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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Jun 24. 2024

푸르른 시절, 느티나무

주말에 삼촌의 칠순잔치에 갔다. 가까이 사는 친척 몇 명만 모였다. 삼촌의 어린 손주들이 뛰노는 모습을 늙으신 삼촌과 그 형제분들, 그리고 늙수구레해진 중년의 조카들이 흐뭇한 웃음으로 바라봤다. 

뒤늦게 이십 대 청년이 한 명 들어섰다. 어른들의 표정에 반가움 이상의 무엇이 터져나왔다. 어린 손주들을 보던 시선과는 다른, 빛나는 무언가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조금 과장하자면 뿜어져나온 빛에 눈이 부신 듯했다. 순간적이긴 했지만 폭발적인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걸 분명히 봤다.
청년은 학교를 졸업하고 아직 사회에 자기 자리를 잡지 못해 불안하고 방황하고 있었지만 그런 건 조금도 그 찬란함을 가리지 못했다.
찬탄이 섞인 소란이 서서히 가라앉자 우리는 주섬주섬 현실로 되돌아왔고 다시 어른 흉내는 내고 있었는데, 여전히 각자의 그 시절을 헤집고 있는 듯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저 존재만으로 빛나는 젊음이로구나, 깨닫는 순간이었다.


날이 더워 저녁산책으로 바꾸었다. 자주 팔운동 기구를 이용하는데, 거기 앉아 올려다보는 하늘이 좋다. 아파트 불빛이 파란 하늘과 초록. 바람에 흔들리는 푸른 빛과 선선한 색. 매일 꽃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반해 자주 그리고 있었지만, 푸른 잎으로 가득한 느티나무를 보는 것은 또 다른 청명함이 있다. 어두운 밤이었지만 그 청명함은 조금도 감쇄되지 않는다.


어린이와 청년, 꽃과 나무. 비교할 필요도 없이 각각 소중하다. 그렇다고 지금의 나, 나이 듦이 슬프거나 아쉽지는 않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절이었다는 발견이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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