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아쉽게도

초보 등산러의 엉터리 등산일지

by 천둥

지지난주는 어버이날 행사를 미리 치르느라 산에 가지 못했고, 지난주는 비고 오고 그래서 한의원에 가느라 산에 가지 못했다.

3주 만에 가게 된 산은 아카시나무 세상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주나 지지난주에 고속도로에서도 아카시나무를 많이 보았다. 이팝나무와 구분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환한 흰색 꽃은 이팝나무였고, 갈색을 띤 흰색꽃은 아카시나무였다. 이팝꽃은 위를 향해 활짝 펼쳐져있고 아카시 꽃은 아래를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산에는 이팝나무는 흔적도 없고 아카시나무가 꽃잎을 흩날리고 있었다.

꽃잎과 함께 날리는 버드나무 씨앗. 하얀 솜털처럼 날리는 걸 보고 당연히 꽃가루인 줄 알았는데, 꽃가루가 아니라 버드나무 씨앗이라고 한다. 어쩐지 재채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꽃가루가 아니라고 하니까 봄눈처럼 아름답게 보이기까지 한다. 간사하게도.





특히 넝쿨식물은 손이 닿는 곳마다 휘감아 오르며 산을 온통 덮어버릴 기세다. 칡 으름덩굴 멀꿀은 등나무 계요동 갈퀴나물을 덮치고 다래 박주가리 머루는 으아리 오미자 노박덩굴을 덮쳤다. 어제는 나팔꽃이 인동덩굴을 타고 오르고 내일은 메꽃이 환삼덩굴을 타고 오르지만 누군가를 끌어내리지는 않아 오르는 것들은 하루가 다르게 산의 부피를 키웠다. 밤이면 잠시 꽃을 오므리고 더 높이 디딜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새벽이슬이 몸을 적시는 순간, 곁눈도 주지 않고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향으로, 각자의 길로 뻗어 오른다. 산이 깊어지는 것은 시퍼런 것들이 서로 딛고 오를 몸을 내어주기 때문이다. (<돌멩이를 치우는 마음>, 천둥)



내가 내 책을 인용하는 것은 참 웃기는 일이지만, 덩굴순이 손을 쭉쭉 뻗는 장면을 보면서 이 장면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산은 마음을 내려놓기에 좋다고 하지만 의외로 산은 집념과 집착, 정념과 사념으로 가득하다. 덩굴순은 오로지 손을 뻗는 일념뿐이다. 그 일념의 단순함과 활기가 부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가 결국 경쾌하다. 마찬가지로 작은 돌탑을 쌓은 이들의 무념과 기념이 귀엽기도 하고 벅차기도 하다가 커다란 돌덩이를 보는 순간 결국 안쓰럽다. 그것이 욕심일 것을 알아서 안쓰럽고 그것이 간절함일 것을 알아서 그렇기도 하다. 내게도 그러한 간절함과 욕심이 있을 터인데, 어쩌면 계절은 그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알려준다. 봄이면 나아가야 할 것이고 가을이면 물러나야 할 것이다. 어젯밤 오래 전화통화를 했던 친구와의 이야기도 그러한 것이었다. 친구는 취직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를 고민하고 있었다. 사실 몰아붙일 시기인지 주저앉힐 시기인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묻는다는 것은 그만큼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쭉쭉 뻗어가는 덩쿨손이 과연 좋기만 하겠는가. 놓치는 것이 많겠지만, 그럼에도 여름을 맞아 열심히 뻗어나가야 하는 거다. 나의 계절을 잘 돌아보고 조금 잃고 조금 얻으며 한발 한발 나아가는 수밖에.


은백향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나무가 있다. 아직 이파리가 없었을 무렵부터 지켜봐 왔는데 새순 하나 없는 걸 보니 아무래도 죽은 나무 같았다. 이름이 너무 멋들어져서 어떤 나무인지 알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그런데 오늘 보니 고목 위로 온갖 넝쿨들이 타고 올라서 이름만큼 멋들어진 모습이었다. 누군가의 사념과 일념이 가끔은 무념을 이기지 못하는 것 같아 알 수 없는 위로를 받는다.

꽃마리가 길가에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분명 분홍색이라 카메라를 들이밀었는데 꽃잎이 파란색으로 변했다. 그늘이 져서 그런가 이리저리 빛을 쬐어도 눈으로는 분홍인데 카메라에는 파란색이다. 얼마 전 사진에는 파란색과 분홍색 두 가지 색이 다 잡히길래 꽃마리는 두 가지 색이구나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파랑과 초록도 아니고 분홍과 빨강도 아닌, 파랑과 분홍이라니. 자연의 색이 가진 신비로움인지, 색에 관한 나의 지나친 선입견인지 모르겠다. 또는 카메라라는 기술이 아직 거기까지인지도.

웃기는 의식의 흐름일지도 모르지만, 갑자기 정치현실이 떠오른다. 진보인 듯한데 사실은 보수인 사람은 많은데 보수인 듯하지만 진보인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꽃마리도 분홍인 듯한데 파란색으로 찍히는 경우는 많은데 파랑인 듯한데 분홍인 경우는 잘 없을 것 같다. 검색한 사진이 대부분 파랑인 것을 보면.



등산일지를 몇 주 차나 쓰면서 능선 사진이 하나도 없이 꽃이나 나무 사진뿐인 것은 내가 그만큼 산을 오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로 올라가야 능선이 내려다보이는 사진을 찍을 텐데, 언제나 산 중턱에서 내려와 버리니 산이라 할 사진 한 장이 제대로 없다. 산에까지 와서도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거다. 그렇지만 내게 산은 오르는 곳이 아니라 머무는 곳, 품에 안기는 곳이다. 아무도 없는 산 한가운데 섰을 때, 약간의 새소리와 벌레소리, 뭔가가 꿈틀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내가 산에 있음을 느낀다. 티끌 같은 내가 살아있음을, 먼지처럼 작아도 인식하고 있음을, 오르고 내리는 의지를 가진 존재임을 자각한다.



계곡의 물줄기가 시원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이제 봄이 가고 여름이 오나 보다. 잔잔한 계곡물에 아이들이 풍덩 뛰어드는 걸 상상한다. 노곤해진 발을 담그고 잠시 쉬어 날 여름의 나를 상상한다. 봄날이 가는 걸 아쉬워하기보다 여름이 오는 걸 반가워하고 싶다. 등산과 등산일지 덕분에 올봄은 꽤나 쫀쫀하게 즐겼으니 이만하면 괜찮은 봄날이었다.

여름이 오는 걸 반기기 위해 산행 후 보리밥을 먹으려고 했는데 하필 향우회 사람들이 식당을 점령해 버렸다. 할 수 없이 뜨끈한 추어탕으로 마무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봄을 먹는 방법인 옻순과 미나리를 사 왔다. 내일은 초장에 무쳐 야무지게 봄을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