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갑자기 브런치 북 <당신의 갱년기 안녕하신가요?[브런치북] 당신의 갱년기 안녕하신가요 (brunch.co.kr)>의 조회수가 많아졌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 무슨 일인가 살펴보니, ‘엄마의 갱년기 덕질’이라는 키워드로 유입된 수가 많아져서란다. 엄마, 갱년기, 덕질 세 가지 다 내 글의 핵심 주제가 아닌가. 왜 갑자기 엄마의 갱년기 덕질이라는 키워드가 형성된 건지 어리둥절하지만, 어쨌든 그 김에 오랜만에 덕질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얼마 전 경인방송 ‘엄윤상의 책과 사람’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요즘 덕후의 덕질로 철학하기>의 저자로서 인터뷰 요청(다시듣기 - 엄윤상이 만난 사람과 책 - 에세이 '요즘 덕후의 덕질로 철학하기' - 천둥 작가 라디오 (ifm.kr)이 들어왔다. 이때다 싶어서 인터뷰를 핑계로 남편과 인천 여행을 했다. 하루 전날 출발해서 남편의 후배 집에 갔다. 후배는 몇 년 전부터 자기 집에 놀러 오라고 노래를 불렀는데, 코로나 때문에 계속 미뤘던 차였다. 그동안 그는 주택으로 이사해서 셀프 공사하는 재미로 살았다고 한다. 시중에 있는 제품을 사서 설치하는 게 아니라 주로 버려진 재료들을 활용해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무언가를 만든다고 한다. 돌아보는데 과연 하나뿐일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빌딩 앞에나 있을 법한 차량 대문이며 폐타이어로 만들어진 계단이며 내 눈에는 독특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반려견을 위한 수영장과 고양이 타워가 마당 중앙에 설치된 걸 보면서 요즘 반려동물을 위한 집을 만드는 게 유행이라는데 시대를 앞서 나가는구나, 쌍 따봉을 날려주었다. 마당 한구석에 포장마차 하나가 통째가 모셔져 있었는데, 바비큐 그릴처럼 야외용 조리대를 만들 예정이라고 했다. 옆에서 후배 부인이 제발 그러지 말라고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보기에도 과하다 싶었다. 하지만 한껏 고양된 후배는 말릴 수 상태가 아니었다. 그때 후배가 산을 사서 직접 집을 지을 계획이라는 말을 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되도록 사지 않고 버려진 것으로 자기 손으로 해내고 싶다는 것이다.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게 가장 그 다운 모습이라는 걸 그동안 지켜봐 온 우리는 안다. 조만간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날은 30년 전에 잠시 몸담았던 산악회 회원 부부를 만났다. 얼마 전 남편이 퇴직을 하고 아내와 함께 우리 술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판매용이 아니라 오로지 두 사람이 마시기 위함이란다. 우리는 옛날 옹기로 만든 소주고리를 구경하고 50도가 넘는다는 소주를 맛보았다. 그들은 쑥향을 덧입힌 애주, 직접 연잎을 덖어 만든 연엽주, 제주도 소나무 순을 따다 만든 송순주 등을 꺼내 맛만 보여주고 ‘썰’을 푸는 데 여념이 없었다. 우리는 애가 탔지만 기꺼이 애타 주었다. 지금 그들이 얼마나 신났을지 누구보다 잘 아니까. 아끼다 똥 된다는 남편의 수작에 아직 덜 익은 술을 자꾸 비워서 문제였을 뿐이다. 부부는 술만 담그는 게 아니라 떡이며 꽃차, 쌍화차, 심지어 경옥고까지 만들고 있었다. 가만 들어보니 만드는 건 전부 아내가 하고 남편은 주로 입으로 생색만 내고 있었지만. 그래도 부부는 쿵짝이 맞았고 조만간 귀촌을 꿈꾸고 있다. 물론 귀촌해서도 경제활동을 할 생각은 전혀 없고 그저 할머니들과 놀 생각뿐이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어쩌면 이렇게도 여행 목적에 걸맞은 독특한 덕후들을 만났을까 신기했다. 덕질 인터뷰도 재미있었지만 역시 덕후는 덕후와 통하는 법, 좋아하는 일을 신나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는 건 좋아하는 대상과 상관없이 힐링이 되는 일이다.
인터뷰에서 덕질의 참 매력이 뭐냐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는 거라고 답했다. 사실 인터뷰 내내 강조하고 싶었던 말은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궁금증이나 이상증세가 아니라, 무언가에 관심을 갖게 된 것 자체에 대한 환희와 그 환희를 느끼는 나 자신의 사랑스러움에 대한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무언가를 좋아하고 알고 싶어 하면서 앞으로의 삶이 더 궁금해지고 나 자신에게 환호하게 되는 선순환의 고리 말이다.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이라는 그림책에는 다른 나라에서 쓰이는 아름다운 단어들이 나온다.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해진 단어 ‘휘게’처럼 그 느낌만은 충분히 짐작되는 단어들이 가득하다.
‘타라브’라는 단어는 음악에 매료된 상태라고 하는데, 전율의 느낌뿐 아니라 주저앉은 마음을 일으키는 것까지를 모두 말한다고 한다. ‘포렐스케트’는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 때의 기쁨이고, ‘쿠 드 푸드르’는 번개를 맞은 듯한 충격이나 갑자기 사랑에 빠졌을 때 오는 숨 막히는 느낌을 뜻한다고 한다. 또 '보르프럿'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기쁜 일을 미리 짐작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내게는 타라브나 포럴스케트, 쿠 드 푸드르, 보르프럿 모두 덕질하는 순간을 설명하는 단어들이다.
엄마의 갱년기 덕질이라는 키워드가 이런 아름다운 감정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은 바람이 담긴 것이면 좋겠다. 갱년기는 그런 아름다운 감정으로 이끄는 촉수가 최대한 예민하게 뻗어나가는 시기니까. 그래야 살 수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거다. 각자의 놀이, 각자의 덕질로 타라브하자.
덧.
아들이 워터밤 축제에 갔다. 26살의 건장한 남자가 전투복을 챙겨 입고 플라스틱 물총을 멘 모습은 차마 웃음이 터지지 않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꾹 참고, 아들~ 다 때려 부수고 와,라고 응원해줬다. 갱년기만이 아니라 인생의 그 어느 때라도 보르프럿한 삶을 꿈꾼다. 모든 순간 보르프럿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