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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Dec 07. 2022

달님, 안녕!

아파트에서 즐기는 사계

매일 걷는다. 요즘같이 추울 때는 계단을 오른다. 내려오는 건 엘리베이터의 도움을 받고, 오르는 것만 한다. 아파트는 계단이 있어서 사시사철, 추울 때나 더울 때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운동을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렇다고 계단만 오르면 절대 후회하게 된다. 오늘 같은 날, 달을 보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오늘은 보름달이 환하게 떴다. 여름밤의 달도 좋지만, 겨울밤 그것도 쨍하게 추운 날 밤하늘의 달은 마치 살얼음이 가득한 동치미를 입에 문 것 같이 시원하다.  

     

사람들은 왜 달을 좋아할까. 왜 달을 보며 무언가를 기원할까. 별도 있고 해도 있는데 왜 하필 달일까. 한결같은 모양도 아니고 매일 조금씩 바뀌고 날씨에 따라 어쩔 때는 보이고 어쩔 때는 보이지도 않는데, 왜 정화수를 떠놓고 그릇에 비친 달을 향해 비는 걸까. 해는 쳐다볼 수 없어서 빌지 않는 걸까. 별똥별은 보기 힘들어 귀하니까 비는 걸까. 보름달일 때에도 조금은 이지러져있고 달의 바다로 말갛게 환하지만도 않은데, 왜 우리는 둥글고 환한 달이라고 칭송하는 걸까.      

나도 남들처럼 달을 보고 빌었다. 어릴 때는 엄마를 따라 했고 커서는 아이들과 함께 달님에게 가족의 안녕을 빌었다. 와, 달님이다! 아이들은 촛불을 켜고 소원을 비는 것처럼 달님을 보면 소원을 비는 거라는 걸 몸으로 익혔다.


<달님 안녕>이라는 그림책이 있다. 달님 안녕,으로 끝나는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아이들은 긴 숨을 뱉으며 만족스러워했다. 매일 밤 읽고도 또 읽어달라고 가져왔고, 책을 덮는 아이의 얼굴은 달님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 그림책 때문에 하늘을 쳐다보며 달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점차 탄성은 줄었고 달님은 그냥 달이 되었다. 그냥 달일 때도 아이들이 탄성을 터트린 적이 있다. 언니 집을 방문하러 미국에 갔을 때다. 미국 달은 우리 달보다 큰 거 아시는가? 천체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왜 큰지는 모르겠다. 위도의 차이가 있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어쨌든 미국에서 달을 보자마자 우리는, 아이들과 나는 입을 떡 벌리고 서 있었다. 대단한 우주 쇼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크다기보다는 가깝다. 너무 가까워서 만질 수 있을 것만 같다. 자꾸 보니까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처음 봤을 때 느낀 압도감은 잊을 수가 없다. 남편은 아직도 내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러다 덕질을 하면서 달은 다시 내게 달님이 되었다. 야외공연이 있던 날이었다. 세곡밖에 부르지 않는 짧은 행사였는데, 열곡, 스무 곡을 들은 것만큼 만족감이 컸다. 돌아오는 길에 자꾸만 하늘을 올려다봤다. 사람이 너무 행복하면 하늘을 보는가 보다. 너무 힘들면 고개를 처박고 땅만 보며 걷게 되는 것처럼. 그러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그나마 다시 살아지는 것처럼.

그날, 너무 행복해서 하늘을 보았고 마침 달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달은 어제처럼 또는 그제처럼 떠올랐겠지만 내게는 그날의 행복감이 달로 기억되었다. 아, 달에 대한 기원은 어쩌면 이렇게 시작되었을 수도 있겠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행복을 떠올리는 버튼이 달이어서. 값비싼 무엇도 아니고 술이나 커피같이 중독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밖에 없지만 그 누구도 소유하지 못하는 공공의 것이어서.    

   

걸을 때마다 달님을 찾는다. 아파트 건물 사이로 달을 찾은 후 걷는 방향을 정한다. 가능한 한 달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걷고 뒤돌아 뒤통수로 달빛을 받으며 걷고 다시 달님을 바라본다. 앞으로 볼 때는 행복감을 느끼고 뒤로는 에너지를 받는다. 희한하게도 달님은 나만 따라다니는 것 같아서 더욱 오롯하다.  

달이 나무에 걸리면, 가지 끝에 걸리는 것도 보일 듯 말 듯 가지 사이에 숨는 것도 마른나무여도 푸른 소나무여도 세상 따스워 보인다. 그런데 사진으로 찍으면 아무리 잘 찍어도 무서운 호러물이 되어버린다. 사진은 절대 자연의 온도를 따라갈 수 없다는 걸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게 아쉽기보다는 쌤통인(?) 느낌이라면 너무 고약한가?

둥근달은 둥근달 대로 초승달은 초승달대로 또 반달은 반달대로 심지어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모양이어도 달은 달이고 달 자체로서 추호도 손상되지 않는다. 나도 그러려나... 젊었을 때나 늙었을 때나 밝은 날이나 우울한 날이나 나는 나 자체 일까... 이 당연한 진실을 왜 우리는 의심하는 걸까. 왜 의심하도록 만들어놓은 사회적 장치와 덫에 자꾸 걸리는 걸까? 이렇게 달은 태양과 달리 나를 견주는 일도 쉬워진다.


오늘 같이 달님이 밝으면 더 오래 걷고 싶은데, 추위가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오늘은 이만 들어가자. 내일은 또 내일의 달이 뜨겠지, 충만해진 마음을 여민다.





게으른 창작모임 <쫌> 매거진에 공유하고 있습니다.

https://brunch.co.kr/@53219277c0604d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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