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늦봄, 궁금해서 반복하는

초보의 엉터리 등산일지

by 천둥

허리를 삐끗했다. 청소기를 콘센트에 꽂으려는 순간, 어 하고 허리가 삐끗했는데 약간 불편하기는 했지만 청소를 다했으니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근데 그게 점점 심해지더니 걷기가 어렵고 앉기가 어려워졌다.

사실 그 전날에도 비슷하게 허리를 삐끗했다. 이번에는 왼쪽인데 그때는 오른쪽이었다. 자고 일어나니 괜찮아져서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는데 밤새 뒤척였고 점점 심해졌다. 결국 한의원 신세. 가능한 걷지 말고 오래 앉지 말란다. 등산 이야기했더니 코웃음, 계단도 안 좋단다. 누워서 양 무릎을 세우고 양옆으로 기울였다 세웠다, 하라는데 신기하게도 그 운동을 하면 삐끗했던 허리가 덜거덕, 하고 맞춰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지난주를 보내고 이번 주 토요일, 걷는 데 무리가 없으니 고민하지 않고 무조건 가기로. 대신 조금이라도 무리스럽다 싶으면 바로 내려오기로 했다.

산에 오르기 전에 확인해 보니 1시에 온다던 비소식이 11시로 당겨졌다. 우산을 들고 갈까 하다가 비가 오면 그냥 맞지, 하고 모자만 챙겨 썼다.


산은 아직 늦봄이었다. 한 주 보지 못하는 새, 데크 사이사이에서 자란 풀이 무성해져서 부숭부숭한 털처럼 귀여웠는데, 풀이 억세지 않은 걸 보니 역시 아직은 여름이 기운이 채 오지 못했다. 여름의 짙푸름이 시작되긴 했지만 봄의 서늘함이 아직 남아있으니 늦봄이다. 칠부 티에 입은 겉옷을 내내 벗지 않아도 될 만큼.

저수지 앞. 얼마 전만 해도 저수지 근처에 오면 시야가 탁 트였는데 이제는 저수지를 가릴 만큼 나무가 풍성해져 있다. 살짝 가리워진(이 아니라 ‘가려진’이 맞지만 감성은 '가리워진'이 맞다고 자꾸만 우긴다) 호수와 숲의 깊이감에 반해 발길을 떼지 못했다. 왜 올라가면서 보는 산이 내려오면서 보는 산보다 아름다울까 궁금했는데, 처음 본 순간의 감각을 두 번째, 즉 내려오면서 다시 느끼기란 쉽지 않은가 보다.

가능한 걷기에만 집중하느라 올라갈 때는 사진을 찍지 않지만, 손이 절로 핸드폰을 열고 이렇게 저렇게 사진을 찍는다. 내 눈에 보이는 이 입체적 공간감각을 담아내지 못하는 사진을 보며 탄식한다. 신이 있다면 이렇게밖에 못 보는 나를 보며 탄식하겠지만.


다시 걷다가 몇 걸음 만에 멈췄다. 노란 붓꽃이다. 전국에 몇 안 되는 솔붓꽃 서식지가 이 산 어딘가에 있다는데 솔붓꽃은 내 눈에 띄지 않았고, 노란 붓꽃이 길가에 환하게 피어있다. 노란 붓꽃도 반가운데 솔붓꽃을 만나면 얼마나 반가울까. 하지만 내가 보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어떤 인간의 눈에도 쉽게 띄지 않기를 바란다. 귀한 솔붓꽃을 보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므로.

