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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Jul 31. 2023

주검 앞에서

시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메멘토모리

입관식을 했다.

이제야 아버님을 뵙는 거다. 돌아가셨다는 말만 전해 들었지 지난번 병원에서 뵌 이후로 한 번도 아버님을 뵙지 못하고 장례식만 치르고 있었던 셈이다.

주검을 본다는 것. 슬픔 이전에 조금 겁이 났다. 가까운 이들의 주검을 보고 절대 보지 마라,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얘기들을 들은 적이 있다. 나이 들면서 점점 겁이 많아지고 있어 더 마음이 졸아들었다. 그런데 괜한 걱정이었다. 주검은 맞지만 주검이 아니라 가족일 뿐이었다. 가족이 멈춰 선 모습을 보니 드디어 진짜 눈물이 났다.


이 글을 쓰면서 내내 생각했다. 내가 너무 냉정한 사람인가. 아버님의 죽음을 글의 소재로 쓰다니, 이래도 되는 걸까. 어쩌면 시아버지니까 이렇게 쓸 수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지울 수 없었다. 만일 더 가까운 가족이라면? 누구라고 예를 들어 쓰기도 어려운 지경인 걸 보면 분명 그런 면도 있겠지. 이토록 자세한 글은 망자에 대한 도리가 아닌 거 아닐까... 어쨌든 나는 입관식 하는 내내 울었지만, 정신은 말짱했고 그날의 순간순간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럼에도 나는 장례식을 치르는 내내 마음속으로 글을 쓰고 있었다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노트북이 있었다면 그날 밤이라도 썼을 것이다. 그러니까, 타인의 죽음을 소재로 삼는 게 아니라 나는 이제 모든 삶의 순간들을 글이라는 필터로 는 사람이 된 거다. 글을 쓰면서 마음을 정리하기도 하고 한 시절을 정리하기도 하고 순간을 기억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영영 추모하기도 하는 거다. 그뿐이다.


아버님은 한 조각 나무토막처럼 보였다. 그렇게도 건장하던 몸이 한순간에 곧 바스러질 듯했다. 풍화의 시작. 생이라는 게 이렇게 종잇장 뒤집듯 죽음으로 변한다는 게 허탈하고 허망했다. 슬픔보다는 허망함이었다.

장례지도사들은 어머님이 벌써 수십 년 전에 준비한 수의를 입히고 그 위를 다시 단단하게 감쌌다. 흰 천을 돌리면서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모습을 보자, 조심스럽기도 하고 힘이 들기도 해서 그랬겠지만 알 수 없는 위로가 되었다.

관 주변을 연꽃으로 꾸몄고, 그 위에 편히 가시라는 진언이 담긴 종이로 덮었다. 상조회 직원이 첫날부터 계속 종이로 연꽃을 만들고 있기에 뭘 하는 걸까 궁금했는데, 손수 만들어 보내드리고 싶어서 그랬단다. 그런 건 줄 알았으면 식구들이 하나씩이라도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아쉽지만 부질없다. 아버님께 드리는 편지를 쓰라고 해서 급히 몇 자 적었는데 그것도 관 속에 넣어드렸다.  

상조회 직원은 과정 하나하나를 설명하기도 하고 눈물 닦을 티슈를 각자의 손에 쥐어주기도 했다. 아까 화장실에서 손 닦는 종이타월을 접고 있었던 게 얼핏 기억이 났다. 세심하게 준비된 과정이 부담스럽지 않고 과하지도 않고 적당했다.  


입관식을 마치고 나오자 상조회 직원은 바로 화장실에 가서 머리 위로 물 몇 방울을 뿌리라고 했다. 영령이 붙지 않게 하는 의식이라고 했다. 우리는 여전히 눈물바람인 상태로 머리 위에 물을 뿌리기 위해 손가락을 튕겼다. 조금 전의 입관식장과 화장실의 조가 같다는 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똑같은 사람들이 아직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있는데 왜 이토록 생생하게 활기가 넘치는 건지. 살아있으니 당연한 생기를 괜히 감춰보려고 애썼다.

나는 잠시 장례식장 밖으로 나왔다. 머리 위에 뿌린 물 몇 방울로는 끈적거리며 달라붙는 망상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장례식장은 왜 모두 지하에 있는 건지, 계단 몇 개를 올라왔을 뿐인데 여기가 내 현생이라니, 오랜만에 동굴에서 나온 사람처럼 생경한 풍경에 멈칫했다. 버스와 자동차들이 어지러이 움직이고 있었고, 건물들 사이로 검붉은 노을이 지는데 장관이었다. 대단한 장관이라기보다는 일상이라는 장관 말이다.  한 존재를 잃고도 세상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어진다.

과연 조금 전의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생과 사가 너무 아무것도 아니어서 관례라는 것을 만들었구나, 고개가 끄덕여졌다. 삶의 하찮음을 관례로 덮으려 했구나. 관례라면 고개를 젓던 내가 조상님들의 지혜라고 끄덕이게 되었다. 

  

잠시 후, 저녁에 온 내 손님과 헤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했다. 이제야 이 집 며느리가 된 기분이야. 아니, 더 이상 빼도 박도 못 하게 이 집 사람이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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