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 어디까지 해봤니 2

<페터 비에리의 교양수업>으로 보는 덕후 생활 고찰

by 천둥
교양인이란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만의 방향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방향성에는 어떤 가치가 있을까요? "아는 것이 힘이다" 교양의 개념을 대표하고 있는 이 말에는 자신이 가진 지식으로 남을 지배하라는 뜻은 없습니다. 지식의 힘은 다른 데 있습니다. 지식은 희생자가 되는 것을 막아줍니다. 뭔가를 알고 있는 사람은 불빛이 반짝거리는 곳으로 무작정 홀릴 위험이 적고 다른 사람들이 그를 이익 추구의 도구로 이용하려고 할 때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 14p


페터 비에리가 말하는 방향성, 그리고 가치에는 자신을 지키고 시민으로서 자신이 지켜주어야 할 것을 지켜줄 수도 있어야 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지켜준다는 말은 타자성을 가지고 있는 듯하지만 그것도 실상 자신을 위한 일이다. 왜냐면 지켜주지 않으면 이후에 내가 받을 수 있는 혜택이 그만큼 없을 테니까 말이다. 적어도 덕후인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인디밴드 공연을 보면서 우리나라 음악산업에 대한 문제점이 크게 와 닿았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열악할 수가 있나. 내 덕주도 그런 시절을 보내야만 했었다.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어 항상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배고프게 살아야 했다. 라면을 끓여먹고 국물을 냉동실에 얼려두었다가 먹기도 했다는 에피소드는 그들만의 것이 아닐 터이다. 가장 힘든 것은 마음껏 음악을 할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원하는 악기를 사고 녹음을 하고 앨범을 만드는 과정을 제대로 못하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 가장 컸으리라. 오래전 인터뷰 영상을 보면 한 달에 50만 원을 받는데, 기름 값하고(밴드는 장비가 너무 크고 많기 때문에 차가 꼭 있어야 한다.) 연습실 사용료 내고 나면 라면 먹을 돈도 없다고 했었다.

인디밴드의 등용문이라고 하는 헬로 루키 상을 받았을 때도, 그 당시 그들은 홍대에서 이미 아이돌급이었는데 수상 소감으로 상금이 생겨 다행이라고, 앨범 시디는 만들었는데 앨범 재킷을 인쇄할 돈이 없어 기도만 하고 있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내 덕주는 다행히 유명해졌다. 하지만 아직도 앨범을 새로 낼 때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자신의 음악적 신념을 위해서도 싸워야 한다.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으로 유명해지고 나서 소속사가 대중적인 음악을 할 것을 강요하는 바람에 소송까지 해야 했다. 지금도 그들은 소속사와 계약을 할 때, 혹여 법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꼼꼼히 체크하고 공부한다. 누군가는 이익을 위해 그러하겠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음악적 신념을 훼손당하지 않기 위해서 지식을 쌓는다.


수많은 어린 국카스텐, 인디뮤지션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어느 날, 공연을 축하하는 화환을 각종 커뮤니티에서 보낸 것을 보면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각종 커뮤니티의 축하화환은 팬들이 십시일반 정성을 모은 것이다. 화환에 넣을 문구 하나하나도 회원들이 몇 날 며칠을 고심해서 내온 것이다. 그런데 정작 축하 화환은 대부분 쌀 화환과 연탄 화환으로 한다. 쌀이나 연탄을 어려운 이들에게 기증하는 것이다. 어려운 이들에게 쌀과 연탄을 주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이왕이면 인디밴드, 후배 가수들을 후원하는 화환을 만들면 어떨까.


내 아이디어를 실현할 방도를 찾다가 우연히 3000원 닷컴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덕후들이 덕주에게 월 3000원씩 월급을 주자, 라는 콘셉트의 사이트이다. 예술인들이 사이트에 등록을 하면 그를 후원하는 사람들이 월정액을 내는 방식이다.

이 회사를 만든 대표의 인터뷰를 찾아보니 그도 누군가의 덕후였다고 한다. 어느 날 덕통 사고를 당했는데, 그날의 공연이 마지막 공연이었다는 것이다. 아니, 오늘 덕통 사고를 당했는데 이제 다시는 들을 수 없다니. 그때 결심했다고 한다. 내 덕주는 내가 살리자, 예술인들이 지속 가능한 예술을 할 수 있게 우리가 도와주자. 그의 실행력이라면 내가 생각한 아이디어도 실현시켜줄 것 같았다. 그 회사로 기획서를 가지고 갔다.


불행히도 그들은 아직 기반을 다지는 중이었다. 더구나 내가 아무런 능력이 없는 걸 알고(하다못해 내가 커뮤니티의 스텝이라도 되어서 공연 시 화환 보내기를 시도해볼 수 있는 위치라면 모르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낯선 상암동 거리를 방황하며 머리만 박다가 돌아왔다.

기획 컨설턴트인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다. 남편은 프로골퍼들이 홀인원을 하면 후원기업이 사회에 일정 금액을 기부하는 문화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기부금이 어려운 소년소녀 골퍼들에게 갈 수 있도록 지정하는지는 모르겠단다. 게다가 팬들이 하는 기부라니. 팬들이 손쉽게 기부금을 전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어서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그때 카카오페이가 있었더라면 이 문제는 손쉽게 해결되었을 텐데, 아쉽다. 물론 그랬다면 내 아이디어는 카카오의 것이 되어버렸겠지만 말이다.

