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라는 정체성
학교에서 학부모란 무엇일까? 학부모의 역할은 무엇이고, 학교교육에서 학부모의 자리는 어떤 것일까?
평소라면 딱히 생각해볼 것도 없이 학교에서 학부모의 자리는 굳이 필요 없으며, 학부모는 자녀가 건강하고 성실하게 학교에 잘 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만일 학교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면? 이를 테면 상담을 요청해오면 어떨까? 학부모는 자식을 맡긴 처지에서 납작 엎드릴 것인지 또는 교육서비스의 소비자로서 당당할 것인지 깊은 고민에 빠진다. 이럴 때 학부모는 자녀의 보호자이자 책임자로서 때로는 학생보다 더 당사자가 되기도 한다.
교육 기본법*에는 학부모를 부모 등 보호자라고 지칭하며, 학습자, 보호자, 교원, 그리고 교원단체와 설립자 및 경영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교육당사자라고 명시되어 있다. 초중등 교육법**에는 취학의 의무가 있으니 모든 국민은 학부모로서의 의무가 있다고 못 박아두었다.
배움의 대상으로서 학생이라는 당사자와 가르치는 전문가로서 교사라는 당사자뿐만이 아니라, 배우고 가르치는 역할은 아니지만 배우는 자의 보호자이며 가르쳐야 하는 책임자로서 학부모는 당사자성을 가진다고 법으로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학부모는 교육의 당사자라는 주권의식이 아주 낮은 상태다. 교육의 3 주체가 누구냐고 물으면, 아직도 많은 이들이 학생과 교사에 이어 학교를 꼽는다. 심지어 교장을 꼽는 사람들도 많다. 그동안 학교에 학부모가 개입할 여지가 있었던가. 교육의 3 주체라니, 솔직히 말해서 조금 부담스럽다. 마치 부모의 재력과 정보력, 어쩌고 하는 얘기를 듣는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이는 비단 학부모만이 아니라 학교나 사회의 인식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학부모의 자기 주체성은 자녀의 학교에 수업을 지원하는 봉사자로 참여하는 수준이었다. 교육기관의 학부모 정책도 그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갈망과 자치의식이 높아지면서 학교 현장이 달라지고 있다. 교육공동체로서 마을과 학부모의 역할이 요구되고 학생들에게도 학교자치에 적극 참여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바야흐로 학교자치의 시대다.
진정한 주인은 정책결정이나 집행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당사자로서의 지위를 가져야 한다. 학부모도 교육 3 주체의 한 축으로서 자기 주체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또한 교육청이나 학교 등의 교육기관으로부터도 교육주체로서 인정되고 참여가 보장되고 영향력이 권위를 갖는 일련의 조건이 확보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학부모란,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난 어린 시민이다. 어린 시민이 좋은 교육 시민으로 커갈 수 있는 과정, 즉 사회화 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학부모가 자기 주체성을 가질 수 있는 사회문화적 조건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그 시작에 미력하나마 이 글이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교육 기본법 13조 1항 부모 등 보호자는 보호하는 자녀 또는 아동이 바른 인성을 가지고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교육할 권리와 책임을 가진다.
**초중등교육법 ‘모든 국민은 보호하는 자녀 또는 아동이 6세가 된 날이 속하는 해의 다음 해 3월 1일에 그 자녀 또는 아동을 초등학교에 입학시켜야 하고,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다니게 하여야 한다.
***학부모교육 주체화 방안 연구, 2016, 경기도 교육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