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나라 갱년기
나을까요?
의사에게 물으면 약 먹고 잘 쉬시면 낫습니다, 라는 답을 들었다, 그동안은. 그런데 이제 의사는 그렇게 답해주지 않는다.
낫지 않습니다. 다만 익숙해져 갈 겁니다.
헐~
갱년기에 가장 큰 고통은 무엇보다 질병과 통증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내 손을 보며 왜 생기다 말았냐고 쯧쯧거릴 만큼 부실했다. 그렇다고 키가 작거나 마른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보통보다 조금 큰 편이다. 자주 배 아프고 머리 아프던 언니를 보면서 아픈 게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할 만큼 별로 아픈 데도 없이 잘 컸다. 다만 항상 골골거렸고 근력이라곤 없었다.
크게 몸 쓸 일이 없이 자란 터라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별로 느끼지 못했는데 아기를 안고 유모차를 끌면서 몹쓸 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기저귀를 털어 너는 것이 힘들 정도였으니까. 청바지가 무거워서 허벅지가 아팠고 목이 무거워서 목도리 대신 폴라를 입었고 머리카락도 무거워서 기르지 못했다. 그런 말을 하면 친구들은 놀라고 걱정했지만 원래 그런 게 내 몸이라 익숙했다. 30대 중반에 갑상선 저하와 루프스를 진단받았는데, 일명 공주병이다. 피곤하면 안 되고 햇빛을 받으면 악화된다고 한다. 야외활동이 필요한 일은 삼가고 살았다.
평생 이렇게 살다 보니 갱년기가 와서 여기저기 더 아파와도 남들에 비해서는 덜 힘들었다(는 장점은 있지만 약골이어서 다행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또 아프군, 이번엔 여기군, 하면서 그동안 아플 때마다 찾아가던 병원에 갔다. 내가 믿고 가는 의사가 있다는 것. 이게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다른 친구들을 보면서 깨달았다. 갱년기를 맞으며 처음 아파본(진짜 처음 아팠다는 뜻이 아니고 감기나 위산과다, 치통처럼 분명한 진단과 그에 따른 분명한 치료법이 있는 질병이 아닌 경우 말이다) 친구들은 몹시 당황했다. 이럴 수가, 아픈데 진단명이 없다니. 이럴 수가, 아픈데 진통제 말고는 약이 없다니. 심지어 퇴행성관절염 같은 경우는 진단명은 있지만 나이가 들었으니 어쩔 수 없는 거고 앞으로 쭈욱 더 나빠질 거라고 하니 절망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우리는 안다. 갱년기는 이제 인생이 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시기라는 것을. 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덜 아픈 것도 아니고 이제 곧 삶이 마감하는 것도 아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지금까지 살아온 만큼을 또! 살아야 한다.
아픈 것도 힘들지만, 그보다 힘든 일은 두려움이다. 두 가지 두려움인데, 우선 첫 번째는 혹시 더 큰 병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다. 늙었다고, 갱년기라고 갑자기 이렇게 아프단 말인가 하는 의심이 끊임없이 생긴다. 병이 생긴 걸 모르고 치료시기를 놓칠까 봐 여기저기 병원 순례를 다녀본다. 병원 순례를 다녀봐야 나오는 건 없다. 그래서 마지막 한 군데를 못 가고 버틴다. 이번에도 아무것도 아닐까 봐 겁이 나서 차일피일 미루고 걱정만 차곡차곡 쌓는다. 어쨌든 비용은 비용대로 깨지고 아무런 성과(?)는 없다. 아무 이상 없다니 다행이기는 하지만 아픈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섭섭하기까지 하다.
두 번째 두려움은 낫지 않은 상태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예전에도 아팠다. 같은 부위에 같은 통증이 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았다. 머리 앞쪽이 아프면 체한 거니까 소화제를 먹고 뒷골이 당기면 편두통이니까 타이레놀을 먹었다. 배가 살살 아프면 각탕을 해서 몸을 뜨끈하게 데우면 차차 좋아진다는 걸 경험으로 알아 자기 몸을 다스려왔다. 그런데 똑같은 통증에 두려움이 불쑥 앞선다. 본능적으로 안다. 의사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낫지 않을 것임을. 점차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지지 않을 것임을. 벌써 이렇게 아픈데 앞으로 더 늙으면, 더 아프면 도대체 어떻게 참고 살아낼까?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지금의 고통은 더욱 배가된다.
갑자기 온몸에 관절통이 온 친구 다온은 방아쇠 수지 말고는 명확한 병명을 찾지 못했다. 평생 건강했기 때문에 아픈 데 익숙하지 않은 다온은 종일토록 들러붙어 있는 통증이 끔찍하게 싫었다. 누군들 통증이 좋겠냐만서도 자주 체했거나 자주 머리가 아팠던 사람은 어떻게 자신을 다스려야 하는지 경험으로 알고 있다. 다온은 그런 경험이 거의 없다. 사람이 이렇게 아플 수 있다고? 이렇게 오래 아프기도 하다고? 그런데도 그냥 노화일 뿐이라고? 이러고도 밥 먹고 잠자고 회사에 다닌다고? 놀라며 본인도 계속 회사에 다닌다. 3개월이나 아팠으니 이젠 곧 낫겠지 했다가, 1년이 넘었으니 진짜 곧 나을 거야 했다가, 1년 6개월이 되어서야 with 질병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다온은 아프기 시작한 그 당시 여러 가지 일을 많이 겪었다. 마음이 육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지만 이토록 큰 병이 생길 만큼 자신이 마음 약한 사람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아프면 당연히 병원에 가면 의학적 처치를 받게 될 거라고 굳건히 믿고 살았다. 그런데 의학이, 과학적 사고가 아무런 답을 주지 못하자 너무도 당황했다. 한의학이나 대체의학이나 또는 민간요법 등을 터부시 한 것은 아니지만 그건 보조적인 역할을 할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매달릴 곳은 이곳뿐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터무니없게 느껴졌다.
