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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Aug 03. 2023

모실 곳

시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메멘토모리

장지를 결정해야 했다. 선산에 가묘가 있지만 살아생전 아버님은 그곳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어머님이나 누님도 멀지 않은 곳으로 정하자고 해서 납골당이나 수목장을 알아보았다. 사실 우리는 돌아가시기 전에도 이에 대한 의논을 했는데, 서둘러 어딘가를 정하지 말고 우선 49재까지 절에 모셔두면서 천천히 마음에 드는 곳을 알아보고 싶었다. 어디든 한번 모시면 다시 옮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마침 이모님이 가까운 절의 스님이어서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절에서는 유골함을 보관할 수없단다. 연세도 있으신데 미리미리 알아보지 못한 건 우리 잘못이지만, 죽음이라는 게 언제나 그렇게 준비될 수만은 없는 건데 잠시잠깐 보관해 주는 곳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다행히 화장터는 가까운 곳에 예약할 수 있었다. 역시 아버님이 좋은 데 가셨나 보다, 우리가 운이 좋다, 를 반복해서 되뇌었다. 


상조회에서 주변의 장지를 여러 군데 소개해주었다. 한 직원이 팸플릿을 들고 찾아왔는데, 방법은 총 세 가지였다. 납골당, 수목장, 해양장. 

해양장은 처음 들은 건데, 인천 바다 어드메(바다 아무 데나 뿌리는 게 아니라 법으로 정해진 곳이 있단다)에 가서 화장한 유골을 뿌리는 거였다. 참 이상도 하지. 분명 뼛가루를 만들어주는 건데, 흙이 되고 먼지가 될 텐데 왜 집 정원이나 바다나 강에 뿌리면 안 되는 걸까. 이것도 돈이 되기 때문일까. 아니면 일종의 카르텔일까. 죽음까지도 자본화시켜 주는 세상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나는 딱 마음에 들었는데, 누님이 대번에 반대했다. 언제든 찾아뵐 수 있는 곳에 모시기를 바랐다. 일단 패스. 

납골당은 내가 반대했다. 요양원에 계시면서 내내 건물 속에 갇혀있었는데 또 조그만 서랍 속에 갇히길 바라지 않을 것 같았다. 

남은 건 수목장. 나는 수목장이 적당할 것 같았다.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나 가족들이 아버님을 추모하러 손쉽게 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나는 숲을 상상했다. 산일 수도 있고 숲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울창한 나무들이 있고 그중의 하나를 골라 아버님의 유골을 뿌리고 그 나무를 우리가 보살피는 상상. 그런데 팸플릿에는 내가 생각하는 수목장의 그림은 전혀 없었다. 비용에 따라 다르지만 어쨌든 1미터 남짓의 나무라고만 했다. 아무래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서 결정을 못하고 망연자실해 있는데, 고맙게도 직원이 화장한 당일에 가서 직접 보고 결정해도 된다고 해서 그러기로 했다. 


또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었는데, 바로 운구할 사람이었다. 자손이라고는 우리 애 둘, 조카 둘이다. 보통 영정사진은 상주가 들지만, 운구는 상주의 친구들이 드는 거란다. 상조회 직원은 아들들과 조카에게 친구들을 구해보라고 하면서 여조카는 제외했다. 나는 따로 직원을 불러 모든 상황에서 여조카를 제외하지 마시라고 부탁했다. 그 직원이 모든 제사의 진행도 맡아서 하는데, 행여라도 여조카를 제외하거나 뒷순위로 놓는 건 원치 않았다. 아버님이 제일 아끼던 손녀이고, 요즘 시대에 딸이라고 예외일 필요는 없다고 했더니, 바로 알아들었다. 여자조카에게도 슬쩍 가서 ‘네가 원한다면’이라는 조건을 달고는 뭐든 빼지 말고 하라고, 할아버지도 그걸 원할 거라고 말했다. 조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조카의 남자친구가 운구를 하게 되면서 그 자리를 대신했다...

아들의 친구들이 운구를 하겠다고 선뜻 나서주었다. 전날부터 새벽까지 꼬박 시간을 내야 하는 일임에도 마음을 내어준 친구들이 고마웠다. 아마 앞으로 우리 아이들도 주저 않고 나서주겠지. 무사히 운구문제를 해결했는데, 나중에 언니가 그 말을 듣고 내게 말했다. 네가 어깨 좀 폈겠네. 그런가. 그런 일이 어깨를 펴는 일인가. 언니는 자식이 없다...


이제 한숨 돌리려는데, 상조회 직원이 다가왔다.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환한 미소를 가득 띤 채, 상조보험을 들어달라고 했다. 헐~ 그동안 세심하게 모든 것을 살펴주어서 마음으로 의지가 되었는데, 이름을 알아두었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를 해주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는데, 갑자기 영업이라니. 조심스럽지만 완곡하게 곤란함을 표했는데도 아주 끈덕지게 물고 늘어졌다. 이미 상조보험이 있을 테니 크루즈 여행보험을 들란다. 하긴 상조보험이야 들었으니 여기서 만났을 테고, 그렇다면 아예 다른 니즈를 담은 상품은 어떠냐는 심산이다. 정말 곤란했다. 3일 동안 있으면서 계약 하나 못하고 가면 혼난다는 말까지 하는데,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그의 상사가 원망스러웠다. 사람들이 이런 쪽으로 약한 줄 알고 공략하는 거겠지. 

실적이 뭔지, 이렇게까지 영업을 해야 하는 건지, 3일 내내 고마운 마음을 갖게 하고 황망한 순간에 믿고 의지하던 사람에게 영업을 당하는 기분은 인간적으로 너무 고약했다. 그 직원은 나보다 더 고약한 기분이겠지. 3일에 한 번씩 그 기분을 느껴야 하니. 아니, 이제 익숙해졌으려나. 쉽지 않은 인생이다. 

크루즈라는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눈곱만치도 한 적이 없었지만 죽기 전에 누리는 쾌락이라니 더 싫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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