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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Jul 23. 2022

다들 정원사 한 명쯤 있지 있나요?

아파트에서 즐기는 사계


주부로서, 가족을 돌보는 일이 지칠 때가 있다. 아이들이 어린것도 아니고 까탈스러운 가부장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돌봄이 어디까지나 내 몫이라고 여겨질 때면 나를 돌봐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내가 기대하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래 봤자 따뜻한 밥 한 그릇, 아플 때 건네는 위로 한 마디, 또는 냄새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버려주는 정도인데, 이 소박한 바람이 이뤄지기가 참 쉽지 않다. 그럴 때면 그들을 떠올린다. 그보다 훨씬 넓은 범주에서 나를 돌봐주는 이들.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을 두말없이 해주는 이들.

오늘 아침에도 나를 돌보는 그들의 소리를 들으며 잠을 깼다. 1년 내내 많은 돌봄을 받고 있지만 여름이면 특히 자주, 더 절실하게 그들의 손길을 느낀다. 그런 날은 서둘러 산책을 나선다. 여기저기서 예초기의 굉음소리가 들리고 풀냄새가 진동한다. 그들이 풀을 깎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내 앞마당을 정리해주신다.   

     

한때 주말농장을 운영한 적이 있다. 텃밭 분양받는 거 말고 내가 텃밭을 분양했다는 말이다. 토마토 농장을 하면서 마을에서 밭을 빌려주셨는데, 넓은 땅을 감당하지 못해서 일을 줄여보려고 분양을 했다. 그런데 돈을 내고 분양을 받으면 열심히 땅을 관리할 줄 알았는데 사람들은 의외로 경제적인 소비를 하지 않는다. 상추 조금 심다가 그대로 방치해버리곤 해서 오히려 잔손이 많이 갔다. 주로 풀 뽑기다.

풀을 뽑아보지 않은 자와 겸상하지 말라, 는 나의 모토가 되었다. 우주의 끈질긴 생명력에 질려보지 않은 자와 무슨 말을 하겠는가. 결국 내 팔은 망가졌고 수술밖에 답이 없었다. 의사는 당기고 비트는 동작이 특히 좋지 않다고 했다.  


그럼에도 풀냄새를 좋아하는 걸 보면 아직 나는 자연친화적인 사람이다. 아파트에 이사 온 후 가장 힘들었던 것은 농작물을 볼 수 없다는 거였다. 나무도 있고 꽃도 있는데 뭔가 헛헛했다. 아파트 외곽에 심어놓은 텃밭을 보고야 알았다. 아, 농작물이 자라는 걸 보고 싶었구나. 그 뒤로 산책길을 바꾸었다. 매일 남의 텃밭을 내 텃밭인양 흐뭇하게 돌아본다. 심심한데 풀이라도 뽑아줄까 돌아보지만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아파트 주변 공터를 텃밭으로 가꾸는 사람이 오죽하랴. 농사에 대한 집착이 말도 못 한다. 그런 이들은 절대 풀 한 포기 남이 뽑을 기회를 남기지 않는다. 얼마나 다행이냐. 쓸데없는 오지랖은 거둬들이고 그저 만족스럽게 보기만 하면 된다.   

    

구석진 밭뙈기를 구경하고 나면 느티나무와 벚나무, 소나무와 전나무, 향나무와 칠엽수, 메타세쿼이아, 청단풍, 배롱나무, 후박나무, 꽃사과나무, 살구나무, 대추나무, 감나무 등등 다양한 수종을 감상한다. 가끔 나무 기둥을 댕겅 잘라놓아서 마음이 상하기도 하지만 수시로 가지치기를 하며 단장을 해주니 눈이 즐겁고 마음이 즐겁다. 여기서 누군가는 관리비를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텃밭 분양비를 받아봤던 자로서, 비용은 내 회전근에 붙은 석회 하나만도 못한 티끌 같은 것이다. 어제만 해도 화단에 풀이 너울너울 눕는 걸 보며 바람결을 느낄 수 있다고 좋아라 하고 오늘은 파르라니 풀밭을 깎아주니 얼마나 시원한가.  


