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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Mar 31. 2020

목련

목련을 보면,  <깃털>이라는 국카스텐의 곡이 생각난다. 하현우가 <몰락의 에티카>를 읽고 만든 곡이다.


저 멀리 가늘하게 떨어지던

아픈 꿈은 남겨진 이야길 하네

조용히

이곳은 견딜 수 없이 춥다고

아무도 나와 닮지 않았다고

너마저

기나긴 어제와, 기나긴 소음과

더 기나긴 바람의 흔적과,

더 기나긴 날개의 노래는

하늘로 떨어진

길이 없는 곳에 남겨진

안개로 가득한 이곳을

바람에 버려진

아픔 없는 곳에 떨어진

어찌할 수 없이

망가진 그대는 바라네

아득하게 사라지던

아름다운 외톨이는

내 두 눈 속에 녹아

고여있네 이렇게


나는 늘 몰락하는 자에게 매료되곤 했다. 생의 어느 고비에서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사람은 참혹하게 아름다웠다.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한 것이다. <몰락의 에티카>, 신형철


목련은 몰락한다는 표현 그대로 참혹하게 꽃을 떨군다. 견딜 수 없게 춥게, 마치 하늘로 떨어지듯 아득히 갈색으로 타들어간다. 몰락에도 불구하고 꽃을 피웠던 찬란했던 순간이 내 눈 속에 고여 참담함을 잊고 봄을 맞이하게 해 준다. 깃털 노래를 처음 듣던 당시 나는 내 삶이 몰락했다고 느꼈다. 기나긴 어제와 기나긴 소음과 더 기나긴 흔적만 남긴 채. 가득 차게 만족스러우면서도 텅 빈 허탈감을 느끼던 나의 상태를 잘 표현해주었다고 느꼈다.


음....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이제 뭐라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인데 여전히 그 무엇도 쓸 수가 없다. 목련을 바라보며 깃털을 들은 지 3년이 지났는데. 뭐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다. 남들도 흔히 겪는, 인생에 한 번쯤 오는 낙심 같은 거다. 하지만 남들도 겪는다고 해서 내가 괜찮아지는 것은 아니니까.

다만, 아득하게 떨어져 버리고 싶었다. 남김없이 바쳤으므로 만족한 상태. 끝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더 할 것도 없었고 더 할 수도 없는, 까무룩 하게 정신을 놓은 상태. 그러나 나는 아직 살아있어서 당황스러웠던.

'아무도 나와 닮진 않았다고, 너마저.'

이것이 남은 감정이었고, 진한 외로움에 치를 떨었다. 어찌 '그곳'에서 떨어져 나온 나는 견딜 수 없이 추운 이곳에서 자신마저 나와 닮진 않았다고 느끼는 것일까. 길이 없는 이곳까지 왔는데, 홀로 어찌할 수 없이 망가져 남겨진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걸까. 춥고 외로웠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려 아쉬움조차 없는데 그래도 춥고 외롭긴 했다.

몰락. 정말 좋은 표현이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나의 표정은 숭고하게 아름다운 걸로 갈음하고 싶었다.


목련에게 전부인 하나는 무엇이었을까. 목련은 그 하나를 얻어 전부를 얻게 되었을까.

국카스텐에게 전부인 하나는 무엇이었을까. 음악이라고 상징되는 그 전부란 무엇이었을까.

내게 주어진 아픔을 들여다볼 수 없어 나는 목련을, 뮤지션을 하릴없이 떠올리곤 했다.


목련꽃이 아득하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참혹한 몰락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다시 푸른 그늘을 만들어내는 목련나무를 보면서 희망을 품을 것이다. 나도 목련 나무 아래 떨어진, 참으로 짧은 순간 우리에게 환한 봄을 안겨준 하얀 허상을 내려다보다가 고개 젓는다. 시커멓게 멍들어있는 밑바닥에서 무언가를 찾으려 하지 말고, 아직은 차갑지만 해의 살을 받으며 품어지고 있는 푸른 잎을 보자고. 내게도 남겨진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떨어지는 목련꽃잎에 마음이 무너지던 그곳을 떠나 먼 타향으로 몸을 옮겼다. 이제 아픔 없는 곳에 떨어진 깃털 하나, 목련을 보고 깃털을 듣는다. 무너져 황폐해진 그곳에 보이지 않는 공기층이 쌓여있다. 그 위로 훌쩍 뛰어내릴 날이 올 것이다.  





