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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Apr 02. 2022

당당한 희도 엄마, 아니 신재경이길

다시 한번, 스물다섯스물하나

한번 더 희도 엄마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이전 글은 여기에~사이좋게 지내렴이라니 (brunch.co.kr). 희도 엄마의 서툰 엄마 노릇을 실컷 흉봤더니 그다음 주에 바로 희도 엄마로서가 아닌 인간 신재경의 이야기가 나왔다.


신재경은 뉴스 앵커로서 사람들이 자신의 뉴스를 먼저 봐주는 것이 꿈이다. 타 방송사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하는 모든 일들보다 자신의 뉴스가 먼저이기를 바라는, 프로의식으로 가득한 사람이다. 엄마이기 이전에 한 직장인, 직장인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사람. 프랑스 특파원을 하고 앵커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힘겨운 나날을 보낼 무렵 남편은 투병을 하다 결국 먼저 세상을 떠나버린다. 희도가 아빠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할 때 희도 엄마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보다 원망이 더 크다. 그런 신재경을 누가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예전이었다면 아이와 함께 먹고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엄마의 힘겨움을 다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달랐다. 희도가 자신이 좋아하는 펜싱을 하기 위해 전학을 가고 전학을 위해 벌이는 온갖 철없는 짓들조차 응원하게 하고 펜싱선수로서 밤낮으로 훈련하고 결국은 금메달을 거머쥐는 모습에 환호하듯이, 그것이 희도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누구나 동의하듯이 신재경도 기자로서 최선을 다하고 앵커자리를 탐하고 지금도 이진에게 닮고 싶은 멋있는 선배로 사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고 한다.  


나에겐 상처였지만 엄마는 널 꿈꾸게 했구나? 그건 그거대로 좋은데?라고 말하는 순간 희도는 더 이상 뉴스가 나랑 무슨 상관인데! 라던 철없는 희도가 아니다. 아빠의 산소에서 흐느껴 우는 엄마를 위로하며 열세 살 아이에서 제 나이로 쑥 자라 버린다.

그러니 세상의 엄마들이여! 제발 허물어져라. 아이 앞에서 때로 허물어져서 아이에게 기대라. 아이가 엄마에게 얼마나 큰 의지가 되는지 느끼게 하라.

제대로 된 애도는커녕 장례식도 못 가고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했던 수많은 엄마들이 아이에게 기대어 흐느껴 울고 위로받기를 바란다. 서툰 엄마 노릇 그만두고 자식을 자식으로만 머물게 하지 말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 삶의 고단함을 나누길 바란다. 그러기에는 희도가 너무 어렸다고? 아니, 제 손으로 밥숟갈을 들 수만 있다면 인간은 누구나 상대에게 도움이 되고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일방적인 희생과 봉사로 이루어지는 우리네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펼쳐나가야 한다.


집안일을 걱정 말고 너는 공부만 해라, 던 시대를 건너온 우리 세대는 돈은 내가 벌 테니 너는 행복하기만 하여라, 라며 아이를 키웠다. 친구 p도 그랬다. 우리나라 교육의 폐해를 온몸으로 겪고 자라 아이만을 그럴 수 없다고 아이를 멀리 유학 보냈다. 그곳은 교사가 아이를 존중하고 아이도 자유롭게 자신의 개성을 펼치며 산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유학비를 감당하느라 늘 헐떡거렸다. 결국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은 친정집과 합쳤는데, 요즘 들어 엄마가 수시로 네가 왜 이렇게 사냐고 한탄을 하신단다. 아마 다방면에 꽤 능력 있었던 p가 오로지 자식 뒷바라지에만 올인하는 것이 안타까우셨나 보다. 그런 어머니도 p의 뒷바라지만 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p는 자식이 대학도 그 나라로 가고 취직도 거기서 해서 아예 그 나라에 정착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p의 눈에서 허허로움이 느껴졌다. 과연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올라선 행복은 어떤 모습일까. 희생은 쓸데없이 부모 원망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이미 우리가 그랬잖은가.


어른이 된 희도가 엄마와 수면내시경을 받았다. 희도는 엄마에게 어디 가지 마,라고 하고 엄마는 너무 혼자 뒀어 엄마가,라고 말한다.

아, 여기서 다시 실망했다. 기껏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인간 신재경을 보여주고서는 나이 들어서 다시 퇴행한 모습이라니. 작가의 연륜이 짧아서라기보다 우리들 인식의 한계가 그대로 드러난 게 아닌가 싶다. 이제 더 이상 열세 살의 희도는 없다. 희도는 삶의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모습을 알고 엄마를 이해했고, 어른이 되었고, 스스로 엄마가 되었다. 심지어 한 분야에서 자신을 단련하여 최정상에 올라서기까지 했다. 신재경이 갑자기 하던 일을 그만두고 희도의 뒷바라지만 하고 살았다면 몰라도, 왜 곁에 없으면 불안한 부모 자식관계가 되겠는가. 좋게 해석하자면, 이제 나이 든 엄마를 곁에서 따뜻하게 돌보는 자식의 모습을 그린 거겠지.


그래도 이왕 기대하고 보는 드라마니까 바람을 말해보자면, 노인이 된 신재경이 여전히 당당했으면 좋겠다. 자식을 독립적으로 키워낸 엄마로서 당당하고 뉴스를 전하는 자로서 시대에 당당했으면 좋겠다. 딸이 아니라 함께 세월을 나눈 동료 친구들과 건강검진을 하고 여전히 사회에 의미 있는 활동을 해주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일보다 자신의 뉴스를 봐주길 바라는 꿈을 당차게 꾸어온 사람으로서 모두의 귀감이 되는 선배 할머니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드라마도 이제 시대를 이끌어가는 담론을 담아도 되지 않나? why n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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