1층 화단을 꽃밭으로 꾸며놓은 집들이 있다. 흔히 화단에서 볼 수 있는 메리골드나 소국도 좋지만 옛날 마당에서 보았던 분꽃이나 봉선화, 접시꽃 등이 더 반갑다. 두 평 남짓한 그 작은 공간에 계절마다 다른 꽃을 볼 수 있게 정성스럽게 가꾼 집 앞에서는 절로 걸음이 멈춘다. 5월에는 장미를 보게 하더니 6월에는 양귀비꽃을, 7월에는 접시꽃을 보게 해 주었다. 8월에는 무슨 꽃이 필까 요기조기를 훑어보지만 내 깜냥으로는 알지 못한다.

하루는 꽃 사진을 찍기로 작정하고 아직 해가 있을 때에 맞춰 핸드폰을 챙겨 나갔다. 보통은 산책길에 핸드폰을 들고나가지 않지만 가끔 내 정신에도 잊지 않을 때면 글에 곁들일 사진을 찍곤 한다.


몇 군데 좋아하는 화단을 마음에 정해두었다. 접시꽃이 2층 베란다까지 닿도록 키가 자랐다가 씨앗이 굵어지며 몸을 기울이는 그곳에 이르러 멀리서도 한 장, 가까이서도 한 장 사진을 찍었다. 자전거에 몸을 기댄 접시꽃을 찍고 돌아서는데 정자에 앉은 할머니 한 분이 나를 향해 손짓을 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할머니 서너 분이 부채를 쥐고 흔들다가 나를 향해 바람을 보내신다.


우리 집 분나무도 찍어.

나를 불렀던 할머니의 말에 다른 할머니들이 의아한 눈길을 보내자, 아니 꽃 사진을 찍길래, 하신다.

조~기 앞으로 돌아서면 우리 집인데 분나무가, 좋아. 찍어.

분명 분나무라고 하는데 그게 분꽃이라는 걸 나는 용케도 알아들었다. 말씀하신 대로 아파트 앞쪽으로 가보니 1층 화단에 분꽃이 가득했다. 과연, 불러서 자랑할 만하다. 나무라고 할 만큼 줄기가 대단했다. 어릴 때 나는 흰색과 분홍색 밖에 보지 못했는데 흰색 바탕에 분홍 줄무늬가 있는 꽃도 있었다. 여기도 당연히 풀 한 포기 없다. 할머니의 새벽이 눈에 선하다. 작은 몸을 웅크리며 자분자분 풀을 뽑고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보살피셨겠지. 할머니께 자랑할 기회를 드린 내가 기특할 정도다.



할머니처럼 화단 가득 꽃을 심어놓은 경우도 있지만, 가꾸지 않으면서 제멋대로 심어놓은 곳도 있다. 그런 곳은 예초기를 돌리기도 어려워 일일이 낫질을 해야 한다. 내 화단이 아닌데도 빼앗아버리고 싶다.

반대로 없는 화단을 만들어가는 분들도 있다. 아마 1층에 사는 분이 아닌지 베란다 앞이 아니라 비상계단으로 올라가는 입구 쪽을 화단으로 꾸몄다. 긴 시간을 들여 미리 거름을 하고 풀이 나지 않게 낙엽 같은 걸로 잘 덮어두었다가 나무를 심고 돌담을 쌓아 길을 내는 거다.

 우연히 그 시작부터 보게 되었는데, 며칠 동안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숙련된 정원사의 손을 상상할 수 있었다. 직접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분나무를 키운 할머니처럼 아마 그분도 그러했을 것이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화단을 보면서 마치 내 정원사에게 하듯 속으로 독려하곤 했다. 그러고 보면 내게는 여러 명의 정원사가 있는 셈이다. 단지를 관리하는 정원사와 구석구석을 꽃으로 꾸며주는 정원사, 그리고 농작물을 보여주는 정원사(?)까지.      


눈에 보이지 않게, 사실은 보이지만 자꾸 잊혀지는 그분들이 내 발밑을 깔끔하게 정리해주고 내 눈앞을 푸르게 가꿔준다. 4계절 어느 때고 그분들은 그러하셨는데, 나는 여름에야 비로소 그분들을 느낀다. 어디 그분들뿐이랴. 아파트 밖에도 수많은 이들이 길바닥을, 도로를, 산을, 발아래 지하까지 샅샅이 보살펴 주는 분들 덕에 안락한 일상을 누리고 산다.


하지만 일단 요기까지, 내 생활권 안에서부터 밀도 높게 감사함을 느끼자. 오늘은 짙은 풀 향기를 맡으며, 예초기를 드신 당신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큰소리 쳐본다. 내 뒤에는 그들이 있다. 나를 돌봐주는 이들이 이리도 많다. 내 뒷배도 든든하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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