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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Aug 13. 2023

장례 이후

시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메멘토모리

“내가 만일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영감을 얻겠어.”

수목장을 돌아 나오며 아이가 말했다. 수목장은 원래 나무에 사진을 걸 수 없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걸어두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무게가 눈앞에 그려진다. 어리거나 젊은 사람은 왜 그리도 많은지. 사는 것이 형벌이라고 하지만 죽음 앞에선 자못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장지까지 함께 해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예전에 나는 가급적 장지까지는 가지 않았는데 당연히 가족과 친척들의 몫이라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겪어보니 고인과 얼마나 가까웠는가가 더 중요하다. 아니, 그렇지도 않다. 운구를 위해 끝까지 함께 해준 아들 친구들이나 조카의 친구들은 생전에 고인을 만난 적도 없으니까. 어쩌면 여유가 중요할 수 있겠다. 산 자들 곁에서 마음을 내어주고 시간을 내어주는 여유.   

   

어쨌든 장례는 끝이 났다. 아, 아직 끝이 아니다. 기일로부터 첫 7일이 되는 날, 초재가 있다. 그리고 49재. 49재야 아직 꽤 남았지만 초재는 4일장을 치렀으니 바로 내일모레다. 본가에서 이삼일을 더 있어야 한다는 건 식구들 밥걱정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장례 치르는 동안은 밥 걱정이 없었지만, 그전에 며칠 있을 때도 밥걱정이 가장 컸다. 물론 내가 하는 건 아니다. 아무래도 본가에 사는 누님과 근처에 사는 형님의 몫이 크다. 그런데도 옆에서 그 걱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평생 누군가의 밥을 걱정해야 하는 고충을 남자들은 알까. 


무엇보다 나는 하루라도 제대로 쉬고 싶었다. 잠자리에 유달리 예민하고 음식도 찬 것, 밀가루 등 소화 안 되는 것들을 가려먹고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싫어하고 개를 무서워하는 내가 개가 있는 남의 집에서 며칠간 뒤섞여 잤으니 자도 잔 게 아니고 쉬어도 쉰 게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어찌 되었든 다들 자기 집이었다. 나만 내 집이 아니었다. 물론 남편도 내 집이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만큼 완벽히 내 집이 아닌 건 아니다. 이제 이 집 식구가 되었다 했는데 역시 기분 탓이었나 보다...

남편은 남고 나 혼자 집에 다녀오기로 했다. 교통비도 무시할 수 없는데 너무 유난을 떠는 건가,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과감히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보니, 내 집 냄새. 후각이 가장 먼저 알아챘다. 영화 <기생충>에서 냄새로 계급적 구별을 드러낸 걸 보며 아주 영리한 방법이라는 생각을 했다. 계급적 차이가 아니더라도 자기 집만의 고유의 냄새가 있다. 세제 냄새, 향수 냄새, 음식 냄새. 그리고 사람 냄새. 결국 그것은 계급적 차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본가와 우리 집은 계급을 언급할 만한 차이는 없지만 그래도 냄새는 다르다. 결정적으로 그곳에는 개 냄새와 개로 인한 다양한 세제 냄새가 나를 불편하게 한다. 

그리고, 음... 화장실 문제도 있었다. 장이 예민한 며느리들은 다들 이해하리라.    

  

내가 집에서 미친 듯이 곯아떨어졌던 이틀 동안, 술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고 웃기 좋아하는 남편의 삼 남매는 매일 저녁 회포의 자리를 가졌던 듯하다. 보통 집안의 어른이 돌아가시면 이런저런 문제로 형제의 우애에 금이 가고 결국 멀어지기도 한다는데, 우리는 별로 그럴 것 같지 않다. 물론 이제 막 돌아가셨고 아직 어머님이 계셔서 그럴 수도 있지만, 좀 더 다른 이유가 있어 보인다. 아무런 유산이 없다는 거. 남은 어머님에 대한 걱정이 없다는 거. 


아버님은 평생 월급쟁이로 사셨고 은퇴 후에는 경비 일을 하셨고 이후에도 쉬지 않고 노인일자리를 전전하며 푼돈이라도 벌기 위해 애쓰셨던 분이다. 소주 한잔이 유일한 낙인데도 그 돈을 아껴 손주들 손에 쥐어주기를 즐겨하셨다. 며느리인 나를 위해 따로 통장을 만들어 한 푼 두 푼 모아 어느 날 몇 백을 남몰래 전해주기도 했다. 우리는 여기저기 은행에 남은 예금이 있을 거라 예상했다. 긁어모아봤자 몇 백일 거라는 것도. 다행히 아무도 탐하지 않아 어머님께 전해졌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들어온 부조금은 삼 남매가 모여 앉아 경비를 계산하고 남은 금액을 각자에게 돌려주었고, 엑셀로 정리까지 해서 가족 톡에 올렸다.    


홀로 되신 어머님은 그동안 함께 살아온 누님이 앞으로도 지금처럼 살면 되니 큰 고민이 없다. 우리는 늙으신 어머님을 수발하는 게 쉬울 리 없는 누님의 하소연을 가끔씩 들어주면 된다(아버님 병시중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걸 깨달았다. 발 벗고 나서지 않을 거면 가만히 들어드리는 것이 가장 좋은 협조라는 것을. 처음에는 이런저런 조언이나 역할분담을 하기도 했는데, 그조차 누님은 마음에 차지 않았고 다만 하소연할 곳이 필요했다는 것을 알았다). 유일하게 남은 재산인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어머님이 돌아가시면 누님의 몫인 게 너무도 당연해서 말할 것도 없다. 

걱정을 사서 하는 나는 큰일을 치르면서 혹시 분란이 일지 않을까 조금 겁을 먹었다. 그런데 수시로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아무도 크게 주장하지 않았고 딱히 잡음이 없었다. 돈이 걸린 문제면서 가족의 생사와 사랑과 인정, 그리고 남들의 시선과 위신이 걸린 문제인데도 쉽게 합의에 이르렀고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한발 물러설 줄 알았다. 이것도 우리가 유난히 착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다들 이런 일이 처음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게다가 그들은 자기만족이 높은 편이다. 자신들이 한 결정과 결과에 대해 과할 정도로 만족해한다. 잘한 부분에 대해서는 어김없이 생색을 내고 서로 잘했다고 추켜세운다. 잘해놓고도 스스로 의심하고 칭찬에 점잔을 빼며 아닌척하는 나의 원가족과는 정반대다.  

사실은 누님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어머님과 함께 할 누님이 중심을 잡고 있으니 며느리들은 그저 감사할 뿐이다. 물론 각자 약간의 손해와 억울함과 속상함이 있을 것이다. 하나하나 헤집을 만큼 대단치는 않으니 덮어두고 따른다.   


가족의 문제는 가능한 한 사람에게 권한이 주어지는 게 좋다. 책임은 나누되 권한은 한 사람에게만 주고 나머지는 말없이 따라주는 거다. 책임을 짊어진 누님은 억울할 수 있는데, 많은 경우 희한하게도 본인이 스스로 자처하는 경우가 많다. 친정의 경우는 작은언니가 그러했다. 애초에 남동생에게 주어진 권한을 이런저런 참견(마음은 고맙지만 행동이 보장되지 않으면 참견이다)을 하다가 결국 작은언니에게 책임이 넘겨졌다. 나는 남동생의 말을 따라주다가 작은언니의 말을 따라주고, 그 권한을 행사해 주는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것으로 내 몫을 한다. 누님에게도 마찬가지, 절대복종 절대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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