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메멘토모리
드디어 내 손님들이 왔다. 이미 많은 와중에 또 와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다행히(?) 친정식구들은 낮에 형부를 통해 부조금만 보내왔다. 넉넉히 넣은 걸로 봐서 내 체면을 충분히 살려준 듯하다. 이렇게 사돈관계는 정리된 듯하다. 형부는 잠깐 앉았다 가셨고, 그 뒤부터는 주로 학교 선후배들이었다. 남편과 나는 대학 커플이라 대학 때 친구 선후배들이 많다. 주로 남편을 보러 온 거지만 내가 아니었다면 굳이 오지 않았을 친구들도 있으니 챙겨야 했다.
빈소에 있다가 식탁으로 간 김에 나도 밥을 먹었다. 왁자지껄 떠드는 와중에 먹는 밥이 오랜만이다.
한 친구가 말했다.
서울대생들에게 물었대. 부모가 언제 죽었으면 좋겠냐고. 맞춰봐.
글쎄. 70살은 좀 이르고, 75살?
질문의 의도가 뭔지 전혀 모르겠지만, 답을 한 친구 말이 일리가 있어 보였다.
에이, 서울대생인데 좀 더 써봐.
응? 더 쓰라고? 그럼 80? 85?
어차피 찍기니까 아무렇게나 답을 던지는데 퀴즈 출제자는 의미심장한 썩소를 날렸다.
“60!”
뭐? 밥 먹다 말고 입을 떡 벌렸다. 아니, 대학생이면 부모 나이가 우리 언저리일 텐데 그럼 5년 정도밖에 안 남았잖아. 아직 노인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새파란 지금의 부모 얼굴을 보면서 어떻게 죽음을 떠올릴 수 있을까?
아이고, 그럴 줄 알고 우리가 서울대 안 보냈잖아.
자조 섞인 한탄이 난무했다.
또 다른 이야기.
요양원에 다니는 언니 말에 의하면, 교사나 군인이었던 부모들은 자식들이 부모 상태가 어떻건 간에 무조건 살아만 있게 하라고 한대.
그건 또 왜?
뭔가 좋은 뜻은 아닐 것 같아 움찔하는데,
연금이 나오잖아.
명쾌했다.
...
정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왜 다시 촛불이 일어나지 않을까.
해봤잖아. 했는데도 이 모양이잖아. 바꾸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바꾼 다음이 중요한 건데 아직도 그 준비가 안 된 거 같아.
김대중이나 노무현처럼 핍박을 당하더라도 기치를 들고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정치인이 없어서 아쉬워.
없는 거야? 있는데 언론을 못 타는 거야?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하거나 지지자들이 떨어져 나갈지라도 지금 이 정세를 뚫고 나갈 시대적 의제나 정치적 비전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런 기개가 부족해.
부족한 거 맞아? 기사화되지 않는 게 아니라?
어쨌든 노무현 정신이 필요한 시대야.
용혜인은 어때?
곧은 사람이긴 한 거 같은데 시대적 어젠다가 없잖아.
여성 지도자가 나와야 해. 농민 소고삐 투쟁처럼 아는 사람 낯을 보지 않고 밀어붙일 혁명가가 필요해.
아, 나는 이제 정치에 거리를 좀 두려고 해. 현실에서 약간 물러나고 싶어. 이제 그럴 나이도 되었어.
누군 안 그러고 싶냐? 현실이 발목을 잡으니까 그렇지.
남의 장례식에서 왜 이런 얘기가 오가냐고? 남의 장례식이니까 나눌 수 있는 이야기다. 가장 현재의 우리 정서를 담은 이야기가 아닐까. 한 부고전문기자는 "부고마저 재미없으면 죽는데 무슨 낙이 있을까"라고 했다. 장례식에 이런 재미마저 없으면 무슨 낙으로 장례식에 와주겠는가.
손님들 덕에 밥도 먹고 농담도 하고 웃기도 했다. 아니, 사실은 손님들 앞에서 민망할 정도로 잘 웃었다. 어머님은 남들 앞에서 너무 웃지 마라, 눈을 흘기시면서 그래도 웃으니 좋다, 하셨다. 언제나 진지하고 심각한 내가 이 집 식구가 된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