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나라 갱년기
결론적으로 말하면, 갱년기는 삶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우리는 평생 짝짓기와 양육에만 골몰하다가(거칠게 말하면 그렇지 않은가. 인류는 짝짓기와 양육, 그리고 궁금증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과업을 끝내면서 이 생이 주어진 특별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자문하게 된다. 삶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다고 믿고 지금 이 순간 여기 내가 존재하는 의미를 알아내려 한다. 마음은 그렇지만 과업을 끝낸 몸은 급격히 쇠퇴하고 있다.
그렇게 갱년기 증상은 각기 다르게, 다양한 방법으로 온다. 대표적으로 많이 알고 있는 것은 열이 뻗친다는 것이다. 많은 드라마나 책에서 땀을 흘리고 옷을 벗어던지고 히스테리컬 한 모습을 보여준다. 또 여성호르몬이 줄어들면서 감정도 메말라지면서 부드러웠던 사람이 직선적이고 거칠게 말한다.
더위를 모르던 친구 유영은 여름에 급격히 더위를 느끼면서 내가 이렇게 더우면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더울까, 기후위기가 정말 심각하구나, 생각했다. 실제로 기후위기로 더위가 심각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이 열이 많아져서 더워졌다는 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열이 많아지니까 겨울에도 추위를 덜 타는 이점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열이 나니까 답답해서 이불을 차 버리는데 팔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어깨가 시려서 잠이 깬다. 때로는 등까지 시려서 벌벌 떨면서 깨는데 답답해서 이불을 덮거나 전기매트를 켤 수가 없다. 어쩌다 전기매트를 켜도 몸을 엎었다 뒤집었다 해야 한다. 어깨를 데우려면 매트에 직접 어깨가 닿게 해야 하니까.
몸이 뜨거운 사람들은 말해 뭐하겠는가. 드라마에서 보는 그대로다. 강사인 선배는 옷을 겹겹이 입고 가서 강의를 하는 도중 하나씩 하나씩 벗는 스트립쇼를 한단다. 도중에 다시 입었다가 벗었다가 하는 특별 쇼다.
여성호르몬이 줄어들면 감정이 메마르게 된다는 것을 나는 40대 초반에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갱년기가 와서 그런 건 아니다. 복막염으로 나팔관을 떼어내는 수술을 했는데 일정기간 여성호르몬 억제제를 복용해야 했다. 약을 먹는 그날부터 버지니아 울프의 올란도처럼 어느 날 눈떠보니 남자가 되어있는 딱 그런 느낌이었다. 생리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코밑이 거뭇거뭇해지고 엉덩이 살이 쭉쭉 빠지면서 허리와 가슴이 통나무가 되어갔다. 육체적 변화뿐만 아니라 감정의 변화도 극적이었다. 마치 가로수 가지치기를 한 것처럼 잔 감정이 하나도 없고 기쁘다, 슬프다, 아프다, 힘들다 등등의 몸통만 툭 서있는 듯했다. 물론 아예 못 느끼는 건 아니다.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 몰입하면 애쓴 만큼 느껴지기는 했다. 하지만 굳이 그래야 할 필요를 느끼지는 못했다. 남자들은 평생 그러고 사나? 궁금했다.
아무튼 생각지도 못한 희한한 경험을 하면서 여성호르몬이 줄어드는 갱년기가 오면 그렇게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또 달랐다. 어떤 부분에서는 더 예민해지고 쉽게 화가 났다. 어쩌면 예민해지는 게 아니라 참을성이 없어져서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해하고 배려하는 노력이 하기 싫어졌다. 노력은 싫어도 하는 거였는데, 그 노력이라는 걸 전혀 하고 싶지가 않았다. 어렵게 살기 싫고 쉽게 편하게 살고 싶었다. 어르신들이 복잡한 거 싫어, 단순한 게 좋아, 이런 말을 자주 하셨는데, 그동안 힘들게 살았으니 지쳐서 그런 거겠지 했다. 그게 아니다. 진짜 단순해진다. 그리고 단순해져도 된다는 걸 알게 된다. 실제로 아무 일도 안 생긴다. 조금 히스테리컬 하게 보일 수는 있는데, 실제로 히스테리컬 해진다기보다는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반응을 굳이 감추지 않는 거다.
남자들은 갱년기가 없다고 한다(남자의 갱년기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주로 육체적 기능의 저하를 말한다). 과연 그럴까. 섬세하게 들여다보지 않고 무시하고 덮어두는 건 아닐까. 의학적인 건 모르겠다. 나만 모르는 게 아니고 그만큼 연구가 부족하다고 알고 있다. 폐경이라는 눈에 띄는 신체적 차이에만 주목한 탓인 것 같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분명 갱년기를 호소하는 남자들이 있다. 남성호르몬이 적어지면서 잘 울거나 삐진다는 식이다. 일찍 갱년기를 겪은 친구 연준의 말을 들어보면 그건 다분히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울거나 삐진다는 말속에는 상대가 겪고 있는 마음 상태와 상관없이 '남자가 여자처럼' 행동한다는 일종의 비하하는 마음이 들어있다.