또 하나, 재미있는 꽃을 발견했는데 박쥐나무라는 안내판이 붙어있다. 잎과 꽃이 없었을 때부터 눈여겨봤는데, 평범하게 생긴 나무에 왜 굳이 안내판을 붙여놓았을까 궁금했었다. 꽃이 이렇게 독특하구나, 고개 숙여 들여다봤다. 꽃이 특이해서 놀라기도 했지만, 내가 관심 있게 지켜봤던 나무의 절정을 본 것 같아 기분이 남달랐다. 꽃이 핀 것만 봤다면 느껴보지 못했을 기분. 가지만 앙상했던 나무가 잎이 달리고 꽃을 피운 과정을 함께 한 기분. 내가 나무에게 해준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말이다. 마치 1년에 한 번 만나는 먼 친척이 아이고, 네가 이렇게 컸구나, 기특해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산을 오르는 것이 등산이겠지만, 내게는 이런 발견이 등산인 것 같다. 한철을 지켜보며 나무를 발견하고 꽃을 발견하고 변화를 발견하는 즐거움. 그게 없다면 산이 얼마나 밋밋할까. 산에 다니면서 아주 작은 꽃을 발견하고 사진을 찍기 시작한 습관이 산책을 할 때도 이어졌다. 아주 작지만 말도 안 되게 어여쁘다. 그래서 작은 꽃을 보면 궁금해진다.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꽃의 모습이 궁금해지고 이름도 궁금하다. 그런 사진을 찍어 올리다 꽃 사진 인친이 생긴다. 예상치 못한 전개다. 산책길에 그들의 피드에 있던 꽃을 나도 발견하고 사진을 찍고 올리고... 반복한다.

반복한다는 것, 궁금해진다는 것. 내게 또 하나의 의미 있는 놀이가 생긴 거다. 그것이 무엇이든 궁금해서 반복하는 것만큼 삶에 안식을 주는 것이 없는 것 같다. 때로 반복은 그 한계 때문에 지치기도 하지만- 왜 산은 내려올 때보다 올라갈 때 더 좋지? 왜 카메라에는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담아내지 못하지? 이런 생각은 예전에도 했던 생각들이다. 이것뿐이겠는가. 일기장을 들춰보면 1년 전에 했던 생각을 10년 전에도 하고 지금도 하고 계속 반복한다. 왜 나의 사고는 맨날 거기서만 맴돌까, 자괴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또 반복이 주는 재미가 삶의 활력이 된다. 산은 다음 주에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궁금하다. 나는 또 산을 오르는 행위를 반복할 것이다.



이번에는 국수나무 꽃길이 눈앞에 펼쳐져있다. 벚꽃 길 못지않다. 이팝나무 꽃잎과 아카시아 꽃잎이 휘날리고, 지지난 주에는 버드나무 꽃씨가 눈처럼 뽀얗게 덮여있더니 이번에는 국수나무 꽃잎이라니. 말 그대로 꽃길을 걷는다. 이렇게 작고 어여쁜 것들을 즈려밟으면서 더 좋은 꽃길을 욕심낸다. 잊지 말아야지, 나는 이미 꽃길을 걷고 있다는 걸 잊지 말고 지금 행복해야지.


구름다리 건너 삼거리에서 잠시 쉬었다. 허리가 뻐근해서 바로 내려오기 시작해 데크로드로 접어들었다. 저수지를 바라보며 아들과 엄마로 보이는 이들이 앉아있다. 캠핑의자까지 챙겨 온 걸 보면 작정하고 힐링의 시간을 갖기로 했나 보다. 작게 음악까지 흐른다. 옆에 있던 할머니와 손자가 과자를 먹다가 가고, 잠시 조용히 음악에 귀를 기울이나 했는데 이번에는 할아버지와 두 손자가 왔다. 아까 계곡에서 무언가를 잡던 이들이다. 어린 손자가 잠시도 쉬지 않고 종알거렸다. 음악보다 반가운 아이의 목소리. 무얼 잡았냐고 물어보니 물고기를 잡았는데 조~기 가서 놓아줄 거라고 할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따라 답한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아이에게 말을 걸어본 것 같다. 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아이와의 대화가 주는 에너지를 양분 삼아 산을 마저 내려왔다. 호수 위로 비가 살짝 흩뿌려진다. 아직은 물 위에 작은 동심원조차 만들지 못하지만 이제 장마철 시작이다. 아니 우기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