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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Aug 09. 2023

손님들 2

시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메멘토모리

한 선배가 왔다. 남의 대소사에 항상 참석해 주는 세 명의 프로참석러가 있는데 그중의 한 명이다. 그들을 보면 안정감이 느껴졌다. 서로에게 정서적 지지자가 되어줄 두 명의 친구가 있다니 얼마나 든든할까, 부러웠다. 나도 그런 친구 세 명을 갖는 것이 꿈이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는 세 명이면 족하고, 모임도 두세 개면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나머지 시간은 혼자 잘 놀기. 젊어서 회사에 소속감을 느꼈다면 나이 들어서는 친구들 사이에서 소속감을 느끼는 게 좋다. 그래야 쓸데없는 명예욕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안전한 세 명은 필수다. 물론 따로 또 같이, 여야 한다. 서로의 발목을 잡는 게 아니라 무엇을 하건 지켜봐 주고 응원하는 관계, 그게 관건이다. 


이번에도 셋이 올 줄 알았는데 일이 있어서 한 분이 먼저 오고 두 분은 나중에 오기로 했단다. 먼저 온 선배와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항상 같이 있다는 건, 다른 사람이 낄 자리가 없다는 말이기도 해서 나는 한 번도 그분들과 깊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 장례식장이라는 장소의 힘으로 우리는 아주 조금 서로의 일상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그는 얼마 전 미술에 반해서 지금 서양미술사를 읽고 있다고 한다. 원래 미술 말고도 문화예술을 사랑해서 음악회나 공연 등을 자주 찾는 걸로 알고 있다. 다른 두 분과는 그런 점에서 너무 취향이 다르다고 한다. 내가 봐도 전혀 대화가 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다행히 한 명이 우기면 나머지 두 명이 못 이기는 척 같이 가준단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바다를 보러 갔단다. 저기 가면 뭐가 맛있다는 감언이설로 겨우겨우 갔다지만, 그래도 같이 가주는 게 어디냐. 남자 셋이 바다라니,라는 편견이 언뜻 스쳐 지나갔지만, 이 선배라면 충분히 그런 감수성을 지녔을 거라 짐작된다. 역시 사람을 겉으로만 보면 안 돼, 대화를 하면 달라진다니까.  

나는 미술을 보기만 하지 말고 직접 그려보라고 권했다. 졸라맨도 못 그리던 내가 3년간 매일 그림을 그렸다는 이야기도 해주고 싶었는데, 마침 새로운 손님이 와서 아쉽게 대화가 끊겼다. 장례식장이라는 장소의 한계.      

손님들이 다 가고 야식을 먹던 아이들이 킥킥거리고 웃으며 말했다.  

엄마 친구는 엄마를 닮고 아빠 친구는 아빠를 닮았어.

맞아. 들어서는 순간, 이분은 엄마친구, 저분은 아빠친구 딱 알아볼 수 있어.

친구를 공유하고 있는 남편과 나는 잠시 엥? 했지만 바로 인정했다. 맞다. 우리는 각자 너무나 다른 성향을 가졌으므로 친구도 그럴 것이다.

너희도 마찬가지야.

나는 아이들 친구를 바로 알아봤다. 어쩌면 그렇게 자신과 닮은 친구들과 사귀는지. 큰아이 친구들은 큰아이처럼 어디 가서 거짓말 못하게 생겼고 작은아이 친구들은 작은아이처럼 어디 가서도 잘 적응하게 생겼다. 역시 유유상종이다.


그런가 하면 가족의 다른 이면을 보게 된다. 아무래도 급박한 시간에 많은 일을 처리하다 보니 평소와 달리 숨은 특성들이 나오는 것 같다. 평소 사과 한 알도 까다롭게 고르던 누님은 뭐든지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였고, 자기주장이 강해서 목소리를 높이던 아주버님은 수많은 결정 사이에서 동생들의 뜻을 따랐고, 강해보이던 형님은 가장 많이 울며 약한 모습을 보였고, 언제나 한발 물러나 있던 나는 기억해야 할 것들, 초재나 49재 날짜를 확인하고 기록하고 공유하며 내 할 몫을 찾았다.    

     

자정 무렵이 되자 사람들이 다시 물밀 듯이 돌아갔다. 예전 같으면 밤새 빈소를 지키느라 대충 여기저기 숨어서 잠시잠깐 눈만 붙였을 텐데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고 한다. 본가가 가까워서 다행이었다. 이모님이 3일간 같이 있겠다고 해서 어머님과 함께 집에 가서 잤다. 아버님이 아끼던 처제여서 그런 것도 있지만 역시 산 사람 곁을 지켜드리기 위해 그런 듯하다. 정작 아버님의 친척 분은 아무도 없었는데 아버님이 막내라 형제분들이 계시지 않았고, 조카들은 심리적 거리가 멀었다. 그 누가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는가.

그럼에도 친가 사람들이 오는 건 당연하게 여겼고 외가 사람들은 그동안 더 많은 정을 나누었는데도 불구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그리고 교통비 봉투를 따로 챙겨드렸다. 생각해 보면 우리 할머니 돌아가실 때도 그랬던 것 같다. 고종사촌들에게만 봉투를 주었지. 남이라고. 와줘서 고맙다고.


와줘서 고마운 사람과 당연히 와야 하는 사람들의 구분을 새롭게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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