는 것과 상관없이 생떼를 부리고 싶고 아픔을 호소하고 싶은 것이다.


침을 놓고 의사가 나갔다. 징징거릴 대상이 나가버려서 아쉬웠다. 그때 마침(!) 깔고 있던 핫팩이 너무 뜨거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간호사를 불렀다.

엉덩이를 들 수 있으시겠어요?

엉덩이를 들려고 하자마자 침 맞은 자리가 뻐근했다.

안 되겠어요...

많이 뜨거우세요? 5분만 참으면 되는데.

별도리가 없어 5분을 참기로 했다. 참자. 참자. 참자.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데 엉덩이 뜨거운 거 하나 못 참겠냐,라고 하면 할수록 너무 뜨거웠다. 이럴 땐 다른 곳으로 신경을 분산시켜야 한다. 뭘 생각하지? 다른 곳을 찾다가 결국 원래 아팠던 내 통증으로 돌아왔다.

가만 있자, 나 어디 아팠더라... 그렇지. 목이 아팠지. 뻐근한 목을 왼쪽으로 돌리면 어깨 뒤쪽이 당겨오고, 숨을 내쉬면 좀 더 돌릴 수 있어. 반대로도 해줘야지. 어, 이번엔 어깨 뒤쪽이 아니라 아래쪽이 당겨오네. 숨을 내쉬어도 그 이상 안되니까 그만해야지. 천천히 원래로 돌아오니 아래쪽 근육이 바닥을 누르네. 뒷골이 당겨오던 느낌도 같이 변하고 있어. 눈 안쪽으로 시큰한 느낌과도 연결된 것 같아. 눈알을 돌리면 시큰한 것은 좀 가라앉는데 뒷골도 같이 돌아가는 느낌이야. 반대로 세 번쯤 돌리고 나니까 뒷골이 좀 멀어지고 있어. 음...

그때 간호사가 왔다.

침 빼드릴게요.

엉덩이를 들 수 있게 다리 쪽 침을 먼저 빼 달라고 하려고 막 입을 떼려는 순간, 뜨겁다는 감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뜨겁지 않았다. 아니, 뜨거웠다. 그런데 뜨겁다는 감각이 천천히 돌아오고 있는 중이었다. 뜨거움을 잊었던 것이다.


침을 빼고 마침내 엉덩이를 들고 핫팩을 치웠다. 시원했다. 쾌감이 느껴졌다. 가장 괴로운 것으로부터 도피해냈다는 쾌감. 결국 원래의 괴로움, 통증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지만 어쨌든 그보다 더 괴로운 것, 뜨거움을 피하지 않았는가. 마치 이쪽이 아플 때 저쪽을 더 세게 때려서 이쪽의 아픔을 상쇄한 것 같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쪽에 집중하는 초인적인 일을 해낸 것이다. 그것은 오늘의 아픔에 집중해서 내일의 아픔을 미리 걱정하는 짓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아픈 것이 나쁜 것은 아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걱정이 크기 때문이다. 아직 오지 않은 아픔을 미리 걱정하느라 오늘 고통을 겪고 있는 나 자신에게 소홀해진다. 지금의 내 몸에 집중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걱정한다고 올 것이 오지 않는 것도 아니고 해결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음 일은 다음에 걱정해도 늦지 않다.      


고생하셨습니다.

침대에서 일어서는 것만으로 끙끙거리며 아이고지고 곡소리를 내고 있는 내게 간호사가 말했다. 울컥했다. 간호사의 말이 유난히 절절하게 다가왔다. 진짜 고생했다, 나 자신. 아픈 것도 뜨거운 것도 이겨내느라 고생한 나 자신에게 진짜 들려주고 싶었던 말이었나 보다.

그래, 우리는 친절한 말 한마디로 치유를 받지.

인간은 얼마나 유약한 존재인 것이냐. 아프면 작은 친절 하나가 간절해진다.

그것이 치료를 끝낸다는 신호와 같은 인사말인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도 듣는 내가 치유되었으면 그만이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오늘도 살아내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징징대는 글 읽어주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좋아요 눌러주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미리 감사합니다.^^

내일의 감사는 내일 하기로 해요~




 




이미지 출처 https://pixabay.com/ko/vectors/%ec%82%b6-%ed%86%b5%ec%a6%9d-%ea%b3%a0%ec%8b%ac%ed%95%98%eb%8b%a4-%ea%b2%a9%ed%86%b5-2730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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