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매우 애정하는 국카스텐의 공연이 있어서 산에 가지 못했다. 토요일에 못 가면 일요일에라도 가면 좋았겠지만 밤늦게 돌아오는 바람에 느지막이 일어났고, 토요일에 가기로 한 산을 일요일에 갈 만큼 성실하고 싶지는 않았다. 크하하하.
어차피 일이 있으면 거를 수도 있다고 예상했는데도 이런 경우 나는 마음에 걸리는 쪼잔한 유형이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나의 쪼잔함을 이겨보려 굳이 안 가는 쪽을 택하는 거다. 그렇다고 한 주 걸렀으니 이번에는 열심히 가자, 이런 마음이 드는 건 아니다. 오히려 좀 더 가기 싫은 마음이 커져서 느리적느리적 길을 나섰다.
남편이 차를 가지고 속리산에 캠핑을 가버려서 더 귀찮았던 것 같다. 남편을 따라 속리산에 가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나는 캠핑까지 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남편은 분명 정상까지 갈 것이고 나는 중간에 내려와야 하는데 모르는 산에서 혼자 움직이는 건 겁나는 일이다. 그렇다고 남편을 나에게 맞춰서 천천히 걷거나 중간에 내려오게 하는 건 안 될 일이다. 성에 안찰 테니까. 부부라도 각자 에너지총량이 달라서 발맞춰 사는 건 참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등산만이 아니라 덕질도 그렇다. 각자의 에너지에 맞는 덕질을 해야 한다. 지난주에 덕친들이 아주 열성적인 사람들을 거론하며, 그 사람 정말 대단하지? 우리는 못 따라가,라는 말을 했다. 나는 열성적인 사람이라고 나보다 덕심이 더 깊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성에 안 차는 거다. 누군가는 락페에서 밤을 꼴딱 새우면서 맨 앞을 고수해야 직성이 풀리고 나는 덕질에 대해 쓰고 또 써야 직성이 풀린다. 남편은 정상에 가야 산에 갔다고 하는 사람이고 나는 산자락만 밟고도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서 산에 갔다고 하는 사람이다.
이거 보시라, 아직 산 입구도 못 갔는데 산에 대해 떠들고 있지 않은가.
어쨌든 버스를 타고 가서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모자도 쓰고 마스크도 쓰고 얼굴을 꽁꽁 싸맸는데도 바람이 꽤 불어서 시작부터 축축 늘어졌다. 한 주 쉬었다고 이렇게 몸이 적응을 못할 수가. 평소에는 산에 오르면서 미리 내려올 곳을 정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이번에는 산 입구에서부터 내려올 곳을 정해버렸다. 삼거리까지만 가자. 대신 거기까지는 쉬지 말고 올라가자.
산은 두 주 사이 빽빽하고 풍성해졌다. 2주 전만 해도 듬성듬성 보이던 마른 가지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넝쿨로 뒤덮였다. 벚나무처럼 보이는데 특이한 꽃이 피었기에 뭔지 궁금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몇 걸음 못 가 다시 그 꽃이 넝쿨로 있는 게 아닌가. 다시 돌아가 나무를 살펴보니 역시 넝쿨이 나무를 타고 올라간 거였다. 으름덩굴이란다.
아마도 원추리인 것 같은데 나뭇가지로 대를 꽂아준 것을 봤다. 집앞 화단도 아니고 산에 있는 꽃에 대를 꽂고 끈으로 묶어두는 다정한 사람은 누구일까. 사람이 싫다가도 이런 걸 보면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작은 꽃들도 만발했다. 제비꽃과 개별꽃은 지천이고 콩제비꽃, 냉이꽃도 이제 내 눈으로 분간이 된다. 꽃도 보이고 잎도 보이고 앉은 태도 보인다. 역시 자세히 보고 자주 보면 알게 되는 거구나.
그런데 정말 눈에 띄고 색도 다른 꽃마리가 있는데 검색을 해도 그저 꽃마리라고 나온다. 꽃마리보다 크고 분홍색 꽃과 보라색 꽃이 같이 피었다. (누가 알면 좀 알려주세요~ 이건 정말 꽃마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특별하지 않나요?)
삼거리에서 잠시 쉬다가 두 번도 고민하지 않고 돌아내려 왔다. 바로 옆 계곡에 벌깨덩굴이 있었다. 초롱 같은 귀한 이름일 줄 알았는데 벌깨덩굴이라는 걸 보면 산에서는 꽤 흔한 꽃인가 보다. 이상하게 나는 덩굴만 보면 일단 마음이 뛴다. 소설 <돌멩이를 치우는 마음>에도 썼듯이 덩굴은 성큼성큼 뛰어서 산의 몸피를 키우는 존재들이라고 느껴진다. 덮고 덮어서 깊이를 만들고 비밀을 숨기는 듯하다. 덩굴이 자라는 걸 따라가다 보면 산의 비밀을 찾아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얼마 못 와 다시 야생동물보호구역에서 쉬었다. 냉이꽃이 만발해 있었다. 지난번에 아주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캐더니 많이는 못 캤나 보다. 이렇게 냉이꽃이 가득한 거 보면. 잠시 쉬었다가 나오는데 앵초가 눈에 띄었다. 냉이꽃밭 가운데 앵초라, 더 곱다.
이번에는 인엽용담을 발견했다. 꽃을 발견했다기보다 커다란 사진기를 든 사람을 발견한 셈이다. 그가 인엽용담을 찍고 있었다. 주변 낙엽을 치워가며 찍는 걸 보고, 혹시나 발로 밟지는 않는지 계속 노려봤다. 주변에 생각보다 많은 인엽용담이 있고, 그럴 정도로 귀한 꽃은 아닌지 몇 개 찍고 바로 갔다. 귀한 꽃이라는 표현을 쓰다니, 너무 싫다. 인간이 멋대로 정한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 같아서.
물가에도 잠시 앉았다. 할아버지 한분이 음악을 켜놓고 졸고 있다. 소리를 끄고 물소리나 새소리를 듣고 싶은데 가실 생각이 없다.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윤슬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그래, 물소리나 음악소리가 좋은 건 똑같지.
문득 봄은 이렇게 좋은데, 왜 자꾸 이 좋은 봄에 죽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시인 엘리엇이 선언했듯 사월에는 죽어간 사람들이 많다. 4.3, 4.16, 419... 요즘도 죽어가는 사람들 뉴스가 너무 많다. 어린 학생이 죽고 청년이 죽고 유명가수가 죽고... <더 글로리>에서 추운 겨울 말고 봄에 죽자고 했다지. 봄에도 죽지 말고, 살자. 죽기에는 햇살이 너무 좋지 않니... 오죽하면 이 좋은 햇살에 죽을 마음을 먹겠냐만, 그래도...
산에 오르는 게 조금 힘들다고 몸보신 생각이 났다. 그래, 나는 이렇게 살뜰하게 나를 챙길 거다. 우리 제발 봄에도 잘 살자. 황사가 심하지만 그래도 틈틈이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보고 초록을 보고 햇살을 쬐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