그는 마흔 초반에 갱년기가 왔다. 머리숱이 없어지고 평생 말랐던 사람이 배가 나오면서 자존감이 떨어졌다. 육체적인 변화가 생기다 보니 스스로에게 적응이 되지 않아서 우울증이 생겼나 보다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때가 갱년기였던 것 같다고 한다. 아직 더 나이 들어봐야 알겠지만 갱년기를 통해 깨달아야 할 것들을 이야기하는 걸 봐서는 맞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여자보다 좀 더 늦게 갱년기가 온다고 하는데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마흔 초반부터 예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1-2년에 끝나는 사람도 있고 5년 이상 걸리는 사람도 있고 증상도 정도의 차이도 모두 다르다. 사춘기가 사람마다 다르듯이.
갱년기는 사춘기와 매우 비슷한 인생의 한 시절이다. 그런데 갱년기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거나 아예 인정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갱년기라는 모호한 용어보다 빈 둥지 증후군이나 번아웃 증후군, 공황장애, 열감 등이 더 정확하지 않느냐고 한다.
그건 갱년기를 어떤 질병이나 문제로 보는 시각이다. 각각의 증상-이 아니라 특성이다-을 나열해야 할 이유가 뭘까. 사춘기는 시기적인 특성으로 인정하면서 갱년기는 인정하지 않는 것은 완경이라는 신체적 변화로 인한 여성호르몬의 문제로만 보기 때문인 듯하다.
이유가 무엇이든 증후군만으로 갱년기를 바라보는 것은 단순히 드러나는 증상-이 아니라 특성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한다-만 보는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관점이 아닐까. 갱년기는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오기도 한다. 이제 인생이 지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거다. 또한 인생에서 하나의 시기가 지나고 그것을 지층으로 새로운 시기가 오고 있음을 알린다. 사춘기가 어른이 되는 과정인 것처럼 갱년기는 노인이 되는 과정이다. 사춘기를 잘 넘기면 괜찮은 어른이 되듯이 갱년기를 잘 넘겨야 괜찮은 노인이 된다. 남녀와 상관없이 누구나. 그 과정을 제대로 보내지 못하면 몸만 커진 아이처럼, 노인으로서의 몸과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몸만 늙은 아이'가 되는 거다.
나는 일반적인 증상이라고 알려진 것과 조금 달랐다. 주로 심리적인 부분에 큰 변화가 생겼다. 다시 스타인키는 <완경 일기>에서 ‘자아가 죽어간다는 느낌보다 오히려 생생해지는 느낌’이라고 했는데 내가 그랬다. 다른 사람과 비슷한 증상은 불면과 깊은 공감력이다.
나는 10대보다 20대가, 20대보다 30대가, 30대보다 40대가 좋았다. 더 안정되었고 더 자신감 넘쳤고 더 지혜로워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일상적으로 해왔던 무언가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도 가장 왕성하게 자신이 세상에 나온 뜻을 알 것 같고 그 가치를 가장 자신감 있게 해내는 인생 최고치의 시기에 들어섰는데, 갑자기 이제 그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시기가 와버렸다. 황당하고 당황스러웠다. 인정하기 싫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도리가 없다. 보통 내려놓는 시기라고 하는데, 스스로 내려놓는 게 아니라 거의 뺏기다시피 하니까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우선 생물학적으로 그러하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시기가 마무리되면서 효용가치를 잃게 된다.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기억력도 떨어지고 영민함까지 떨어지면서 자신감이라곤 없어진다. 마흔 무렵 노안이 왔을 때, 왜 굳이 노안이라고 표현했을까 서운하기까지 했는데 노안이라는 표현을 의미 있게 받아들였어야 했다. 노안은 다른 기능도 늙어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수 역할을 한다. 그래서 노안은 노안만 오지 않는다. 반갑지 않은 친구들을 달랑달랑 데리고 온다.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무슨 말을 할 때마다 그거, 그거를 반복하는 머릿속 노안,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아이고 앓는 소리를 내는 관절 속 노안이 그들이다. 몸이 그래서 마음이 그런 건지, 몸과 동시에 마음도 그런 건지는 몰라도 마음도 그렇게 힘이 풀린다. 책임이나 성실함 등의 정신력이 무뎌져 버린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게 무서웠던 것도 이겨내야 한다는 악착같음이 줄어들면서 자신감이 떨어진 탓일 게다. 육체적으로도 자신 없고 정신적으로도 자신 없으니 세상이 무서운 거다. 생물학적 문제는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요즘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장애인 이동권이 남의 얘기가 아니다. 실제로 장애인들이 만들어놓은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가장 잘 애용하는 사람은 노인이다.
몸도 약해지고 마음도 약해지는 자신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기간이 바로 갱년기다.
어떻게 적응해야 할까? 100세 시대에 벌써 이렇게 약해지면 앞으로는 어떻게 살라고? 인생이 갑자기 지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아프기까지 하다니 어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