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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Jul 25. 2023

오늘밤이 고비라는 소식

시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메멘토모리

시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살면서 처음 겪는 장례식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야 그저 손님처럼 다니러 갔지 아무것도 한 게 없다. 이 나이 먹도록 장례를 처음 치렀다는 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처음이라 그런지 모든 과정이 다 내게는 놀라웠고 기막혔다. 이토록 허무한 인간의 삶과 죽음을 거창하게 예법을 만들어 존엄하게 기리도록 한 선조들의 노력이 진심으로 가상하다.

평소 가족이란 허울 좋은 제도에 대해 매우 비관적으로 생각했는데, 그 또한 하찮고도 취약한 한 개인을 그나마 인간으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의지하고 살도록 만들어진 제도라는 것을 조금은 알겠다.   

   

아버님을 보내드린 과정이 남다를 것은 없었다. 하지만 지극히 평범한 과정이었기에 오히려 돌아볼 여지가 더 많은 것 같다. 무엇보다 얼마 전에 쓴 유언장을 다시 손보기 위해서라도 기록하려 한다. 유언장은 매해 업그레이드 할 예정인데, 메멘토모리- 죽음을 잊지 않고 오늘을 살기 위해 쓴다.  


  



오늘밤이 고비라는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마침 남편이 술자리 중이어서 내가 운전을 해야 했다. 세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달려가는 동안 나는 남편에게 어떤 위로를 해야 할지 고민했다. 지나고 보면 내가 남편을 위로할 처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아들이니까 아무래도 나보다 마음이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친밀감으로 보자면 결코 남편보다 내가 뒤지지 않더라.  


우리는 말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남편이 라디오를 틀어놓았는데 애절한 사랑노래가 계속 흘러나왔다. 한쪽귀로 듣고 한쪽귀로 흘리곤 하던 음악이 그날따라 몹시 거슬렸다. 기어이 나는 으아아, 소리 지르며 당장 다른 걸로 틀어달라고 했다. 난 알앤비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우는 목소리는 참을 수 없다. 남편이 돌린 채널에서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나는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역시 록이야, 하면서.      

굳이 음악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만큼 내가 날이 서있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평소라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음악의 종류와 목소리가 나의 감정상태를 가감 없이 드러내주었다. 4년간을 누워계셨지만,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하기는 했지만 너무 급작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노인들은 밤새안녕이라더니 정말 그렇다는 걸 실감했다.

   


도착한 시간이 밤 10시. 가족들이 병동 로비에서 기다리고 세 개의 출입증으로 돌아가며 병실에 다녀왔다. 임종이 임박한 사람들에게만 그 시간에도 면회를 허용했다.

서둘러 병실에 가서 막내 왔어요,라고 말을 건넸지만 아무런 답이 없다.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지금껏 내가 보지 못한 아주 괴로운 표정이었다. 가래 때문에 끼운 장치와 콧줄 때문이었을 거다. 아버님은 아픈 걸 참지 못하고 엄살도 심한 분이다. 콧줄을 끼우면서 얼마나 아팠을까. 의식이 없어도 아프지 않을 리 없지 않은가. 더구나 무의식적으로 콧줄을 빼버릴까 봐 손목을 묶어두기까지 했으니.  


사실 그 기구들은 굉장히 낯익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의식을 잃은 환자나 중환자들은 대부분 그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버님처럼 괴로운 표정까지 화면에 나오지는 않기에 그동안 나는 한 번도 그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생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곁에 있는 보호자들에게 감정이입을 했던 것 같다. 그동안 병원 경험이 없었던 게 아니다. 내가 아파서 입원했던 적도 있고 가족들이 병원에 있었던 적도 많다. 하지만 그때는 언제나 완쾌를 전제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병원에서 완쾌가 웬 말이냐 싶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만큼 삶으로 축이 기울어있었고 지금은 그 반대다. 고통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당사자의 몫. 그 무게에 압도되어 나는 아버님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무거운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겨우 몇 분 만에 우리의 면회는 끝났다. 그동안 같이 사는 누님이 주로 아버님을 보살폈고 가까이 사는 아주버님이 며칠째 아버님 곁을 지키고 있었지만, 밤이면 보호자들도 돌아가야 하는 간호병동이어서 우리는 일단 본가로 돌아가기로 했다. 마지막 인사를 했으니 됐다는 말과 함께.  병실을 나오면서 그제야 주변을 돌아봤다. 4인실이었는데, 베드 하나는 비어있고, 두 분의 환자가 있었다. 어쩌면 저분들이 우리 아버님의 마지막을 지켜보겠구나. 돌아 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목례를 했다. 우리 아버님을 잘 지켜봐 달라는 간곡한 부탁과 환자에게 타인의 죽음을 지켜보게 하는 미안함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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