결국 현실화되지는 못했지만, 상상을 하고 실현을 위한 여러 가지 도전의 과정이 있었으니 됐다. 배우고 얻은 것이 많다. 덕주를 통해 생각지 못한 사회의 단면을 보게 될 기회를 가졌고, 작은 힘이나마 보태려는 시도를 했으니까 말이다.

굳이 실현되지 못한 아이디어를 글로 남기는 이유는 지금이라도 누군가가 이 글을 보고 실현시켜주면 좋겠다는 기대를 아직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양이 튼튼한 사람은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그 안에서 더 큰 것을 감지할 줄 알며 회유책 또는 문제를 축소하려는 그 어떤 시도에도 넘어가지 않습니다. 42p


얼마 전 논산에서 공연을 봤는데, 사전 공연으로 지역 음악인들이 나왔다. 아직 아마추어이거나, 프로일지라도 공연할 기회가 많지 않은 지역 예술인들에게 그런 기회를 주는 것은 굉장히 바람직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의외로 내 지역을 대표할만한 예술인이 지역 공연에 나오는 경우가 많지 않다. 지역에서 많은 축제가 있지만 서울에서 대형가수를 모셔오는 데만 급급하다. 덕분에 우리 덕주들의 공연을 자주 볼 수 있지만 말이다.

지역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하지 않는가. 지역을 대표하는 공연장, 지역을 대표하는 예술인, 지역을 대표하는 서점,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중심지가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하긴 국카스텐 멤버 모두가 안산에 살고 있는데도 안산에서 하는 공연에 우리 덕주들이 나올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안산시는 각성하라, 아니 안산의 자랑, 국카스텐을 꼭 불러주세요~~ 맨날 안산 좋다고 자랑하는 국카스텐, 나 같으면 부르겠다!!!

여전히 나는 꿈을 꾼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예술인들을 위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고. 예술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경제적인 힘도 없지만, 지역에서 하는 작은 공연만큼은 꼭 챙겨서 보려고 애쓴다.

제주도에 공연을 보러 갔을 때 이중섭기념관을 보게 되었다. 작은 메모와 아내와 주고받았던 손 편지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국카스텐도 그런 기념관이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다. 돈을 많이 벌면 좋겠다는 생각을 난생처음 해봤다. 얼마 전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윤세리가 세계적인 음악재단을 만들어 리정혁을 만나는 것을 보면서, 그녀가 퀸즈그룹의 회장이 된 것보다 음악재단을 세운 것이 더 부러웠다.


그 외에도, 덕친의 그림으로 컬러링 북을 만들고 싶었고 덕주의 노래를 다양하게 해석한 책도 내고 싶었다. 어떤 것은 덕주 측에서 반대를 했고 어떤 것은 출판사에서 받아주지 않아서 포기했다. 이러니 아직 미련이 많지.

이런 시도가 교양을 쌓는 일과는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스스로 충만해질 때 더 큰 것이 감지되고 그것을 시도하게 된다. 스스로를 위해 또는 세상을 위해 유의미한 존재가 되려고 애쓰게 된다. 그런 시도는 시도만으로도 가치롭지 않을까.

우리는 교양을 방해하는 온갖 것들을 대하는 한 사람의 태도를 보고 그가 교양인인지 아닌지를 식별할 수 있습니다. 교양이 있는 자의 태도는 뜨뜻미지근하지 않습니다. 방향성, 깨어있음, 자아인식, 상상 능력, 자기 결정, 내적 자유, 도덕적 감수성, 예술 행복 등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아우르기 때문입니다. 교양에는 관용적 태도가 매우 중요한 요소로 포함되기는 하지만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방해물이나 냉소적 소홀함 같은 것들 앞에선 그 어떤 관용도 봐줌도 없습니다. 41p


얼마 전, 조기현 작가가 쓴 <아빠의 아빠가 됐다>라는 책을 읽었다. 스무 살에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게 된 이야기이다. 그동안 이런 이야기들은 뻔한 효행으로 이어져 측은하고 기특한 눈길을 받는 것으로 끝났었다. 하지만 조기현 작가는 개인의 이야기가 개인의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자신과 아버지를 해석해보려 애썼고, 그 결과 시민으로서의 시선을 건져내고 사회의 역할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조기현 작가의 자기 삶에 대한 끈질긴 해석과 시도를 나도 덕질에서 놓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굳이 여기서 얼마 전 봉준호 감독이 이야기한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말을 끄집어내지 않더라도, 개인적인 경험이 가장 창의적이고 사회적인 방향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방향성이 있고 깨어있고 상상력이 있다면, 문제점을 찾아내거나 대안을 제시하거나 뭐라도 시도해보거나 하는 거다.

국카스텐의 노래 중에 <프레임>이라는 곡이 있다. '보고 또 바라봐도 깨진 눈으로도 빚었던' 수많은 '추방당한 아름다움'은 우리가 외면하거나 바라봐주지 않던 것들이며 '구겨 넣어 틀에 맞춰진 날 보는 나의' 시선을 돌려 '흔들리고 흔들리고 흔들어 날 깨뜨려'서 새로운 생명,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자는 노래이다. 항상 '같은 자리를 돌았던' 내 모습에서 벗어나 '너무 많이 버려진 살아있던 어린 독백들'이 '날 깨물어' 살아 움직이기를, 움직여 흔들어대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언어는 우리를 생각하는 존재들로 이뤄진 공동체로 만듭니다. 50p


생각하라. 덕질처럼 뜨거운 경험을 그대로 흘려보내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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