아플 때는 어떤 영역의 균형이 깨졌는지 우선 확인해야 한다. 첫 번째로 신체적인 것, 정형적인 부분이다. 부러지거나 깨지거나 척추가 휘거나 하는 정형적인 부분을 살펴야 한다. 두 번째는 영양적인 부분이다. 다이어트나 환경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영양이 불균형한 경우가 많다. 비타민으로 하는 대체의학도 요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세 번째는 정신적인 부분, 심리의 문제이다. 의외로 심리의 문제가 육체적 질병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 그 정도로 큰 심리적 문제는 없다고 과신하는 것이다. 또는 그 정도로 육체에 타격을 줄 수는 없을 거라고 착각하거나. 그 반대다. 정신적인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육체에 흔적을 남긴다. 그것도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네 번째는 에너지다. 어떤 일로 에너지가 탈진되었거나 애초에 에너지를 적게 타고난 경우이다. 내가 이 경우에 해당된다. 물론 어느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섞여 있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를 찾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많은 경우, 자신의 병이 이 네 가지 영역 중에 어디에 속하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그냥 병원에 가면 찾아지리라고 생각한다. 어느 진료과에 가야 하는지 고민할 때조차도 마찬가지다. 근본적인 문제보다 당장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 가기 싫으면 배가 아픈 아이는 심리의 문제지만 학교에 가지 않을 수 없으니 그냥 소화제를 먹는 거다. 척추가 휘어서 머리가 아플 수도 있지만 설마 머리가 아픈데 척추 탓이겠어? 의심하기도 한다. 에너지의 부분은 더욱 그렇다. 이렇게 잘 먹는데 에너지가 없다는 게 말이 돼? 라든가 에너지가 없어서 허리가 아플 수 있다고? 믿지 못한다. 에너지가 없으면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에너지를 먼저 채우자고 햇볕 좋고 한적한 곳으로 삶의 자리를 옮기거나 좋은 땅에서 키운 작물로 음식을 해 먹는 일은 거의 죽을병에 걸렸을 때나 해봄직한 방법이다. 에너지를 채운다고 심리적인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심리적 문제를 해결해도 에너지가 채워지지 않으면 다시 나빠지는 게 당연하다.
불행히도 근본적인 문제는 갱년기에 들어서면 더 크게 두드러진다. 아무래도 가장 약한 고리가 더 쉽게 타격을 입는 법이니까. 그럼에도 여태 괜찮았는데 설마 그 문제이랴 하면서 일단 병원을 찾아간다. 병원 순례를 하다 보면 몸은 조금 나아질 수 있겠지만 마음은 하릴없이 무너진다. 마음이 무너지니 다시 몸은 악화되고... 그렇게 악순환이 반복된다.
사람이 어떻게 모든 걸 해결하고 살겠는가. 그동안 어지간한 것은 해결하면서 살아온 것이 더 신기하다. 수많은 행운 끝에 어려움에 직면한 거다.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해주지 못하거나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기 힘들거나 심리적 거부감이 크거나, 어려움은 각자가 살아온 인생만큼이나 다양하지만 이 또한 어떻게든 넘어설 것이다.
다온도 그랬다. 방아쇠 수지는 병원에서 치료해줄 수 있겠지만 그 외 다른 문제들은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다온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투덜거림을 들어주는 것뿐이다. 이 나이에는 어디에도 투덜거릴 곳이 없다. 가족은 아픔을 공유하기에는 너무 가깝고도 먼 사이다. 의외로 가족은 대부분 그렇다. 에너지 총량의 법칙처럼 투덜거림 총량도 있다. 관절도 투덜거림이 빠져줘야 좀 더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겠는가.
친구 유영은 빈 둥지 증후군과 공황장애, 게다가 관절 통증이 한꺼번에 오면서 혼자 있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손가락 발가락 모두 성치 않아서 가족 중 누군가가 보살펴주어야 했다. 가장 힘든 것은 공황장애였다. 죽을 것 같이 숨이 안 쉬어져서 누군가 옆에서 말을 걸고 괜찮다고 해주어야 발작이 가라앉았다. 죽는 게 두렵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숨이 안 쉬어지는 건 끔찍했다. 동시에 대인기피까지 생겨서 오로지 가족들에게만 의존했다. 그때 유영에게 함께 걷자고 찾아온 친구가 있었다. 유영은 당연히 거절했다. 그 친구는 그냥 걷기만 할 거야, 아무 말도 안 하고 아무것도 하자고 안 해, 라며 유영을 억지로 끌었다. 둘은 그냥 걸었다. 온 동네를 마냥 걸었다.
투덜거림이나 걷는 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뭔가는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터무니없이 아프면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마저도 사람들은 가장 자기다운 방법으로 그것을 찾는다. 줄어든 호르몬에 적응하기 위한 우리들 곁에 단 한 명만 옆에 있어주면 된다. 단 한 가지만 함께 해주면 된다. 일단 바깥으로 나오면 누구라도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