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해방

찬란한 갱년기

by 천둥

아프고 힘든 가운데 자유와 해방을 얻어내기도 한다.

우선 생리로부터의 자유. 여자의 인생에 항상 꼬리처럼 따라다니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엄마, 또 하나는 생리. 그 꼬리를 잘라내야 진짜 편안한 인생이 시작된다. 나는 생리 양도 많고 기간도 길고 생리통도 심했다. 더구나 명절만 되면 주기와 상관없이 반드시 생리를 했다. 아주 지긋지긋하도록.

어느 날부터 생리를 하지 않았다. 의사가 완경이 일찍 올 수 있다고 걱정한 것에 비하면 많이 이르지는 않았다. 드문드문하다가 완전히 끊긴다는데 나는 거의 단번에 끊겼다. 물론 중간에 명절 때 한번 하기는 했지만, 그걸로 진짜 끝이었다. 속이 다 시원했다. 세상에, 사는 게 이렇게 가볍고 한갓질 수가. 근심 걱정을 하나 달고 살다가 그걸 완전히 내려놓은 느낌이었다.

생리를 하는 동안은 말할 것도 없고 평상시에도 생리 일자를 신경 써서 일정을 살펴야 하고 생리대가 떨어지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는 등 불안함이 컸다. 특히 나는 양이 많아서 아기 기저귀를 쓰기도 했는데 파는 곳이 많지 않았다. 동네 마트에서 그걸 살 때마다 신경 쓰이기도 했고 집에 둘 때도 너무 뻔히 보이는 곳에 두기는 민망해서 감추자니 부피가 너무 컸다. 가지고 다녀야 할 때도 마찬가지로 번거롭기 짝이 없었다. 요즘은 굳이 감출 이유가 없는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지만 우리 때는 가족도 모르게 처리하는 게 미덕이었다. 우리는 딸이 셋인데도 서로 언제 생리를 하는지조차 모르게 하는 것이 몸에 배었다.

옷도 자유롭게 입기 어려웠다. 혹시라도 생리혈이 묻지는 않을지 티가 나지는 않을지 걱정스러워서 엉덩이를 덮는 긴 옷을 선호했다. 여행이나 외부 일정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버거웠다.

그런데 이제 마음 편히, 자유롭게, 진짜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게 된 거다. 약속 하나를 잡을 때도 달력을 보며 조마조마하던 습관 따위 내다 버리고 마음껏 아무 때나 아무 데나 갈 수 있게 되었다! 옷도 흰색으로, 딱 붙는 옷으로, 하체를 마음껏 드러내며 아무 거리낌 없이 사는 자유라니. 조심스럽고 소극적인 것이 성격인 줄 알았는데 전적으로 생리 탓이었던 것 같다.


삶의 질이 완연히 좋아진다며 여성호르몬제를 적극 권하는 언니가 있는데, 새로운 가능성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첫 번째 질문이 여성호르몬제를 먹으면 다시 생리해? 였다. 언니는 누구나 그 질문부터 한다며 웃었다. 대답은 아니, 생리를 원치 않으면 안 하는 호르몬제가 있단다. 그럼 원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긴 상황이 다를 테니 그럴 수도 있겠지. 어쨌든 다시 생리를 한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여성호르몬제를 복용할 마음은 전혀 없다. 어떻게 찾은 자유인데.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자유가 진정 내 것인가 의심스러운지 수시로 생리 꿈을 꾸었다. 생리를 와장창 하는 꿈, 몹시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꿈. 몸의 느낌마저 너무 생생해서 깨고 난 후에도 기분이 나빴다.

그저 꿈일 뿐인데 며칠 동안 불안감에 시달릴 때도 있었다. 그림을 한참 그리던 때라서 그림으로 치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감하게 생리혈을 파란색으로 그려 넣었다. 시원스럽게 그리고 난 뒤 꿈을 조금 덜 꾸는 것 같다. 맺힌 마음을 치유하는 데는 그림만한 것이 없다.


