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둥 Nov 09. 2022

<돌멩이를 치우는 마음> 후기

뒤늦은 작가 후기를 올려봅니다.

작가 후기로 써야 할 내용인데, 여차 저차 한 이유로 책에 싣지 못했습니다. 북 토크 등을 하면서 제게는 꽤 중요한 지점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어른이 되면서 어른에 대한 환상이 깨진다. 나는 변호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게 되면서 그 환상이 깨졌다. 어른들이 똑똑하고 바른말 잘하는 아이에게 커서 변호사가 되라고 하기에 변호사는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어른이 되고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변호사는 진실이 아니라 의뢰인, 즉 돈 주는 사람 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미 어른이 사는 세상에는 수많은 문제가 있다는 걸 몸으로 느끼고 있었지만 그때만큼 큰 충격은 처음이었다. 언젠가 어른의 문제를 세상에 폭로하리라 다짐했던 것 같다.   

    

들끓어 오르는 시절을 나이로 먹어치우며 다짐이라는 것도 까먹은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우연히 티브이에서 하는 영화를 보면서 그 다짐이 떠올랐다. 학교에서 맞은 아이가 체육관에서 힘을 길러 가해자를 때리는 내용이었다. 뻔하디 뻔한 복수의 클리셰였는데, 21세기에 아직도 이런 이야기밖에 못 한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났다. 더는 미룰 수 없었다. 폭로를 하든가 다른 방식으로 대안을 상상해내든가 해야 했다. 그 마음이 이 책을 끝까지 밀고 간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아이들의 문제는 전부 어른의 문제여서 아이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하거나 처벌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다. 어른이 바뀌고 환경을 바꾸면 된다. 하지만 어른들은 사는 데 바빠서 그럴 틈이 없고, 그런 이야기는 극적이지 않아서 읽히지 않는다고 지인들은 다정한 조언을 했다. 내가 사는 세상에서는 상상도 못 할 복잡하고도 험난한 현실을 읽는 것이 소설이라고 하지만, 또한 우리가 살아가고 싶은 세상을 담아내는 것도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부족하지만 소설로 담아낼 필요가 있었다. 또한 나는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다. 여기서 정치적이란,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이나 주목을 끌어내고 싶은 어떤 사실'이고, '따라서 나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남들이 들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미학적인 경험과 무관한 글쓰기라면' 이토록 길게 붙잡고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어떤 종류의 책을 쓰고 싶어 하는지 꽤 분명히 알고 있'었다.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인용) 

   

세상이 불합리한 것을 모르지 않으나 발에 걸려 도무지 넘어가지지 않을 때, 한 번쯤 수고롭더라도 돌멩이를 치우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들이 세상을 바꾼다. 그런 순간을 사는 이들을 응원하고 싶다.

언제나 그런 삶을 살자는 게 아니라 살면서 한 번쯤은 그러자는 것이다. 딱 한 시절만 그렇게 살아도 충분하다. 모두가 한 시절만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걸려 넘어질 일이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뒷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발부리가 걸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말하는 나도 그러지 못했다.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다. 이 책은 죄책감의 산물인지도 모르겠다. 쓰는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무언가 해야 하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감과 결국 도망쳤던 죄책감이 가장 먼저 떠올랐고, 기어이 써내었으니 조금이나마 마음이 가벼워질 줄 알았다. 그런데 책을 내는 지금 별로 그렇지는 않다. 다만 이 책이 밑불이 되어 많은 논의가 퍼져나갔으면 좋겠다는 소망만 키운다. 


그리고... 견디지 못하면 도망쳐야 한다. 처음에 품은 그 마음을 내가 가진 에너지로,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풀어나가면 된다. 





<신간> 돌멩이를 치우는 마음 | 중앙일보 (joongang.co.kr)


돌멩이를 치우는 마음 – Daum 검색



작가의 이전글 그날, 우리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