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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Aug 16. 2023

고맙습니다

시아버지 장례를 치르며 메멘토모리

초재를 지내러 올라가면서 아버님이 좋아하셨던 밤빵과 팥빵을 샀다. 그거라도 내 정성을 보태고 싶었다. 절에 모셨기 때문에 이번에도 절에서 모든 것을 준비했고, 우리는 몇 번의 절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아, 누님은 전날 가서 음식을 했다. 덕분에 어떤 것은 중국산이고 어떤 접시는 너무했다며 구시렁거렸다. 역시 제사상 차리는 일은 뒷말을 만든다. 나는 그 많은 식구 설거지를 하느라 힘들었지만 어쨌든 집이 아니라는 것만으로 불만이 없었다.      

아버님이 계신 수목장에도 들렀다. 편히 절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오지 않아 엉거주춤한 목례로 대신했다. 많지도 않은 식구 서있기조차 좁은 데다 땡볕을 가릴 나무 하나 제대로 없어 서둘러 돌아 나왔다. 우리가 예상한, 약간의 소풍 느낌으로 아버님을 추모하러 가기를 바란 소박한 바람은 시작부터 어긋난 셈이다.    

  

다시 몇 주 후, 49재를 치르고 수목장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내가 상상한 수목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그동안 사진으로 보아온 외국의 수목장들은 산림을 그대로 유지한 모습, 일종의 숲의 형태였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유골함 봉인도 없이 나무 아래 뿌려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는 거라고 알고 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왜 우리나라에만 오면 변질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멀리도 못 가고 바로 앞 주차장에서 나는 절대 장례식을 치르지도 말고 화장한 재는 바로 화장터에 버리라고 선언했다. 행여 보고 싶으면 사진이나 들여다보고 가끔 모여 맛있는 거나 먹으면 되지 제사를 지내거나 특별한 제사음식은 필요 없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가능하면 죽기 전에 가까운 사람들과 미리 장례식을 하고, 죽으면 바로 화장을 한 후 다른 이들에게 알리게 할 것이다. 나의 선언이 무색하게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당연히 그러겠노라고 답했다. 남편까지 동의하는 걸로 보아 적어도 우리 집은 장례로 자본시장에 기여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죽음이라는 산업이 단계마다 버티고 있음을 눈으로 목도했다. 죽음을 병원에 허락받고 묻힐 곳을 국가에 허락받게 된 것은 자본의 힘이다. 마지막 인사와 명복을 비는 마음도 마찬가지다. 죄지은 자본가들을 위해 연옥이 발명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이제는 죄를 짓든 짓지 않았든 우리는 연옥에서 모든 것을 벗고 가시라는 관례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자본의 힘이다. 내 죽음만큼은 자본의 허락을 받지 않으리라.    


그럼에도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추기 위해 장례식을 하는 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이 영상(https://youtu.be/V6-0kYhqoRo)은 사전장례식으로 꽤 유명해졌다는데, 느리게 흘러가는 노인의 일상에 비해 모두들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며 산다. 현대인들은 노인을 돌아보거나 자신의 죽음을 생각할 시간 따윈 없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하지만 세상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은 없더라. 아버님이 위독했던 시기부터 장례식을 치르기까지 턱밑까지 닥쳐오는 급한 일들로 난감했지만, 병원을 오가고 장례를 치르는 동안 그 일을 못해서 낭패를 본 적은 없다.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죽음(타인의 죽음일지라도)을 미룰 만큼 큰일은 없다. 사람의 죽음 앞에 일상이란 살짝 발에 걸리는 문턱과 같은 것일 뿐이라는 사회적 동의가 있는 셈이다. 그러니 장례식이라는 잠깐의 멈춤, 그것조차 사라지게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조금 유연해졌으면 좋겠다. 영상처럼 사전 장례식을 하는 식으로. 조금 삶과 죽음이 덜 분리되었으면 좋겠다. 어차피 우리는 죽음을 향해 달리는 삶이므로.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던데, 별로 그렇지 않았다. 이미 몇 년 전에 요양원으로 가셔서 그런가, 생각해 봤는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는 매번 난 자리를 느꼈고 우리끼리 있다는 게 마음 불편했다. 지금은 같이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제 세상에 없는 분이지만 멀지 않은 요양원에 계실 때보다 더 마음속 깊이 아버님이 자리 잡은 것 같다. 

코코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버님 마지막 10년동안 가장 아버님을 따랐던 강아지. 아버님을 요양원에 모시고 돌아온 누님의 발치에서 코코는 어떤 냄새를 맡은 것 같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구나 하는. 그날 밤 코코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지금은 코비 혼자 남아 어머님을 지키고 있다. 고마운 코비.    

      

글을 쓰는 내내, 그립기는 했지만 마음 아프지는 않았다. 시아버님이지만 조금도 권위적이지 않았던, 언제나 편안하게 있으라고 했지만 예민한 내가 그러지 못해서 미안했던, 그 모습을 오래 기억하리라. 이번 생에서 제 시아버님이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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