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 장례를 치르며, 메멘토모리
발인 날 아침.
빈소의 짐을 다 빼라고 해서 아침부터 서둘렀다. 음식을 다 치우고 일회용품도 다 치웠다. 생각보다 많이 남은 일회용품을 보며 마음이 무거웠다. 이미 버려진 것들도 많을 텐데.
발인 전 제사를 지냈는데, 우리가 한 일이라곤 장례지도사의 지시에 따라 절한 게 전부였다. 상조가 좋은 게 그런 거겠지만 제사상을 차리는 것도 전부 돈으로 해결하다 보니 뭔가 허전했다. 아무런 정성 없이 관례적으로 하는 제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리 인간의 죽음이 너무도 하찮아 관례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오히려 허전함만 더하는 관례라면 소용을 다한 것 아닌가.
막내며느리가 무슨 권한이 있어 이걸 바꾸겠나 싶다가도, 그렇게 따지면 권한 있는 이도 굳이 말이 나지 않으려 나서지 않겠구나, 그러니 권한은 먼저 바꿀 용기가 있는 자에게 있겠구나. 생각했다. 이제라도 내 몫의 용기를 가질 것. 내 대에서 이 허례허식을 깨는 쪽으로 조금씩만 애쓸 것.
버스를 타고 화장터에 갔다. 운구한 관은 배당된 소각장 바로 앞에 놓였다. 잠시 곡소리가 났고 문이 닫혔다. 다시 버스를 타라고 해서 탔더니 바로 식당으로 갔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을 이렇게 실감하기는 처음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높은 굴뚝이 수십 개 올라와 있고 컨베이어 벨트처럼 소각장은 돌아가고, 그 바로 옆 식당에서 우리는 오늘 하루를 태울 에너지가 되어주는 밥을 입으로 몰아넣고 있겠지.
굴뚝을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화장하는 동안 얼마나 대기오염을 시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화석연료를 사용할 거고, 하루종일 태우니 끝없이 이산화탄소와 일산화탄소가 나오겠지. 어디선가 그런 글귀를 보았다. 화장은 미세먼지가 되어 누군가의 폐속에 남을 수 있다고. 어차피 먼지지만 하필 미세먼지라니. 하필 남의 폐에 남아 제때 사라지지도 못하다니. 속에 남아 지구에 해를 적게 끼치면서 좀 더 깨끗하게 가는 방법은 없을지 고민하는 이들은 100% 생분해되는 버섯수의를 입고, 마찬가지로 100% 생분해되는 대나무관이나 판지관, ecopod라는 신문과 뽕나무 잎으로 만든 관 등을 사용하는 녹색매장을 연구하고 있단다. 또 미국 워싱턴주는 퇴비로 만드는 법안이 처음 시행되었단다. 아직 우리나라에 상용되지는 못하고 있지만 내가 갈 때는 시범적으로라도 허용되면 좋겠다.
그렇게 받은 작은 유골함. 우리는 그걸 들고 장지로 정할 수목장을 찾았다. 수목장은... 수목이라는 말이 무색하도록 민둥산이었다. 멀쩡한 산을 다 밀어버리고 바둑판처럼 구획해서 작은 묘목을 심어 놓았다. 간격이 너무 좁아서 자라지도 못하게 분재형으로 만들어 놓았다. 비석이 아니라 나무라는 것 말고는 촘촘히 서있는 모양새가 예전 공동묘지와 똑같았다. 내가 생각한 자연 친환경적인 묘지가 전혀 아니었다.
수해도 걱정되었는데 아래 자갈과 모래를 쌓아 수로를 잘 만들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하지만 과연 요즘처럼 비가 많은 시절에 정말 괜찮을지 의심스러웠다.
중간중간 사람 키보다 큰 나무가 몇 그루 있기는 했다. 가족형인데, 미리 많은 돈을 내야 했다. 더 저렴한 것으로는 잔디형이 있었다. 잔디밭에 표식만 있는 거다. 모르는 사람들과 뒤섞이는 게 싫다는 누님의 말에 뒤로 물러났다. 어차피 나무를 선택해도 바로 옆에 모르는 사람이 묻히기는 마찬가진데. 납골당이나 묘지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말하지 못했다. 괜히 돈 아까워서 그런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장례 하는 내내 뭐든 쉽사리 말하기 어려웠지만 앞으로 아버님을 떠올릴 장소가 될 장지는 더욱 조심스러웠다.
화장장 한쪽에 산골散骨을 할 수 있다는 안내가 있었다. 산골은 다른 사람 뼈 위에 그대로 뿌리는 거란다. 나라면 산골로 뿌려주면 좋을 텐데.
마음에 차지 않아 결정을 못하고 있으니 따로 빼놓은 괜찮은 나무가 있다며 우리를 안내했다. 그나마 앞쪽에서 본 나무보다 조금 더 크고 조금 더 넓었다. 당연히 비용은 더 비쌌다. 상술인 걸 뻔히 알면서 선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나무를 정하고 나니 인부가 와서 동그랗게 잔디를 떠서 한쪽에 두고 구멍을 파냈다. 유골함을 넣고는 그대로 다시 흙과 잔디를 덮었다. 신기할 정도로 아까 모습 그대로 돌아갔다. 주변에 흙 한 줌 남은 것 없이. 무덤에 비하면 정말 간편했다. 과연 편의점 5만이 넘도록 편의만 쫓는 시대다웠다. 그래도 돌아가면서 흙을 조금씩 뿌리는 등 할 건 다했다. 할 것을 다했으니 괜찮은 것 같은 착각, 그게 더 속상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님 전화번호를 삭제했다. 삭제 버튼을 누르는 순간, 기분이 이상했다. 내손으로 아버님을 지워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쩌다 발견될 '아버님'이라는 이름을 다시 볼 것이 더 괴로워 망설이지 않고 지웠다. 만일 아버님이 sns를 했다면, 어딘가 카페나 블로그나 쇼핑몰에 가입했다면, 그것들은 일정기간 또는 영원히 떠돌수도 있겠지. 그러고보니 내 유서에는 꼭 지워야 할 sns 등 인터넷 기록들을 잘 정리해둬야겠다. 가급적 줄이고 없애야겠지만 그래도 최후의 그날이 언제 올지 모르니. 흔적없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