자유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생리의 자유는 약간의 부작용을 동반한다. 질이 건조해지는 것이다. 원래 쇼그렌 증후군이 있어서 질만이 아니라 침, 눈물, 소화액 등이 점차 메마르고 있었다. 사실 나는 갱년기가 오면 질이 건조해진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우리는 사춘기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몸에 대해 심각하게 무지하다. 몸의 변화에 대해 직면하기를 두려워한다. 이것이 여성들의 현주소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내 몸은 바스락거리고 있다. 낙엽이 바스락, 부서지는 아름다운 소리가 내 인생이 지고 있는 소리를 대신할 줄이야. 자연스럽게 부부관계를 멀리 하게 되었다. 다행히 어느 날 갑자기 전혀 성욕이 생기지 않았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것도 갱년기 증상 중 하나라고 한다. 성욕 저하가 누군가에게는 걱정거리일 수 있겠지만 내게는 편안함으로 다가왔다. 더 이상 성욕이 없으니 해결해야 할 욕망이 줄어든 게 아닌가. 삶에 있어 또 하나의 근심이 사라진 셈이다. 성욕이 근심이라고 하면 의아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분명 근심이었다. 부부관계를 잘하고 싶은데 잘하는 것 같지 않아 근심이었고, 성욕을 적절히 조절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서 근심이었다.


아예 성욕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힘들었던 엄마세대에 비해서는 우리가 꽤 개방적이라고 믿었고 특히 나는 스스로 꽤 진보적이라고 생각했다. 가부장 문화가 내 가정에서 뿌리내리지 않기를 바랐던 만큼 부부관계에서도 동등하고 싶었지만, 그건 머릿속 생각뿐이었다. 실제로 그러기에는 성에 있어 나는 너무 무식했다. 무식할 수밖에 없다. 그 어디에서도 배울 데가 없었으니.

지금은 많이 개방되었다고는 하지만 우리 문화가 아직은 성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지는 못한 것 같다. 요즘 세대들은 성에 자유롭다고 하지만 어쩌면 우리와 마찬가지로 무식할 수도 있다. 아직도 학교에서는 피임을 가르치는 것조차 문란하다고 여기는 수준이니까 어디서 배울 데가 있었겠는가. 그래도 '야놀자'가 처음 티브이 광고에 나올 때 나는 환호를 했다. 이제 남녀의 애정행위가 당당히 인정받는 시대가 왔구나, 하면서. 더불어 간절히 바란다. 하루빨리 성을 제대로 가르치는 문화가 생겨야 한다. 성교육이나 피임법 따위 말고 자유롭게 성을 나누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친구 유영은 더 이상 부부관계를 하지 않게 되면서 해방감을 느낀다고 했다. 어떤 해방감? 나의 근심과 그 뿌리는 같지 않을까 싶어 다그치듯 물었다. 여자여야 하는 노력을 멈춰도 된다는 해방감, 이라고 그는 말했다. 한 번도 그런 생각하지 못했는데 여자처럼 굴어야 한다는 인식이 내게 있었나 봐,라고 덧붙였다. 예상대로다. 유영의 말대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부분인데 그 말을 바로 이해하고 예상대로라고 받아들이는 걸 보면 나도 분명 그런 압박을 받았나 보다.

후배 정안도 비슷한 말을 했다. 정안의 남편은 사회생활의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부부관계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 남편을 충분히 이해하고 안쓰러워하면서도 동시에 스스로 내가 여자답지 못한가, 여자로서의 매력이 부족한가, 관심을 끌게 하면 달라질까 등등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했다고 한다. 이제 부부관계가 어려워지면서 그런 자괴감을 느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말 그대로 부부관계로부터의 해방이다.

그런데 유영이 새로운 숙제를 가지고 나타났다. 남편은 그래도 아직 원하지 않을까? 벌써 부부관계를 그만두는 게 맞는 일일까? 산부인과에 가서 상담을 했더니 여성호르몬제나 젤, 오일 등을 활용하라는 조언을 들었단다. 부부가 원한다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본인은 원하지 않지만 남편이 원한다면 다시 여성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마음의 결정을 하지 못해서 아직 남편에게 물어보지 않았다고 한다. 아니, 우리는 왜 남편의 욕망까지 체크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부부의 권력관계는 섹스에 있다고. 누가 더 욕구가 큰가에 따라 그 우위가 나뉜다. 당연히 더 욕구가 큰 사람이 아래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그건 어느 정도 상대가 성을 이용할 의지가 있을 때 얘기다. 상대가 전혀 관심이 없으면 아무리 혼자 우위를 차지하려고 덤벼봐야 그림자와 싸우는 격이 된다. 한편으로 이것또한 소극적인 의지 때문이 아닌가 생각도 해봤지만, 매우 개인적인 부분이라 과연 소극적인지 아닌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과연 우리 여성들에게 성욕이란 무엇일까? 사실 이 부분은 더 많은 조사와 학술적인 연구를 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하게 응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만 있다면.