목련에 대해 슬픈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릴 때 마당에 큰 목련나무가 있었다. 사람들이 목련나무집이라고 불렀다. 우리 집 마당에 그 뽀얀 목련꽃이 핀다는 게 나로서는 아주 자랑스러웠다. 그 집에는 귀뚜라미가 살아서 아주 싫어했는데, 가을부터 겨울까지 수시로 튀어나와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러다 목련꽃이 피면 귀뚜라미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아직 서늘한 바람이 목을 간지럽혀도 양지바른 장독대에 앉아 목련이 언제 피려나 살펴보곤 했다.


꽃이 필랑말랑 하는 날들이 꽤 길었다. 이제 좀 따뜻해졌나 싶다가 다시 추워지고 꽃망울이 살풋 흰 봉우리를 내밀라치면 질척한 눈이 내리기도 했다. 어쩌다 친구네 집에서 하룻밤 자고 오면 어느새 활짝 폈다가 이미 지기 시작해버려서 아쉬울 때도 있었다. 목련꽃이 피는 날은 짧았지만(목련이 피는 기간은 일주일이 넘겠지만, 내가 기대하 기다리는 목련꽃은 탐스런 봉우리에서 웃을락 말락 할 때다. 봉우리가 열리면서 꽃잎 한 장만 살짝 구부려조금 더 열린 상태 말이다, 마치 왈츠를 추기 전 무릎 구부려 인사하듯이.) 그래도 골목에 들어서면 뽀얀 목련꽃이 가득 찼던 풍경은 사진처럼 기억 속에 찍혀 순결함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목련꽃이 피는 것도 좋았지만, 나무 위에 올라앉기에 적당해서 좋았다. 그 나무 가지에 올라갈만한 키와 몸무게를 가진 사람이 형제들 중에 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만의 공간이 될 수 있었다. 여름이면 나무 위에 올라앉아 피리를 불었다. 오른발을 한껏 올리면 딱 거기에 패인 자리가 있었고 딛고 올라서면 Y자 가지 중에  오른쪽 가지가  내 엉덩이가 놓일 만큼 수평이었다가 45도로 뻗어올라갔다.  내 몸이 놓일 만큼은 가지도 잎도 없지만 그위로는 잎이 크고 풍성해서 한여름에도 그 자리는 그늘이 깊고 시원했다. 학교에서 월요일마다 운동장에서 조회를 했는데, 끝날 때 다 같이 피리를 부르게 했다. 나무 위로 올라가면 내가 작은 아씨들의 조가 된 기분이었다. 뭔가 그럴싸한 센티한 곡을 부르고 싶었지만 아는 게 없어 아쉬웠다.   


내 앞에 앉은 두 명의 남자아이와 내 짝이 아주 친했다. 더불어 나도 같이 놀았는데, 중학교에 올라갈 무렵 우리는 편지를 주고받는 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그중 한 남자아이가 편지를 많이 주었던 것 같다. 중학교에 올라가게 되면서 이제 우리는 편지를 주고받는 놀이를 계속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이별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 아이가 내게 작은 나비 브로치를 주었다.

몇 달이 지나 진짜 중학생이 되면서 이런 편지도 갖고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내가 받은 모든 편지를 꺼내 몰래 불태웠다. 나비 브로치도 같이 태웠다. 시커멓게 그슬리기만 한 브로치와 편지 재를 목련나무 아래 묻었다. 어스름하게 해가 지고 있었다. 내 인생도 지는 기분이었다. 어린 시절과 작별하는 나만의 의식이었다.  

아마도 그 아이가 내게는 첫사랑이지 않았을까 싶다. 새까맣고 눈이 쪽 째진, 깡마르고 팔다리만 길었던, 안경잡이 여자애-그때는 안경 쓴 여자애는 놀림감이었다-였던 나를 처음 좋아해 준 그 아이는 검은 뿔테-그때도 검은 뿔테는 지적인 사람에 대한 상징이었다-를 썼고 바가지 머리에 얼굴이 하얬다. 이름도 잊지 않았다. 박철.


살아있다면, 잘 살아라. 행여 만날 일 없겠지만 앞으로도 만나지는 말자. 풋풋했던 그 시절을 억하는 머리 희끗희끗한 소녀가 있다는 것만 기억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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