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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Apr 08. 2022

엄마의 것을 탐하는, 탐하지 않는


오랜만에 세 자매가 다 모였다. 미국에서 사는 큰언니가 왔기 때문이다. 3년 만인가. 모이자마자 우리는 와르르 먹기 시작해서 그동안 못한 생일까지 한꺼번에 다 치르자며 아무 날도 아닌데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자르고 노래를 불렀다.   

큰언니가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가방이랑 꿀이랑 영양제까지 레퍼토리는 똑같다. 왔다 갔다 경비만 해도 큰 부담일 텐데 뭐 하러 이런 거 사 오냐고 한 마디씩 했다. 언니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선물로 표시하고 우리는 선물에 대한 고마움을 만류로 표시한다.

큰언니가 엄마한테 예전에 드렸던 가방은 잘 쓰고 계시냐고, 그게 좀 무거울 테니 새 가방 쓰시고 그건 다른 사람 주자고 했다. 엄마는 그 가방이 어디 있더라, 딴청을 피웠다. 언니들은 장롱을 열어보며 본격 수사에 나섰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언제나 엄마것을 탐했다. 화장대에 놓인 빨간 립스틱과 신발장 안쪽에 숨겨진 뾰족구두(그때는 아무도 하이힐이라고 하지 않았다)를 호시탐탐 노렸다. 엄마가 안 계신 틈을 타서 입술을 바르고 뾰족구두를 꺼내 신고 장롱 아래 서랍에 차곡차곡 개어 놓은 한복을 꺼냈다. 그때만 해도 한복이 외출복으로 많이 쓰일 때라서 한복이 꽤 많았다. 딸 셋이 한복을 입고 장옷이랍시고 치마를 둘러쓰고도 남았다. 우리는 그것을 ‘궁중놀이’라고 불렀다. 누군가는 마마를 하고 누군가는 상궁을 하는 놀이였다. 서로 마마를 하려고 기를 썼는데, 마마의 시중을 들어주는 상궁이 싫기도 했지만 상궁은 초록색 단색 한복을 입는 데 비해 마마는 금박이 붙은 화려한 한복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자매들은 배역 분담에 아주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큰언니는 맏이의 권위를 내세워 본인이 지정해주려고 들었다. 궁중놀이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놀이였고, 아무래도 마마가 놀이를 이끌어 가야 한다. 며칠 전에 방영한 사극을 적절히 배치하고 우리 모두가 등장하는 장면을 연출해 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큰언니는 놀이를 잘 이끌어가기 위해서라도 본인이 마마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작은 언니는 자신도 충분히 할 수 있으니 공정하게 가위바위보로 하자고 우겼다. 나는 놀이를 시작하기도 전에 싸움이 일어날까 애가 닳아서 먼저 상궁을 자임하고 나섰다. 언니들은 결국 두 사람의 마마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서로 중전이 되겠다고 싸웠다, 진짜 사극처럼.


엄마가 오는 시간에 맞춰 놀이를 끝냈어야 했다. 하지만 매번 지금쯤이면 엄마가 올 시간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우리는 멈추지 못했다. 초인종 소리에 놀라 후다닥 한복을 벗어던지고 서로의 얼굴에 묻은 립스틱 자국들을 지워댔다. 왜 문을 안 여냐고 닦달하는 소리를 들으며 한복을 개어 넣었고, 그렇게 갠 한복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엄마는 안방을 한 바퀴 휘 둘러본 것만으로도 우리가 한복을 꺼냈다는 사실을 귀신같이 알았다. 엄마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숙제를 꺼내 들고 책상 앞으로 달려가 앉았다.    

   

사실 우리가 가장 탐했던 것은 립스틱도 뾰족구두도 한복도 아닌 엄마의 사랑이었다. 어린 자녀에게 무엇이 필요할지 한 번쯤 돌아봐주는 관심이 필요했다. 딸이 셋이나 되는 집에 그 흔한 토끼 인형 하나 없었다. 기껏해야 연습장 뒤에 그려서 오린 인형 놀이였는데 그마저 엄마에게 들키면 끝장이었다. 그러니 엄마가 외출한 시간을 틈탄 궁중놀이는 거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그 시절에 무슨 인형이 있으며 놀이가 웬 말이냐 하겠지만, 그때도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소꿉놀이도 하고 양말을 기워 엄마놀이(인형을 업고 재우고 키우는 놀이가 엄마놀이라니, 언어가 인식을 지배하는 순간이다)도 했다. 우리는 동생을 보살펴야 한다는 지상명령을 지켜야 했다. 집 앞에서 동생을 잃어버린 적이 있어서 동생을 데리고 나가 노는 것도 금지당했다. 놀이를 금지당한다는 건 모든 순간, 온 존재로 죄의식을 내면화하게 되는 일이다.      

죄의식, 하니까 또 다른 기억이 소환된다. 고3 때 일이다. 친구랑 떡볶이를 사 먹고 있는데 멀리에 엄마가 보였다. 나는 얼른 몸을 숨겼다. 왜 그래? 친구가 놀라서 물었다. 쉿, 우리 엄마야, 대답하는 나를 보며 친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떡볶이 먹는 게 어때서? 그때 처음 알았다. 떡볶이를 사 먹다가 들켜도 되는 엄마가 있다는 것을. 아니, 사실은 한 번도 들켜본 적이 없어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직 모른다. 하지만 당연히 혼날 거라는 죄의식이 잠재되어 있다.


엄마에게 혼나지 않아도 되는 어른이 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엄마는 우리를 혼내려고 자꾸 잔소리를 하고, 이제 우리는 혼날 마음이 없다.

결국 엄마가 가방을 꺼내왔다. 명품 가방이라고 아끼느라 깊숙이 넣어두었는지 잔뜩 눌려 있었다. 그것 말고도 몇 개 더 꺼내왔다.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했다. 엄마는 큰 마음먹고 내놓았을 텐데 아무도 그것을 탐하지 않았다. 우리는 엄마가 가방을 꺼내놓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도 강짜를 부려본 거다. 예상밖의 전개에 우리는 조금 당황했다.

생각해보면 그때 엄마는 정말 짜증이 났을 것이다. 비싼 한복을, 그것도 드라이해서 잘 손질해놓은 한복을 엉망으로 쑤셔 넣어 잔뜩 주름을 만들어놨으니 얼마나 속이 상했을 것인가. 야단만 치고 말았니 그만하면 넓은 아량을 베푼 것이지 싶다.  

이제 우리는 엄마에게 탐하는 것이 없다. 가방뿐 아니라 사랑마저도. 그럼에도 자식들은 수시로 엄마를 시험한다. 엄마가 가방을 꺼내는지 팔짱을 끼고 쳐다본다. 꺼내지 않아도 그만이고 꺼내도 그만이긴 하다. 저 못해본 투정을 이제라도 해볼 뿐. 금박 한복이라도 꺼내면 조금 달라지려나.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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