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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Aug 27. 2021

친구가 아팠다

친구가 아팠다. 다행히 큰 병은 아니었다. 이렇게 말하면 친구가 서운할지도 모르겠다. 친구는 1년이 넘게 온몸이 알 수 없는 근육통으로 시달리고 있으니까.

안 가본 병원이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 다녀봤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자잘한 병명을 얻기는 했지만 부분적이고 국소적인 것이었다. 각 진료과에서는 해당되는 부분에 대해서만 진찰했고 크게 문제가 없음을 밝혀주었다. 그녀가 정말 궁금했던 왜 이런 근육통이 왔는지, 고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첨단 의학은 도대체 언제 쓸모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사실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왜 아픈지, 얼마나 아픈지는. 병원은 병의 원인을 찾아내고 치료하는 곳이고 그것을 찾지 못했으니 그냥 돌려보낼 수밖에. 어쩌면 그것은 친구인 내 몫인지도 몰랐다.


나는 친구로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아프고 나니 보이는 것이 있다. 우선 아픈 것에 대해 말할 대상이 없다는 거. 혼자 살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족도 있고 이웃도 있고 친구도 있고, 무엇보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회사 동료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아픈 이야기를 할만한 대상을 찾지 못했다.

의외로 가족은 부담스럽다. 지나친 걱정도 그렇고 서로 적절한 위로를 주는 경험이 없기도 해서 급한 도움을 청할 때가 아니면 별고 말하지 않게 된다. 친구도 그렇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1년이 넘게 아픈 얘기를 계속하기가 미안하다. 함께 하는 시간 내내 신경 쓰이지 않게 하느라 오히려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회사 동료는 더욱 그렇다. 틈틈이 병가와 휴가를 써야 하는 입장에서 눈치 보일 수밖에 없다. 정말 걱정스러워서 묻는 인사말도 이제 짜증스럽다. 솔직히 가십거리를 찾는 회사원들의 속성을 모르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걱정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본인이 아프다는 것을 알리기 싫은 동료도 있다.      


내가 그녀의 이야기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아팠던, 또는 아픈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아무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낙심이 되는지, 다시 또 어떤 다른 병원을 찾아야 하는 것이 얼마나 막막한지 누구보다 잘 안다. 수많은 병원 중 그래도 나에게 맞는 병원을 찾아야 하는 것도 스트레스인데 병원을 고르는 나만의 노하우도 없지 않아 있다.

가장 편한 것은 서로의 관심사가 통증에 있으니 하루 종일 아픈 이야기만 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우리는 마음 놓고 아픈 이야기를 해댔다.


한동안 병원 순례를 마친 친구는 자신의 병이 큰 병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딱히 병명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일종의 갱년기 증후군인가 보다 생각하기로 했다. 호르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인생의 전환기를 맞기 위 호된 과정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렇다면 이제 통증을 다스리는 일이 남았다. 어디서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중에도 그녀는 여기는 낫게 해 줄까?를 물었다. 낫게 해 주겠다고 대답해주는 병원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거짓말이니까. 병의 원인을 모르는데 어떻게 낫게 해 줄 것인가. 다만 그녀가 불안해하지 않을 만한 답을 주는 곳이 필요했다.

다행히 그녀는 마음의 안정을 주는 곳을 찾았다. 선생님, 저 올해는 꼭 다 나아야 해요,라고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봅시다,라고 대답해준다. 가끔씩 불안이 도져서 저 진짜 괜찮은 거지요? 물어도, 뭐가 그렇게 불안하세요? 그래 봤자 암도 아닌걸요,라고 답해서 어이없는 웃음을 준다.

친구는 열심히 다녔다. 주 3회를 잊지 않고 꼬박꼬박 다녔으니 평범한 회사원으로서 쉽지 않은 일이다. 날이 맑아도 가고 날이 궂어도 갔다. 벚꽃 봉우리가 봄눈에 덮였던 날로부터 시작해귀뚜라미가 울어대는 오늘까지 말이다.

<이렇게 맑은 주말에도 나는 한의원에 간다> , 친구의 톡에 <너의 성실이 너를 낫게 할 거야>라고 답한다.


잠시 뜸을 두고 그녀는 또 내게 묻는다. 곧 낫겠지? 그럼, 당연하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굳건하게 대답해주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으면 뭐? 나으면 뭘 할 건데. 주말이라고 해봐야 다른 할 일도 없을 텐데 뭘. 맑은 날이라고 해봐야 달리 살 것도 아닌데 뭘. 병원에 다니며 몸을 돌보는 게 어때서. 당연히 통증이 없어지면 그만큼 삶의 질 높아지겠지. 하지만 통증이 있기 전으로 돌아가는 게 좋기만 할까. 정말 통증이 있어서 나쁘기만 했을까.

통증을 겪으며 그녀는 나와 급격히 친해졌다. 물론 우리는 자주 연락하지는 않았어도 삶의 구비구비마다 서로의 곁을 지켜주던 사이였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허물없이 엄살을 부릴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관계로 진입하는 이다. 아무에게나 민낯을 보여주지는 않으니까. 결국 인생의 어떤 한 축을 안전하게 다져놓은 셈이 되었. 통증이 아니었다면 그런 안전함이 필요한 줄도 모르고 살았을 거다. 아니, 그토록 허술한 줄도 모르고 살았을 거다. 그게 꼭 나여서가 아니라.

그녀는 통증을 겪으며 평생 처음으로 몸을 돌보았다. 자신을 위해 보약 한 첩 지어먹은 적 없던 그녀가 내리 몇 첩을 지어, 매 끼니 정성스레 먹는다. 절대 끊지 못했던 뽀얀 밀가루를 끊었고 질 좋은 식사를 신경 써서 챙긴다. 덕분에 몸무게가 몇 킬로나 빠졌는지, 평생 통통했던 몸을 가졌던 그녀가 이제 너무 말라서 걱정이다.

또, 평생 처음 자신의 마음을 돌보았다. 뭐가 그렇게 불안하세요?라는 의사의 말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자신의 불안을 읽어봐 주고 물어봐준 사람이 처음이라서. 힘든 일을 겪으면서도 남들도 다 그렇게 살지 뭐 대단한 것도 아닌데, 하며 자신의 아픔을 못 본척해온 날들이었다. 지금까지 용케도 버텨온 자신의 몸에게 미안하고 감사하고, 이제 잘 돌봐줄게, 다독거렸을 것이다.    

  

그러니 친구야, 아프기 전으로 돌아가지는 말자. 통증을 다스리는 이 시간을 아까워하지 말자. 자신을 위해 편한 신발을 사 신고 푹신한 의자에 앉고 최고의 음식을 먹여주자. 제발 마음 편히 아이고야, 엄살을 떨어도 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자. 일에 미치지 말고 몸에 미쳐서 통증으로 몸이 호소하기 전에 먼저 알아차리자.  

그리고 큰 병에 걸리기 전에 자신을 돌봐주는 기회가 된 통증에게 감사하자.

당연히 통증은 나을 거야.      



덧. 사진에 있는 가시가 너무 아파보인다는 친구야. 자세히 보렴. 저건 식물의 가시야. 식물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가지를 가시처럼 벼린거지. 자세히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참 많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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