어쨌든 나는 학술서를 쓰는 것도 아니고 연구자도 아니다. 다만 에세이를 쓰는 사람으로서 나와 내 주변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나의 생각을 쓸 뿐이다. 어쩌면 초록은 동색이라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겠지만 그렇더라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정안은 이제 더 이상 남편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했다. 자신의 성욕을 접을 수 있을 만큼 성욕저하가 온 것이기도 하고 더 이상 남편과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이 들어서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마시라. 부부 사이가 나쁘지는 않다. 오히려 더 좋아졌다. 한쪽의 욕망이 사그라들면 갈등은 사라질 수 있다. 꽤 긴 기간, 거의 결혼생활 대부분의 시간 동안 심각하게 고민했던 문제가 갱년기를 맞아 어느 날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것도 의심스럽다. 과연 참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면 우리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는가. 심지어 자위조차 심리적 거부감이 있는 우리들 세대에게 다른 선택이라는 게 과연 있을 수 있겠는가.

좀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완경 일기>를 읽으면서 삽입 성교만이 아니라 다른 성교들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질 건조로 인해 삽입 성교가 어려워짐으로써 부부관계는 끝이구나 생각했는데, 다른 성교로도 충분히 성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말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반가웠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늦게라도 새로운 성에 눈을 떠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성생활이라는 게 혼자 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나 만큼이나 의식적으로 굳어있는 남편을 일깨우고 시도할 만큼 성에 대한 애정이 내게는 없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그냥 성적 욕구가 적은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그걸 인정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회면 좋겠다. <완경일기>뿐 아니라 많은 외국 책에서는 갱년기 이후에도 성욕을 마음껏 누리라고 한다. 정말 저들은 성욕이 여전히 있어서 그렇게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성욕이 사그러들면 여성성이 훼손될 것처럼 느끼는 건 아닐까 의심스럽다. 여성성이니 남성성이니 하는 것은 꼭 성욕과 비례하는 것일까. 사람마다 욕구가 다르고 나이가 들면 욕구도 줄어드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데, 마치 욕구가 적으면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게 더 이상하다. 활력을 되살리자는 말처럼 어거지 같다. 이제 없는 활력은 없는대로 두고 있는 활력으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친구 지은은 또 다른 측면에서 부부관계의 해방감을 맛보고 있다. 여자에게 양육은 동물적 본능이다. 지은은 양육을 끝내면서 생의 과제를 끝낸 것 같은 해방감이 느껴진다고 한다. 누군가는 빈 둥지 증후군이 오면서 가치 상실을 맛보지만 반대로 지은은 임무 완수의 해방을 느끼는 것이다.

이제 남편이랑 살만해. 그동안은 우선순위가 애들이었는데, 지금은 남편이 먼저야.

가족의 구도가 달라지면서 부부관계도 달라졌다. 한 존재를 함께 키워냈다는 동지애가 서로를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주었고, 더 이상 임신 걱정이 없다는 것이 안전하고 편안한 관계를 이어가게 해 준다.

그렇다고 격정을 맛보는 건 아니다. 남편이 더 이상 남자로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함께 한 세월이 섹슈얼함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주었다는 말이다. 오히려 여자라는 성 역할에서 벗어나 진정한 인간으로서, 한 존재 대 존재로서 마주하는 시간이라고 한다.

일종의 임무 완수를 다한 자에게 주어지는 포상휴가다. 지은은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남편이 동료나 친구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니, 이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갱년기 이야기라면서 왜 성욕 이야기를 하느냐고? 이게 바로 갱년기다. 속 끓였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객관적으로 할 수 있다. 별로 걸릴 게 없다. 뜻하지 않은 지점에서 용기가 생긴다. 성역할뿐 아니라 모든 역할에서 자유로워지고 제재에서 벗어난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이 살아온 시대적 한계라는 것을 안다. <완경 일기>에서 다시 스타인키는 "완경기를 겪으며 전에 없이 난폭한 언행을 보이는 여자는, 그동안 엄격히 쌓아왔던 자기 수양의 균열을 발견한 셈이다. 그 틈새를 통해 여자는 마침내 자유를 찾아 탈출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라고 했다. 몸, 섹스, 아기라는 보상을 얻는 가임기 때와는 달리 완경기에는 아무런 보상이 없는 자유가 주어진다. 필멸로부터 오는, 소멸로 향하는 무소유, 대가 없는 데서 오는 선한 의지의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