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둥 Jul 27. 2023

상복을 입고

시아버님의 장례를 치르며, 메멘토모리

빈소로 갈 줄 알았는데 집으로 오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 밤에 뭐 하러 밟았을까, 허무한 마음으로 각자의 잠자리로 갔다. 하지만 잠이 들 리가 없다. 하얀 시트에 누워있는 아버님을 향해 오열을 해야 실감이 날 텐데 달랑 문자 하나로 한 존재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임종을 보신 다른 가족들은 어떤 마음일지, 나는 알 수 없다. 

왜 하얗게 밤을 새웠다고 표현하는지 알 것 같은 밤을 보내고, 다음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아직 살아계실 때 형제들이 장례식장에 대해 이러고저러고 회의라는 걸 한 덕분에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지난밤에 돌아가셨으니 3일장을 치르면 내일이 발인이지만, 준비가 너무 덜 된 관계로 4일장을 치르기로 했다. 

사실 여기서 나는 조금 다른 마음이 있었다. 아버님이 가시는 길에 주신 사랑을 남편이 막네, 뭐 이런 거다. 가시는 분이 언제 가시겠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몸 약한 며느리를 배려해 주셨구나 하는 감사한 마음이었다. 남편은 문상하시는 분들도 배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글쎄...     


아직 아무것도 차려지지 않은 빈소. 그 앞에서 상조회사 직원과 마주 앉았다. 수시로 장례식장 직원도 와서 자꾸 물었다. 음식은 뭘로 할 건지, 제사상은 어떻게 차릴 건지, 수의는 어떻게 할 건지 등등. 상조회사 직원이 슬쩍 빼도 될 것들을 짚어주었다. 우리는 운이 좋구나, 순간 생각했다. 그때부터 모든 게 아버님이 잘 이끌어 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그곳에서 만난 인연들은 모두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장례를 치르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고충들을 조금도 경험하지 않았다. 장례지도사는 경건했고 염하는 분의 손길에서는 정성이 느껴졌고 화장하는 분의 깍듯한 목례도 엄숙했다. 그 외,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화장실을 고치러 와준 직원분까지 점잖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죽음의 과정을 관장하는(?) 이들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다. 그런 직업은 상상도 하지 않고 살았다. 최근에 주목을 받은 책, <죽은 자의 집청소>가 전부였다.      


이제 부고를 알려야 한다. 그것도 상조회사에서 알려줬다. 각자의 계좌를 넣은 온라인 부고장. 그런데 참 멋대가리 없다. 부고 전문기자가 쓴 책도 나오는 판에 똑같은 내용과 계좌를 넣는 방식의 부고라니. 버나드 쇼처럼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정도의 명문은 아니어도 고인의 삶이 한 줄이라도 담을 수 있다면 좋을 것을. 진짜 우물쭈물하다 나도 똑같은 부고장이 날아가지 않도록 미리 고민해 두어야겠다. 

어쨌든 지금은 이걸 누군가에게 알려야 한다. 나는 누구에게 알릴지 고민이 되었다. 내 부모상이라면 당연히 내 주변인들에게 알리겠지만 시부상은 아무래도 어렵다. 어디까지 시아버님의 부고를 알려야 하는 걸까. 남편과 나는 동기동창. 남편이 알아서 거의 다 할 것이고, 그럼에도 내 쪽에서 알려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게 누굴까. 

일단 친정. 여기서부터 걸렸다. 나는 반대하는 결혼을 한 처지라 여태 한 번도 사돈끼리 만난 적이 없다. 부고를 알리는 게 맞을까 고민스러웠다. 우선 언니에게 물었더니 그냥 가족 톡방에 올리라고 했다. 오고 안 오고는 그들의 몫이고, 원래 부조는 가신 분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은 사람의 체면을 위한 거라며. 그렇구나. 가신 분을 잘 보내드리는 것도 어쩌면 남은 자들을 위한 것이지. 

나를 위한 것이라면, 내게 무슨 일이 있다고 할 때 꼭 와줄 사람을 꼽아야 할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아무리 절친해도 남편을 전혀 모른다면(그럴 개연성은 떨어지지만) 부르기 어렵다. 역시 남편을 아는 사람 중에서 내가 알리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어야 한다. 다행히(?) 많지는 않았다. 


상복이 왔다. 남자들은 완장을 두르고 여자들은 머리에 리본을 달았다. 

작가의 이전글 빈소에 앉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