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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Jul 26. 2023

운명하셨습니다...

시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메멘토모리

아버님은 맥박도 호흡도 낮은 정상수치를 회복했지만 병원에서는 대기하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날 이후로 다시 면회도 정해진 날짜에만 가능했기에 다시 뵐 수도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아침을 먹으며 장례를 어떻게 할 것인가 회의를 하고 점심을 먹으며 장지를 알아보고 저녁을 먹으며 오늘도 무사히 견디고 계신 아버님을 잠시 떠올렸다. 다음날은 각자 전화로 회사 일을 보고 급한 일을 처리하고 미뤄두었던 서류를 들췄다. 다음날도 마찬가지.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 나는 예정된 강의를 취소할 것인가 말 것인가 망설이다 결국 취소했다. 조금씩 지쳤고 미룰 수 없는 일들을 언제까지 미뤄야 할지 몰라 답답해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한 번에 가시지 않는다고들 했다. 다들 몇 번의 위기를 맞이했다고 했다. 그래, 어쩌면 다시 좋아질지도 몰라.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리가 없잖아. 우리는 처음이니까 앞으로 삼세번은 남았을 거야. 조금씩 마음이 느슨해졌다.


만일 사전연명치료의향서를 내지 않았다면 지금도 매 순간 어떤 결정을 내려야만 했을 것이다. 어떤 치료를 더할지 말지, 그것이 아버님이 바라는 일일지, 우리의 도리는 어디까지일지, 어디까지 솔직해도 될지. 세 명의 자식들과 며느리들은 서로 다른 의견과 입장으로 촉각을 세웠을 것이다. 누님 말에 의하면 의료진의 눈빛에 불효자를 바라보는 듯한 비난기가 담겨있었다고 한다. 사실이 아니라 누님의 마음이 그렇게 복잡했다는 거겠지. 그럼에도 우리가 할 일은 당사자의 뜻을 지키는 것. 결국 기다리는 것.       


조금씩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고 우리도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집에 가기 전 남편과 둘이 면회를 했다. 아버님은 전과 달리 눈을 번쩍 뜨고 있었는데 동공에 초점이 없고 깜빡이지도 않았다. 호스 때문에 입을 벌리고 있는데 눈까지 뜨고 있다니. 건조할 것 같아 눈을 감겨드리고 싶어도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건 우리가 아는 그 동작이므로. 간호사가 거즈로 가려주겠다고 했다.

마지막까지 귀는 열려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실이든 아니든 할 수 있는 건 마음을 전하는 것뿐. 하지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물티슈로 얼굴을 닦고 손을 닦고 발을 닦는 수밖에. 그런데 아버님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눈을 그렇게 뜨고 있으니 당연히 눈이 시어서라도 눈물이 나겠지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또 나대로 해석한다. 그러지 않을 도리가 없지 않은가. 우리가 타인을 어찌 알겠는가. 말을 해도 다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말하지 않는데. 살면서도 내내 그렇게 각자 해석하고 가면서도 각자에게 그 해석을 맡길 수밖에 없는 무력함이라니. 그럼에도 소통을 원하고 공감을 바라며 오직 거기서 서로 연결된다. 손이 떨렸다. 어떻게 돌아섰는지 모르겠다...

          

다시 록음악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일렉기타로 고막을 찢고 베이스로 심장을 두들겨팼다. 정신이 바짝 차려졌다. 드럼이 비트를 쪼갤 때마다 내적 불안도 쪼개졌다. 언제 불려 갈지 모른다는 불안은 아니었다. 오히려 꽤 긴 시간이 걸릴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다음날 바로 연락이 왔다. 맥박이 좋아 않아 처치실로 이동 중이라고. 허둥거리는 사이 다시 연락이 왔다. 운명하셨습니다... 그렇게나 다급하게, 그렇게나 서둘러. 밤 11시 54분.   


물리학자 김상욱 님은 "죽음이라는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잠시 생명이라는 불안정한 상태에 머무는 것"일지 모른다며 "죽음은 이상한 사건이 아니라 생명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했다. 기적같은 찰나의 시간을 살고 있는 내가 그 자연스러운 흩어짐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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